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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유명세를 감당할 진정성은 있는가
저자의 유명세를 감당할 진정성은 있는가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10.06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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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 시리즈의 가벼움 혹은 뚝심

아마도 대다수가 동의할 인문사회과학의 성격이 한 가지 있다면, 그것은 그 본질이 기성의 문제들에 대한 해답 제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식 자체의 창조와 환기에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경쟁과 생존의 방정식으로 환원되는 이 시대의 일차원성이 심화될수록, 비루하기 짝이 없는 문제틀 전복해 새롭게 읽어내겠다는 인문사회과학의 야심은 절실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문사회과학의 이러한 야심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학자들의 연구가 활성화돼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연구 성과를 흡수하고, 다시 비판적으로 내뱉을 대중의 존재와 그 대중과 인문학을 접선시킬 ‘가독성’ 있는 책들의 존재가 요구된다. 요즘 서점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문사회과학 시리즈물은 바로 이 가독성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 관심을 끄는 시리즈로는 우선 생각의 나무의 ‘問라이브러리’ 시리즈가 있다. H(Humanities), A(Arts), L(Literature) 등 세부 시리즈로 이루어진 이 시리즈에 대해 출판사는 ‘답이 아닌 질문의 절실함을 위하여’라는 모토 아래 20세기 극복과 21세기 비전 추구를 통해 지식의 공공성 회복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기획됐다고 밝히고 있다.

김우창, 도정일, 최장집, 장회익, 강수돌, 윤평중과 같이 무게감 있는 논자들을 통해 ‘정의와 정의의 조건’,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등 오늘의 우리가 제기해야 될 물음들을 제기하고 있고, 이후에도 박명림, 임지현, 이어령 등 저명한 필진들의 책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윤평중 교수가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에서 리영희, 송두율 교수에 대해 차분하게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 윤 교수는 리영희 교수에 대해서, 분명 한국 지성사에 남긴 흔적이 작지 않지만, 그 과오도 분명히 해야한다면서, 특히 리 교수를 옹호하는 일부 교수들의 비합리적이고 편향된 자세를 비판하고 있다. 이미 일간지를 통해 문제가 됐던 윤 교수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앞으로 지식인 사회가 어떻게 반응을 할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강수돌 교수가 경쟁의 내면화를 자기소외와 연결하는 대목도 주목해야 하는데, 어떤 사안에 대해서든 목소리 높이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특히 지식인들) 특유의 풍토가 실은 자기비판과 성찰이라는 의무는 방기했음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정일 교수가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에서 시장전체주의를 인문학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김우창, 장회익, 최장집의 책들은 촌철살인의 맛이 다소 떨어지긴 해도 무난하게 시대의 문제점과 해법을 진단하고 있다.

 그런데 윤 교수가 표현한 자기 비판적 계몽의 정신을 바로 이 ‘問라이브러리’ 시리즈 자체에 적용하면 어떨까. 이 시리즈는 저평한 필진에서 수려한 표지 그리고 일목요연한 내용 전개에 이르기까지 가독성을 최대한 고려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런데 페이지를 술술 넘기게 하는 바로 그 깔끔함이 오히려 마음에 걸린다. 왜냐하면 인문사회과학의 생명은 우리의 ‘지금과 여기(jetzt und hier)’를 불편하게 만들고, 페이지 하나를 두고서도 며칠 밤을 고심하게 하는 거친 생경스러움에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 측은 유명 지식인들이 직접 집필한 책이라는 점을 자랑스레 내세우고 있지만, 저자의 유명세가 책의 무게를 더하는 그러한 책이 과연 진정성이 있는지는 의심스럽다.

일종의 우울증 속에 있는 듯이 보이는 사회와 학계에 신선한 화두를 던져보기 위해 기획됐다는 새물결의 ‘What’s up’시리즈는 보다 발랄한 외양을 띠고 있다. 바디우, 지젝, 아감벤 등 국제적으로 명성이 있는 필자들을 통해 ‘사도 바울-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 ‘호모사케르-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 등의 제목으로 한층 세계적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문제인가. 승승장구(?)하는 자본주의의에 대한 문제제기라면 이미 지겹게 들어오지 않았던가. 필자들의 새로움은 자본주의, 제국, 시대에 대한 문제제기를 생명, 사도 바울, 쓰레기와 같은 독특한 우회로를 통해 행하고자 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언어와 개념의 독창성이 국내 논자들의 신문 사설 같은 건조함보다 인기가 있는 이유일 것이다. 다만 외국 학자들의 논의를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책의 내용에 대한 설명도 부족해, 대체 우리의 어떤 현실 문제와 연관할 수 있을지 쉽사리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지젝, 아감벤이나 바디우의 이름이 그 자체로는 신선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이름이 일종의 지적 트랜드로서 유행하고 있는 국내에서는 그다지 신선해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이다. 지젝, 아감벤이 정말로 그렇게 중요하고 대단한 사람들일까.

 이후 출판사의 ‘아주 특별한 상식 NN(NO-NONSENSE)’ 시리즈는 세계화, 기후변화, 공정 무역, 테러리즘 등 시대의 중요한 쟁점들을 친절하게 검토하고 있다. 일목요연한 구성은 짜임새가 있으나, 문제를 절실하게 제기하는 인문학서적이라기보다는 논술용 참고서라는 느낌이 강하다. 이와 비슷한 포맷으로 시중에는 웅진 지식 하우스의 고정관념 Q시리즈 외에 다양한 시리즈물들이 나와 있는데, 가독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인문학서라고 보기에는 무게가 한참 떨어지는 책들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유려하지만 가독성에 대한 요구에 강박당한 시리즈물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귀감이 될 만한 시리즈물도 있다. 그 중 하나가 선인 출판사의 구술자료 총서다. ‘내가 겪은 해방과 분단’, ‘내가 겪은 민주와 독재’, ‘내가 겪은 건국과 갈등’, ‘빼앗긴 시대 빼앗긴 시절-제주도 민중들의 이야기’ 등의 제목을 단 시리즈는 유명한 학자도 아니고,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는 필자들은 아니지만, 진실함의 곡진함 곧 삶의 진정성을 가장 절절하게 전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의 신산했던 삶이 오늘의 우리를 얼마나 부끄럽게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가독성을 이유로 밋밋한 시리즈물을 찍어내기에 여념이 없는 풍토를 반성하게 한다.

아르케의 ‘희망제작소 뿌리총서’도 진지한 문제의식으로 뭉친 시리즈이다. 일본 저자들의 책을 번역했다는 점이 다소 눈에 걸리지만, ‘창발마을 만들기’, ‘1% 너머로 보는 지역활성화’등 이른바 풀뿌리 자치 운동에 대한 실천적 모색을 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한편 가독성은 거의 고려하지 않고 뚝심있는 행보를 보여주는 시리즈물들도 꽤 눈에 띈다.

성균관대 출판부의 ‘유학사상가 총서시리즈’나 다할미디어의 ‘호남 역사문화 연구총서’도 유행과는 거리가 먼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다만, 학술적 가치는 높으나, 인문학적인 문제의식을 불어넣기에는 독자들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시리즈들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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