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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기본권 보장하는 권력분립과 연방주의가 示唆하는 것들
국민 기본권 보장하는 권력분립과 연방주의가 示唆하는 것들
  • 강승식 원광대·법학
  • 승인 2008.10.0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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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의 특색을 살피다

미국헌법의 전반적인 내용은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적 인권을 규정하고, 국가권력을 분할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을 비롯한 다른 자유민주주의국가들의 헌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미국헌법을 특징짓는 요소들을 꼽으라면 권력분립(separation of powers), 연방주의(federalism), 기본적 인권의 보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알려진 대로 미국헌법은 연방정부를 창설하고 이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분할하고 있다. 즉 미국헌법 제1조는 입법권을 규정하고 이를 연방의회에게 부여하고 있으며, 제2조는 행정권을 규정하고 이를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다. 또한 제3조는 사법권을 규정하고 이를 연방대법원 및 연방의회가 설치하는 하급법원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국가권력을 분할한 것은 물론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원리를 통해 독재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이러한 헌법에 따라 미국에서 국가권력이 행사되려면 입법·행정·사법부 중 최소한 2府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미국헌법은 연방정부 내의 권력을 분할하는 것 외에 연방정부와 주정부간의 권력도 분할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수직적 권력분립, 즉 연방주의이다. 미국헌법상 연방주의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조항은 제6조이다. 이 조항은 헌법에 의거해 제정되는 연방법률 및 연방정부의 권한에 의해 체결된 조약은 국가의 최고법(the Supreme Law of the Land)임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연방정부와 주정부와의 수직적 관계를 명확하게 정립하는 것이며, 그 실질적인 효과는 연방법과 주법이 충돌할 경우에 연방법 우선의 원칙으로 나타나게 된다.

권력분립, 연방주의와 더불어 미국헌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기본적 인권의 보장이다. 기본적 인권의 보장은 미국헌법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적으로 이에 관한 규정들은 미국헌법 곳곳에 산재해 있다. 미국헌법상 인권조항들 중 가장 중요한 조항으로는 1868년에 제정된 수정 제14조를 들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제1항은 어떠한 주도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사람으로부터도 생명·자유·재산을 박탈할 수 없으며, 그 관할권 내에 있는 어떠한 사람에 대해서도 법률에 의한 평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자는 적법절차조항(Due Process Clause)으로, 또 후자는 평등보호조항(Equal Protection Clause)으로 불리는데, 이들은 주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주정부의 권한을 광범위하게 제한하는 것을 공통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영국정부의 압제를 극복하고 제정된 미국헌법은 국가권력을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토대로 이를 도식화해본다면 ‘권력분립+연방주의 ⇒ 국민의 기본적 인권보장’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연방헌법 자체에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후일 연방대법원 판례에 의해 형성된 사법심사까지도 권력분립과 연방주의와 더불어 중요한 국가권력 제한장치로 기능해오고 있다.

미국헌법이 주는 교훈은 결코 헌법전과 같은 형식적인 요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제 입헌주의경험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권력분립, 연방주의, 사법심사 등 미국의 주요 헌법제도들은 헌정의 실제에서 상호보완관계를 유지하며 오늘날 미국에서 입헌주의를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게 한 원동력이 돼 왔으며, 그것이 말하는 ‘권력의 수직적·수평적 분할을 통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 보장’은 미국입헌주의가 전 세계국가들에게 전하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이다.

현행 헌법에 대한 개헌논의는 일단 권력구조 개편에 맞춰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 밖에 영토조항이나 기본권조항에 대한 개헌논의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들 조항에 대한 개헌논의는 국민들 간의 이데올로기 갈등을 유발해 개헌논의 자체를 소모적인 논쟁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 이는 개헌 자체를 어렵게 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나라 현행 헌법상 권력구조를 개편한다면, 미국헌법은 최소한 다음과 같은 시사를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첫째, 대통령제를 유지해야 한다. 여러 가지 변화의 조짐은 감지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남북대치상황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고 있고, 국민들간의 지역감정은 여전히 극성을 부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정당들은 그 성립과 존속이 지역감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또한 내각제의 성공조건이라고 볼 수 있는 정당의 정책개발능력과 정치적 타협의 문화 역시 우리나라 정당들에게는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점들을 감안한다면 아직까지 대통령제는 우리가 불가피하게 받아들여야 할 정부형태이다.

