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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확장된 민주주의를 향한 이론적 모색은 가능한가
더 확장된 민주주의를 향한 이론적 모색은 가능한가
  • 서영표 성공회대·사회학
  • 승인 2008.09.29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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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민주화 과정과 사회운동’ 국제 심포지엄 강평기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소장 조희연 교수, 이하 민사연)는 9월 25일부터 이틀간에 걸쳐 ‘아시아의 민주화 과정과 사회운동 : 어떤 변화와 분화를 경험하고 있나’라는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민사연은 학술진흥재단이 지원하는 중점연구소로서 2005년부터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복합적 갈등과 위기에 대한 아시아 비교연구-‘민주주의와 사회운동 관계론’의 아시아적 재구성 및 민주주의 지표 개발을 중심으로」라는 총괄주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총 9년간 진행될 예정인 이 공동연구의 1단계(2005년~2008년)의 주제는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와 한국사회/아시아 : 복합적 갈등과 사회운동의 관계를 중심으로’이다. 1단계 연구를 위해 민사연은 한국팀과 아시아팀의 역할 분담 속에서 공동연구를 진행해왔다. 이번 국제심포지엄은 아시아팀의 연구 결과를 발표, 공유하고 토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한국팀의 연구 성과는 11월초 비판사회학대회에서 주제 발표를 하기로 계획되어 있다).


‘아시아팀’과 ‘한국팀’의 역할 분담에도 불구하고 전체 연구는 동일한 이론적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이른바 민주화의 제3의 물결 이후 나타난 아시아 지역 민주화의 한계와 역동성을 살펴보기 위해 중요한 변수로 시민사회와 사회운동을 위치시키고, 같은 맥락에서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질적인 심화를 이론적으로 쟁점화시키는 것이 공동의 연구 방향이다.

「민주화운동과정에서의 사회운동의 변화와 재구성」을 발표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위에서 언급한 전체적인 연구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독점으로 상징되는 구 모순이 해결되기는 했으나 그 방식이 수동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제한된, 또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쟁점, 즉 신자유주의적 충격이 더해지면서 민주화의 주체였던 사회운동 분화한다는 것이 또 하나의 논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내적 분화를 통해  체제개혁적 사회운동과 대항헤게모니적 사회운동으로 나눠짐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전과 이후를 관통해 민주주의를 진전시키는 기본적인 동력은 사회운동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수동혁명적 성격을 띠고 있는 제한된 민주주의지만 그것을 토대로 민주주의를 질적으로 심화시키고, 거기에 새롭게 등장하는 여성, 생태, 평화, 인권 등의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접합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조희연의 표현을 빌자면 새로운 조건에 대한 사회운동의 응전이 필요한 것이다. 

「민주화 이후 여성운동의 변화와 페미니스트 대항 헤게모니 구축 전망 - 필리핀 사례를 중심으로」를 발제한 허성우 성공회대 교수(여성학)는 이러한 새로운 응전의 가능성을 필리핀 여성운동을 통해 타진해보고 있다. 허 교수는 조 교수가 지적한 수동혁명적 제한적 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결부시키고 그것에 도전할 수 있는 사회운동의 예로서 여성운동을 제시한다.

조 교수가 지적한 민주화 이후의 사회운동의 분화를 여성운동의 입장에서 평가한다면 민주화라는 단일한 목표는 여성운동적 주제가 의제화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동맹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었다면, 민주화는 기존 민주화운동의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성격이 사회운동 안에서 비판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사회운동의 한계를 비판하는 것은 여성운동의 부문적 이해를 표출하는 것으로 이해돼서는 곤란하다. 정체성의 정치, 일상생활의 정치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지금까지 제도적 정치와 생산의 정치에 의해 주변화됐던 재생산(reproduction)의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조 교수가 제시한 새로운 조건에 대한 사회운동의 응전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구화, 半민주주의 그리고 홍콩의 토지권 운동」을 발표한 추인화 홍콩 침례교대 교수(사회학)의 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홍콩은 민주화의 과정을 겪고 있지만 아직은 제한된 반쪽자리 민주주의(semi-democracy)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 추 교수의 지적이다. 여기에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강력하게 작동하면서 복지국가적 토대가 근로국가적 성격으로 바뀌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 과정에서 제한된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에 동시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새로운 사회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환경, 도시계획과 재개발이다. 그러나 이것은 탈물질주의적인 환경운동의 의제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 주민들의 생존권에 관한 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 추 교수의 결론이다. 조 교수의 총론적 시각에서 이러한 투쟁이 어떻게 대항헤게모니적 성격을 가지는 사회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을 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이밖에 「민주주의 이행 이후 필리핀 사회운동과 시민사회의 변화」를 발표한 박승우 영남대 교수(사회학), 「민주화과정에서 인도네시아 사회운동의 변화」를 발표한 이기호 한신대 교수(정치학), 「대만 민주화 과정 중의 사회운동 변화와 재조직화」를 발표한 박윤철 호서대 교수(사회학), 「동유럽, 시민사회 발전 지체와 민주주의 공고화의 지체」를 발표한 이홍균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앞에서 제시된 총론의 방향에서 각각 필리핀, 인도네시아, 대만, 동유럽의 민주화과정과 사회운동의 분화를 분석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 가운데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연구 센터, 데모스」의 발표는 지금까지 요약한 1단계의 연구성과를 2단계로 연결하는데 중요한 시사를 준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복합적 갈등과 위기에 대한 아시아 비교연구-‘민주주의와 사회운동 관계론’의 아시아적 재구성 및 민주주의 지표 개발을 중심으로」는 향후 3년 동안(2008~2011)의 2단계 연구는 1단계의 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아시아 민주주의 지표개발을 시도할 예정이다.

민주화에 대한 초기 연구는 가시적 경성자료(hard data)에 기초한 비교연구가 많았다. 민주화는 2회 이상의 민주적 선거, 사법부의 독립 등 절차적 요소들을 기준으로 민주화의 정도를 평가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사회구성원들이 민주주의를 규범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이고 내면화하는 것에 있다. 경성자료 분석으로는 분석하기 어려운 측면인 것이다. 데모스는 민주화에 대한 객관적 지표가 가지는 일면성을 극복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제시한다. 데모스가 선택한 방법은 사회운동의 14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문조사를 실시하는 것이다. 활동가들의 민주화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 지표로는 잡아낼  수 없는 인도네시아 민주화과정의 불균등성과 구조적 한계 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이 가지는 문제는 표준적인 사회과학 방법론이 요구하는 엄밀한 과학성, 즉 연역적 논리성이나 귀납적 증명을 제시하기가 어렵다는 것에 있다.

민사연의 2단계 연구의 목표는 경성자료가 아시아 민주주의의 특수성을 보여줄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동시에 민주주의의 질을 비교·평가할 수 있는 연성자료를 지표화하는 작업을 시도하는 것이다. 정적인 분석을 넘어서 민주화 과정의 역동성을 보여주고 그럼으로써 민주화 과정이 더 많은, 그리고 더 확장된 민주주의를 향한 현재진행형임을 이론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국제 심포지엄은 1단계의 연구성과를 공유하는 자리인 동시에 아시아 각국의 민주주의의 질을 비교연구하려는 2단계 연구계획의 출발점의 의미를 갖는다.

 

서영표 성공회대·사회학

필자는 영국 엑섹스대에서 「런던 광역시 의회에 대한 이론적 성찰과 영국 신좌파에게 가지는 함의」로 박사학위를 했다. 현재 성공회대학교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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