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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해를 준비하는 출판계 프리뷰
2002년 한해를 준비하는 출판계 프리뷰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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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8 17:32:13
지난 해 출판 경향을 말하면서, 인문서의 약진을 거론하는 이들이 많다. 고무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우려도 적잖이 있어왔는데, 국내 연구자의 저서보다 번역서가 두드러지는 현상이 그 중 하나다. 연구성과가 부재한 것이 원인인지, 출판시장이 이들을 바깥으로 내모는 것인지는 좀더 고민해 볼 부분이다.

또 전통적인 학술서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교양서들이 대거 등장한 현상에도 평가가 엇갈린다. 독자들과 깊이 있는 지식의 행복한 결합이라며 반가워하는 분위기도 있고, 반면 고전번역이 아쉬운 마당에 학술서적의 약화를 보다 심화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올해도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 것인가. 이에 주요출판사들의 한해 기획을 더듬어본다.

다음은 설문조사에 응답한 출판사들의 주요 계획. 궁리출판은 지난해 간행됐던 김열규 인제대 교수(국문학)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에 이어 ‘한국의 신화’를 간행할 계획이다. 또 칼 케르니의 ‘희랍 신화’ 등 한층 깊이 있는 신화 관련서적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과학대중화의 일환인 ‘과학개념 시리즈’, 대담 형식 등을 이용 쉽게 풀어 쓴 학술서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겠다고 한다.

올해도 대중화 작업 봇물

과거의 기획을 꾸준히 이어가려는 모습들도 있다. 동문선의 경우 ‘문예신서’ 기획물을 마저 펴낼 계획. 이렇게 되면 200종을 거뜬히 넘으리라는 전망도 나올 법하다. 교양문고인 ‘현대신서’도 연말까지 200종을 채울 계획이라고 한다. 문학과지성사의 경우 그 동안 간행했던 다양한 시리즈들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고, 특히 지난해부터 새롭게 등장한 ‘대산세계문학총서’를 꾸준히 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계절출판사는 기존의 역사서 출판에 계속 주력할 계획이며, ‘동양고전시리즈’를 병행할 계획인데 고전을 문화코드로 재해석하는 근대 동양학의 성과를 집중 반영할 것이라고 말한다. 동양철학의 한 분야만을 깊게 파고드는 예문서원과 대규모 기획 등으로 익히 알려진 한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길사가 관심을 갖는 기획은 지난해부터 새로 시작한 ‘문명탐험 시리즈’와 올해 처음 시도하는 ‘한길사이언스’라고 하는데, 과학출판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지 주시해 볼만하다. 풀빛도 기존의 인문서에 주력하면서 범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새물결은 다소 묵직한 기획들을 준비하고 있다. 필립 아리에스와 조르주 뒤비의 책임 하에 40여명의 학자들이 만든 ‘사생활의 역사’, 아리에스의 ‘아동의 탄생’(가제), ‘죽음 앞에 선 인간’ 등 역사학의 고전들을 선보일 예정. 아직 15권이 전부 완간되지 않은 ‘케임브리지 중국사’도 간행할 계획이다. 현대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자크 라캉의 저작들도 번역된다고 한다. 라캉의 ‘정신분석의 네 가지 기본 개념’ 등 두 권을 발간할 예정. 아카넷이 간행 계획한 서적들의 무게도 이에 못지 않다. 기존의 대우학술총서와 대우고전총서에서 다음의 책들이 출간될 예정. 월뱅크의 ‘헬레니즘의 세계’(김경현 옮김), 도널드 워스터의 ‘자연의 경제’(강헌·문순홍 옮김), 레슬리 화이트의 ‘문화과학: 인간과 문명의 연구’(이문웅 옮김), 레오 스트라우스의 ‘정치철학이란 무엇인가’(양승태 옮김) 등이 줄을 잇는다. 또 안셀무스의 ‘모놀로기온/프로스로기온’(박상찬 옮김), 베이컨의 ‘학문의 진보’(이종흡 옮김), 칸트의 ‘실천이성비판’(백종현 옮김) 등 묵직한 고전들도 간행될 예정이다. 특히 그 동안 미뤄왔던 칸트 번역의 경우 번역어 채택 문제로 관련학계 내에서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프랑스 아셰트출판사의 대규모 기획 ‘파르총서’를 번역하는 이학사의 행보도 주목할 만하다. 칼 오토 아펠의 ‘철학의 변용’이나 존 롤즈의 ‘정의론’(개정판), 마르치아 엘리아데의 ‘세계종교사상사’ 등이 관심을 끄는 대목. ‘진보와 보수’ 등 우리사회의 화두를 다루는 데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한다. 푸른역사는 역사서적의 새로운 변화를 꾀하려 한다. 사극 등 선정적인 역사물에 맞서 연구성과를 탄탄히 반영한 역사소설을 시도할 것이며 1930년대 지식인들의 활동공간을 소묘하는 것을 한 예로 든다. 그 동안 간행해왔던 역사이론서적은 계속되며, 국내의 연구성과를 점검하는 ‘포스트모던역사학, 어디까지 왔나’(가제)가 준비중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참여하는 ‘대안역사교과서’ 작업도 주목을 끈다. 한울아카데미 또한 만만치 않은 저작들을 준비중이다. 도시사회학의 거장 마누엘 카스텔의 ‘정보사회학 3부작’을 시작으로 1910년대 토착자본가들의 생성과정을 살핀 오미일 박사의 ‘한국근대자본가 연구’, ‘스티글리츠의 핵심경제학’(김균 외 옮김)이 그것들. 한편 ‘열린글들’이 재출간되는데, 모리스 돕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등 학술적 가치가 높은 소논문이 문고형식으로 나올 것이라 한다.

