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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위기, 케인즈주의로 복귀할 것인가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 요구 강화될 것”
신자유주의 위기, 케인즈주의로 복귀할 것인가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 요구 강화될 것”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10.06 1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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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금융위기와 경제 패러다임의 변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낳은 부실 금융 자본을 구제하기 위해 미 정부가 7천억 달러(한화로 약 845조원)를 투입하기로 했다는 소식은 경제, 정치, 사회적으로는 물론이고 학계에도 큰 파장을 낳고 있다. 사상 최대 규모의 미국발 금융 위기 사태가 경제 전반의 패러다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전지전능할 줄 알았던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처음 한계를 드러낸 때는 잘 알려진 것처럼 1929년 미국의 대공황 때였다. 인위적 개입이 없는 시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괴물이 돼 대공황이라는 이름으로 복귀하는지를 경험한 미국은 이후 케인즈주의라는 새로운 명패를 달았다. 그러나 석유 파동과 브래턴 우즈 체제의 붕괴 그리고 기존 경제학으로 설명이 어려운 스테그플레이션의 출현은 케인즈적 처방의 실효성을 의심하게 했다. 게다가 날로 강력해지는 금융자본의 발언 및 로비력으로 인해 70년대 중반부터 이제는 모두에게 익숙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신고전학파의 경제학과 정책 처방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레이건과 대처가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의 기치를 내걸고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가능한 축소해 가면서, 신자유주의는 어느새 미국 경제의 근간이 됐고, 경제학계의 주류 역시 신고전학파로 대체가 되었다.

이후 신자유주의가 주도권을 잡은 영미를 중심으로 자본 이동의 규제 철폐, 노동 시장 유연화, 국영기업 및 공공 서비스 부분의 민영화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복지 국가 위기의 담론 속에 강력한 사회보장 정책을 자랑하던 유럽의 국가들까지도 점차 신자유주의적 선회의 압박을 받았는데, 프랑스 사르코지 정부가 의료 민영화와 주35시간 근무제 완화 등의 정책을 추진한 것도 이런 배경 속에서다. 김대중 정부 이후 급격하게 비정규직이 증가했고, 새정부 들어 공기업 민영화의 격랑 속에 있는 한국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의 흐름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학자들은 이런 배경 속에서 이번 금융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부실에 있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신용도가 낮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규모는 미국 내에서 6천억달러로 전체 주택담보 중 2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이렇게 확산된 배경에는 1990년 클린턴 정부의 저소득층에 대한 융자 관련 규정의 완화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투자은행의 무분별한 투자를 들 수 있다. 박종현 진주산업대 교수는 “유가 증권 발행 업무와 매매를 대행하며 급성장했던 미국의 투자 은행들이 2000년대 이후 실물 경제의 후퇴 속에서 CDO(부채담보채권; 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s) 등을 개발, 무리한 차입을 통해 직접 투자까지 하면서 부실화된 것이 이번 사태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요컨대 류동민 충남대 교수의 말처럼 “규제 없는 투기 자본”이 이번 금융 위기의 원인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부시 정부는 이번 사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가능하면 줄이기 위해 한화로 840조가 넘는 천문학적 자금의 구제 금융 법안을 마련했으나 하원에서 부결이 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정부의 개입이 없으며 안 되는 상황이라는 점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문제는 공적 자금 투입 이후의 전망과 해법에 대한 부분이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경제 전반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입장이 달랐다.

안재욱 경희대 교수는 기존 패러다임이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보았다. 안 교수는 “이번 사태의 원인은 시장의 실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적인 원인은 정부의 통화정책의 실패에 있다”면서 “당장의 어려움을 위해 정부 재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좋겠지만, 어려움이 극복되면 정부는 시장에서 손을 떼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현재의 신자유주의 기조가 지속돼야한다고 보았다. 또 안 교수는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거나 세금을 올리거나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 등을 취하면 1930년대와 같은 대공황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원인을 잘 살펴 어리석은 정책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 주장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이라면서 “정부가 시장을 제한하는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시장은 이 문제를 스스로 치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는 “이번 사태의 규모가 크고, 2~3년 동안 고통을 감내하긴 해야 한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무너지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런 진단에 대해서, 800조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의 공적 자금이 투입되기에 이른 현 사태가 신고전학파 교과서의 논리로 과연 제대로 설명이 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안 교수처럼 정부의 통화 정책 실패를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정부의 ‘올바른’ 개입을 전제한 논리가 아니냐는 문제제기도 가능하다.
다른 학자들의 경우에는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혹은 금융 자본에 대한 감독이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입을 모은다.

