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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1 鑄貨를 손에 들고
‘유로’1 鑄貨를 손에 들고
  • 송두율 하이델베르크대
  • 승인 2002.0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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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2002년 새해 시작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유로화 시대의 미래에 거는 기대가 상당히 크다. 1957년 로마에서부터 시작된 유럽경제통합이 이제는 누구나 직접 현실로서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유럽여행 중에 국경을 넘을 때마다 돈을 바꾸어야만 했던 수고를 덜 수 있게 된 것이 그러한 현실의 하나의 예일 것이다. 물론 유로통화권에 영국, 스위스, 스웨덴, 덴마크 그리고 노르웨이가 아직 속하지 않기 때문에 이 나라들을 여행할 때는 여전히 환전의 불편이 남아 있다. 그러나 세계 제 2의 경제권의 탄생은 분명히 경제적으로 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획기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

‘30년 전쟁’(1618∼48년)에 종지부를 찍고 국가 간의 평화체계수립을 최초로 약속한 뮌스터의 베스트팔리아(Westfalia)조약으로 시작한 유럽이 수세기에 걸친 갈등과 전쟁을 넘어서서 드디어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산다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앞으로 더욱 명확히 보여 줄 것이다. 유로통화권 내부에는 독일이나 프랑스와 같이 부강한 나라도 있고 아일랜드나 포르트갈과 같이 작고 가난한 나라도 있다. 이들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커질 것인지 라는 질문도 여전히 남아있다. 현재는 이 울타리 밖에 있는 러시아나 동유럽국가들과의 관계도 앞으로 더욱 개선될 것인지, 아니면 동서냉전시기의 장벽이 또 다른 내용의 장벽으로 경고해 질 것인지 아직은 속단할 수 없다.

이번 통용되는 유로화를 보고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가령 1 유로 주화의 한 면에는 가입국의 어떤 나라에서도 통하는 1 유로라는 통화가치가 양각돼 있지만, 다른 면에는 주조한 나라의 상징들이 양각되어 있다. 독일은 독수리, 이태리는 다빈치의 인체비례에 대한 유명한 스케치, 오스트리아는 모차르트를 양각시키는 식으로 각각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들어내 보이고 있다. 개별적 국가가 지금까지 누렸던 통화나 재정정책의 상대적 자율성이 사실상 사라지는 마당에 그러한 정체성의 상징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하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유로화시대에도 견고하게 남아있는 역사와 문화를 느끼게 한다.

자본이 주도하는 ‘지구화’시대의 유로화가 가입국의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되는 보편성과 가입된 개별국가의 특수성을 동시에 담을 수 있는 ‘다양성의 통일’이라는 철학의 구체적인 표현이라는 평가가 과연 타당한가하는 질문도 떠올리게 된다.

유로화시대의 본격적인 개막에 즈음해서 동북아지역내의 경제협력강화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특별히 강조되고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러한 강조는 옳다. 그러나 현재의 동북아의 전체적 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려는 공동의 노력이 없이는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고, 논의의 초점도 우리가 안고 있는 첨예한 문제를 비껴 갈 수 있다. 우선 10여 개의 크고 작은 개별국가의 다양성을 안고 있는 유럽에 비해 동북아는 (남북)한-중-일이라는 주체들 사이에 그러한 다양성보다는 단순성이 존재하고, 그 때문에 오히려 유연치 못하고 경색된 구조 속에 갇혀있다. 유럽통합에 중요한 동력인 독일이 지금까지 보여준 과거청산에 돌린 노력을 염두에 둘 때 일본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바로 동북아의 구조를 지금까지 더욱 경색 시켜 왔던 요인임에는 틀림없다. 유로화 시대의 도래를 위해서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보였던 공동의 노력을 생각할 때 과연 일본과 중국사이에 그러한 노력이 가능했겠는가하는 질문도 또 던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일본과 중국사이에 패권경쟁이 더욱 더 가열될 전망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게까지 들리고 있지 않는가.

이러한 불길한 전망이 옳다면 유로화 시대의 본격적 개막을 맞아 우리는 먼저 일본과 중국사이에서 괴로움을 희망으로 바꾸는 노력에 대해서 또다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물론 재작년의 ‘6·15 남북공동선언’도 균형 이룬 민족경제의 발전에 대한 전망과 의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의 등장이래 지속되고 있는 남북관계의 난항과 함께 그러한 전망은 흐려졌고, 또 의지도 안타깝게 약화됐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일본과 중국과의 경제통합구상이나 환전의 불편 없이 자유스럽게 여행할 수 있는 유로화 시대의 관광객의 입장에서 논하기에는 우리 한반도의 사정이 현재 너무 급박하다. 새로 나온 1 ‘유로’ 주화를 손에 들고 자세히 바라보면서 한 면에는 백두산을, 다른 한 면에는 한라산을 양각시킨 그러한 통일주화 1 ‘원’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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