색다른 기획들도 눈에 띈다. 소나무는 기존의 출판사업 외에도 ‘자연학교’를 운영하는 등 조합공동체 내에서 대안교육을 모색하는 자연학교를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기존의 인문학적 바탕에 대한적인 삶을 접목시키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고. 시공사는 주강현 박사의 ‘왼손과 오른손-좌우 상징, 억압과 금기의 문화사’, 조선시대 문헌 중 삼재에 해당하는 그림, 표 등을 모아놓은 ‘韓國三才圖會’ 등을 준비중이며, ‘모든 지식의 대학 시리즈’(가제)로 21세기형 지식의 백과사전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동안 중국전문출판을 고집해온 이산은 유인선 서울대 교수(동양사학)의 ‘베트남의 역사’와 ‘마오쩌뚱의 중국과 그 이후’ 등 중국전문서적을 계속 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는 ‘사회과학개념시리즈’ 30권 중 15권과 슬라보예 지젝과 수잔 손탁의 주요 저서를 번역할 예정이다. ‘한국현대사회운동사’ 등 젊은 사회과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 주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구 의존, 시류 편승한 글쓰기

책세상은 ‘책세상문고·우리시대’에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며, 니체전집 출간 또한 가속화시킬 것이라고 한다. 새로 선보이는 기획으로는 ‘고전의 세계’가 있는데, 이는 해당 분야 젊은 학자들이 주요 동서양 고전들을 소개하는 기획물이다.

각 출판사 기획자들은 출판 흐름에 대한 질문에 대체로 한결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해처럼 가벼운 교양서들이 선호되리라는 것. 다만 이러한 출판 트렌드에 대처하는 움직임들은 사뭇 다른 듯하다. 전체 흐름에 적극 뛰어들려는 움직임 속에서도, 저마다 출판사 고유의 색깔만은 잃지 않으려는 노력들이 그것이다. 그 다양성들이 전반적인 경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 지식인들 속에서 어렵게 고전을 발굴해내는 작업보다 손쉬운 방법으로 서구 고전에 의존하는 경향, 묵묵히 한 분야를 연구하는 것보다는 시류에 편승하는 글쓰기가 선호되는 경향 등의 문제들은 쉽게 개선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강연희·권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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