김영용 전남대 교수는 “패러다임의 변화까지는 아니지만, 금융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힘을 얻을 것”이라고 보았고, 김영재 부산대 교수도 “주류 경제학의 기본 패러다임은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미국 금융위기는 시장 메커니즘의 불완전성에 기인하고 있으므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진단하면서 “해결방법은 내부 통제 및 감독기능의 강화”에 있음을 강조했다. 또 이시영 동국대 교수도 패러다임의 변화는 부정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다소 위축될 것”이라고 보았다. 한편 이근영 성균관대 교수는 미국만이 아니라, “금융시장이 세계화되는 만큼 국제 통화 질서 내에서도 감독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김 균 고려대 교수는 “이번 사태를 신자유주의의 본격적 후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면서도 “사회적 통념과 도덕율을 망각한 금융시장의 독주가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다는, 미국사회가 보내는 경고로 읽어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개입의 증대가 일종의 케인즈주의로 의 명시적 복귀라고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이재희 경성대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그간 부분적으로 성과를 낳기는 했지만 이미 파국에 이른 마당에 케인지안적인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면서 “일시적 처방이 아니라 정부 개입의 지속적인 제도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도 “아직 위기가 전세계적인 것이 아니고, 사회적 소유를 말하는 말할만한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과거에 금융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뒷받침 됐던 황금시대의 예를 볼 때, 케인즈주의적으로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명시적이든 아니든 케인즈주의적인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고, 이후 경제 패러다임도 변화할 것이라고 보는 이러한 진단에 대해서, 케인즈주의가 신자유주의로 넘어오게 된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곧 국가가 수요확대로 공황을 저지한다는 케인즈주의의 기본 발상은 공황과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이 자본의 과잉 축적에 있다는 점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케인즈주의의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는 일부 학자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와 케인즈주의적 대안 모두를 넘어서는 제3안의 대안이 부상할 수 있다고 본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이번 사태 이후에 미국 대학원에서는 기존 교과서를 쓰지 않을 정도이다. 이는 금융주도 신자유주의의 완전한 파탄을 의미한다”고 보면서 “이제는 기존 신자유주의와 케인지안을 넘어선 대안이 요구된다. 아직 정확히 그 형태를 예측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미국에서는 기술 혁신을 강조하는 뉴 슘페터주의가 가미된 쪽으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성구 한신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에서 “금융위기에 직면해서 국가개입과 국유화는 불가피하다”고 보면서 “미국의 구제금융안은 사실 이런 전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고, 공적자금 투입에 미국 시민들이 반발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라며 구제 금융 지원을 둘러싼 미국 내 논쟁의 원인을 짚었다.
이들 학자들의 진단은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의 유지나 케인즈주의로 복귀를 주장하는 쪽과는 다른 관점을 보이고 있다. 금융에 방점을 찍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기조나, 이미 한계를 드러낸 케인즈주의적 정책의 재탕을 경계한다는 점이 특기할만하다. 그러나 슘페터나 마르크스주의가 현 상황의 대안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고, 대안 패러다임의 그림조차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상황이 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의 경우에는 구 사회주의 경제만이 아니라, 국유화가 가진 한계를 이미 역사가 체험을 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설령 어떤 식이로든 대안적 경제 체제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부상한다고 하더라도, 더 큰 문제는 정치적 세력 관계와 이데올로기가 과연 새로운 패러다임의 부상을 내버려두겠느냐는 점에 있다.

이를 두고 박종현 교수는 “케인즈주의의 복귀는 물론이고, 주식 시장 중심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사회, 정치적 세력 관계가 경제 패러다임 전환에 결정적이기 때문에, 현 상황에서 패러다임의 급진적 변화는 기대하기가 힘들다. 특히 일반인들조차 펀드 등 주식에 많이 의존하는 상황에서 주식 시장을 중심으로 한 현재 경제 체제 자체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김성구 교수 역시 “좌파 정치가 척박한 미국 정치지형에서 좌파의 주장과 요구가 금융위기 하에서라 하더라도 얼마나 힘을 얻을지는 의문스럽다”며 우려를 표했다.

박 교수와 김 교수의 이러한 지적은 경제 패러다임의 구축과 전환은 이론의 심급이 아니라, 정치 세력 간의 역관계에 의해 상당 부분 좌우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는 미국 금융 위기로 인해 짙은 안개가 낀 세계 경제의 미래를 두고 계급 간의 정치적 갈등이 더욱 심화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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