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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월드컵과 성차별
[만파식적] 월드컵과 성차별
  • 교수신문
  • 승인 2002.0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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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9 10:40:49
올해는 ‘월드 컵의 해’라 한다. 가속화되는 지구화 추세의 현시이자 그 속도를 한단계 더 앞당기는 월드컵행사는 한국의 면모를 남김없이 전 세계적으로 드러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월드컵의 해’에 우리는 세계에 어떠한 면모를 보이고자 하는가를 생각해 본다. 이러한 생각은 한국은 과연 어떠한 면모를 가지고 있는 사회인가로 이어 진다.

우리가 가진 자원이라면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한반도의 아름다운 산하, 그리고 근면하고 총기 어린 인적자원 외에는 꼽을만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들을 과연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가꾸어 가고 있는지, 특히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한국의 유일한 경쟁력 있는 자원인 인적자원을 다듬어야 할 직분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아야 할 것 같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앞으로의 세계에 대한 희망과 신뢰를 가슴 가득 갖고 창조적인 개개인이 될 수 있도록, 잠재력을 맘껏 발현할 수 있게끔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필요도 있다. 우리 미래의 주인인 학생들이 대학을 지나가는 관문으로만 인식할 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을 통해 오히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소망이 꺾인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게 될 것인지 심히 두려운 문제이다.

최근에 실시된 한 조사에 의하면 고등학생의 90퍼센트 이상이 우리 사회를 부패사회로 인식하고 있으며 3분의 1 가량은 목적을 위해서는 불법적인 일도 불사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보도됐다. 너무나 진부한 얘기이지만 부패와 부정이 일상화돼 있는 사회에서 젊은 세대에게만 정직과 정의를 가르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사회에서 자행되는 정의롭지 못한 현상의 하나로서 차별의 문제를 시급히 다루는 것은 정직과 정의를 실천하는 첫 걸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육현장에서는 직접적인 차별 현상도 있지만 이보다 더 표면화되기 어려운 간접적 차별의 형태가 더 많이 심각하게 작용할 수 있다. 여러 차별현상 중에서 대학사회에서 현재 가장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성차별이라 할 수 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대학사회는 교수채용에 있어서나 입학시험에 있어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어떤 교수도 교실에서 가르칠 때 남녀를 차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대학내의 성차별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이는 젊은 세대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성은 실력이 있어도 교수 임용이 안 되는 것을 보고 자라는 남녀 대학생에게 남녀평등사상은 안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 실력은 인정하지만 남학생을 우선적으로 추천해주는 교수를 보고 여학생은 비가시적인 그러나 실질적인 성차별의 현실에 절망한다. 존경하던 교수에게 성희롱을 당하며 느끼는 모멸감은 성취 의욕을 급강하시키며,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진정으로 사과하기를 거부할 뿐만 아니라 거짓말을 일삼는 교수를 볼 때 무너져내리는 신뢰는 당사자 교수만이 아니라 우리사회 기성세대 전부를 향한 불신으로 돌려질 것이다.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가르쳐야 할 교육의 장인 대학사회조차도 정의롭지 못하고 평등하지 못하다면, 대학교육은 우리 사회를 ‘부패사회’로 인식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신뢰와 희망을 회복시켜 줄 수 없을 것이다. 배움을 통해 젊은이들의 인성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마지막 단계인 대학교육에서조차 ‘부패사회’의 현실을 변혁시켜야 한다는 정의감과 실천적 의지를 심어주지 못하는 사회라면, 우리가 월드컵을 잘 치뤄낸다고 해서, 세계에서 일류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며, 또한 일류국가가 될 수도 없을 것이다.

모든 가치는 맥락적이다. 그 가치가 사유되는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그 가치는 목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시대에 더 절실하게 요청되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평등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이기도 하고, 때로는 정의를 통해 실현해야할 목적이 되기도 한다. 새해를 맞이하며, 올해에는 대학사회 자체가 보다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 가시적인 그리고 비가시적인 성차별이 극복되고 평등한 사회가 돼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더 많은 이들에게 확산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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