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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주목한다] 『반노동의 유토피아』(차문석 지음, 박종철출판사 刊)
[이책을 주목한다] 『반노동의 유토피아』(차문석 지음, 박종철출판사 刊)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2.0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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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8 17:30:35
“산업주의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생산양식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이러한 생산양식이나 정치경제체제를 차별 없이 관통하는 근대적 ‘강박관념’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인류 역사의 모든 면에서 진보를 표상하는 담론으로 자리잡았다.” 책의 부제 ‘산업주의에 굴복한 20세기 사회주의’가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케 하는 문장이다.

이 책은 저자의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학위논문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정책:소련·중국·북한의 생산성의 정치’를 토대로 만들어졌다. 저자는 20세기의 특징을 ‘산업주의’(industrialism)로 꼽으며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산업주의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생산성의 정치’로 나타난다고 한다. 생산성의 정치는 제도적 차원과 관계론적 차원으로 나눠볼 수 있는데, 각각 정치적 제도화와 정치적 역관계를 뜻한다. “사실상 양자는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서로를 규정하고 제약하기 때문에 양자를 동시에 고려할 때만 사회주의 사회를 입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

산업주의와 생산성중심주의를 바탕으로 한 생산성의 정치가 20세기 사회주의의 공통된 현상이었다는 설명이다. 더 나아가 “‘생산성의 정치’ 체제는 일국의 사회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진영 내 국가 간 체계를 관통”하고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런데 왜 새삼 사회주의를 언급하려는 것일까. “20세기 사회주의가 현재 우리와 완벽하게 단절되어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는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 대목에서 책의 기획을 수긍하게 된다. “20세기 사회주의를 분석하면서 깨닫게 된 바는, ‘노동하지 않는 인간은 인간일 수 없다(Homo Laborans)’라는 ‘노동 신화’가 20세기 사회주의를 포함하여 모든 체제에서 관철되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노동 전체주의를 극복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런데 새 패러다임은 자동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이러한 역사로부터 우리는 반면교사적 성찰과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증가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필자는 새로이 상상하여 구성하여야 할 ‘유토피아’를 20세기 사회주의로부터 읽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노동의 디스토피아와 반노동의 유토피아. 극명한 명암의 대조가 이 책의 주요 굴곡을 이룬다.

한편 저자는 각 사회주의 국가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있는데, 소련과 중국, 북한에서 나타난 공장관리체제의 예를 들며 논의를 심화시키고 있다. 강제노동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재를 모두 산업주의의 틀로 재구성하려는 것.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그리스신화를 원용한 대목. 요컨대 사회주의의 모범이었던 노동 영웅들은 노동자 계급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헤라클레스들’이었고, 일반노동자들은 이에 무단 결근, 이탈 등의 행태를 자연스레 연출했다는 것이다. “신화를 통해서 노동을 강제하였으나 강제되지 않았으며, 모든 노동자들을 프로메테우스로 만들려고 했으나 노동자들은 디오니소스가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이 주는 궁극적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리의 삶과 노동을 일치시키는 것, 더 이상 죽은 노동이 산 노동을 지배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하는 것이 20세기 사회주의에 대한 검토로부터 나온 선물이다.” 상상력의 힘을 강조하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인 듯.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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