둘째, 대통령단임제를 개정해야 한다. 대통령단임제는 유권자가 현직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차단하며,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추겨 국정정체현상을 유발한다. 단임제를 개정할 경우에 연임제로 할 것인가 아니면 4년 중임제로 할 것인가가 문제된다. 대통령제의 가장 큰 장점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유권자가 직접 행정부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행정부는 유권자에게 직접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제 하에서 유권자의 행정부 선택범위는 가급적 제한돼서는 안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연임제가 대통령제의 이상에 좀 더 부합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연임제 하에서는 대통령독재가 나타날 수 있으나 이것은 합리적이고도 공정한 선거제도를 통해 해결할 일이지 결코 대통령의 연임을 인위적으로 제한함으로써 해결할 일은 아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군사독재의 경험으로부터 벗어난 지 2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당장 연임제를 도입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행 대통령단임제는 미국식 4년 중임제로라도 반드시 개정돼야 한다.

셋째, 부통령제를 도입해야 한다. 부통령직의 일차적인 목적은 대통령 유고시 대통령직을 대행한다는 점에 있다. 현행헌법은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에는 1차적으로 국무총리가 그 권한을 대행하고, 2차적으로는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하도록 하고 있다(헌법 제71조). 이것은 현행헌법이 부통령직을 두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불가피한 대안이다. 그러나 유권자에 의해 직접 선출되지 않고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국무총리가 대통령유고시에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한다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 관점에서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부통령제를 도입해 부통령으로 하여금 대통령유고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게 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다만 부통령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미국식 런닝메이트제로 할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선거와 부통령선거를 개별적으로 실시할 것인가가 문제될 수 있다.  

넷째,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을 약화시켜야 한다. 미국헌법과 비교해볼 때, 현행헌법은 대통령의 권한을 지나치게 강화하고 있다. 예컨대 긴급명령권 및 긴급재정경제명령권과 계엄선포권 등 국가긴급권에 속하는 권한들(헌법 제76조, 제77조), 그리고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에 대한 국민투표회부권(헌법 제72조)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대통령에게는 행정입법권(헌법 제75조) 뿐만 아니라 법률안제출권(헌법 제52조)까지 부여돼 있다. 이들 권한을 통해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권 수반이 아닌 국가지도자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와 같은 라틴아메리카국가의 대통령제가 실패로 귀결된 원인이 대통령의 국가긴급권이나 행정입법권 남용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현행 헌법의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아울러 우리 헌법과 공직선거및부정경쟁방지법은 국회의원선거에서의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헌법 제41조, 공직선거법 제21조, 제189조). 그러나 비례대표제는 정치적 다원주의의 실현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와는 서로 조화되지 않는 관계에 놓여 있다. 즉 비례대표제 하에서는 다당제가 유발되는 경향이 강하며, 다당제는 행정부와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의회권력을 약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대통령과 의회의 대등한 관계를 전제하는 대통령제에서 의회권력이 약화된다는 것은 대통령의 독재가 발생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미국대통령제가 양당제라는 정치 환경에서 성장해온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요컨대 우리헌법상 대통령독재를 야기할 수 있는 대통령의 국가긴급권, 국민투표회부권, 법률안제출권, 행정입법권, 국회의원선거에서의 비례대표제 등은 모두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승식 원광대·법학

필자는 한양대에서 헌법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의 권력분립원리』등의 저서와 「헌법상 평등에 관한 접근방안」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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