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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생태학, 제국과 식민지의 은밀한 시선 결합돼 있다
20세기 생태학, 제국과 식민지의 은밀한 시선 결합돼 있다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09.29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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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김기윤 한양대 강사의 ‘환경의 비교사적 연구’

지난 19일 서울대에서 열린 제12회 한국서양사학회 학술대회의 주제는 ‘환경과 생태의 역사’였다. 역사 연구를 본업으로 하는 학자들이 ‘환경과 생태’에 눈을 돌렸다는 것은 흥미롭다. 기존의 환경 담론이 지닌 제국주의적 속성을 지적하면서도, 제국과 식민지의 이분법을 넘어서 다각적 차원에서 환경사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역설한 김기윤 한양대 강사의 논문 「환경의 비교사적 연구 : 제국의 눈과 식민지의 눈」이 눈길을 끈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김 박사는 국내 서양사학계에서는 드물게 환경사를 주제로 논의를 전개했다. 그의 논문은 환경을 단순히 역사적 관점에서 다루자는 주장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역사적 논의가 가질 수 있는 위험성과 전망을 짚어줌으로써 향후 환경사 관련 논의의 안내자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환경을 역사적 맥락 특히 세계사적 맥락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시도는 90년대 들어와 활발해졌다. 세계사 관련 학술잡지인 <Journal of World History>가 기후, 환경, 질병 등을 비중 있게 다루게 되는 동시에, 세계적으로 환경이 중요한 정치적, 대중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환경사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런데 환경 담론은 흔히 갖는 반제국주의적 외양과 달리 그 이면에는 빈부 격차의 은폐라든가, 사회적 모순의 외면, 거대 기업 및 국가의 주도 등 제국주의적인 면도 갖고 있다. 이는 환경사를 비롯해 환경 관련 담론이 갖는 제국주의적 측면의 문제성을 지시한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제국과 식민지라는 단일한 실체들을 전제해 대립시키면서 큰 이야기로만 환경을 말하려는 관점 자체가 문제임을 지적한다. 그간 환경을 세계사에 접목시키는 시선은 엘니뇨, 소빙하기와 같은 큰 시간의 흐름 즉 자연사적 관점을 강조하거나 혹은 제국 대 식민지라는 일면적인 대립을 통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 박사는 이러한 관점이, 환경과 자연을 둘러싼 소규모 집단의 역사나 개인들의 실천을 사상함은 물론이고, 제국과 식민지의 관점을 넘나들며 전개된 다층적이고 복잡한 역사의 지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고 강조한다. 그의 요점은 환경사가 거대 역사(Macro History)의 관점이 아니라, 파편화된 작은 역사(Micro History)들의 접합과 굴절을 통해 연구돼야 한다는 것이다. 곧 제국과 식민지의 이분법을 넘어서 환경사를 다중적으로 바라보자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박사는 논문의 초두에서부터 “중심부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결국 주변부의 시각을 발굴해내는 시도로 이어진 것이다. 주변부의 역사적 문화적 또는 물리적 힘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결국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는 경우는 더 흔히 볼 수 있다”면서 제국주의적 기획이 식민지적 의도로 이어지거나, 식민지적 기획이 제국주의적 의도에 봉사하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자연, 환경, 생태를 조망하려는 역사의 프리즘이 결코 일면적이지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 예로 18세기 린네의 식물분류학과 19세기 훔볼트의 자연학 그리고 20세기 생태학 및 환경 보호론을 든다.

우선 린네의 자연사에 대해서 김 박사는 “학문 분야로서의 자연사는 개인적 집단적 이해관계를 떠나서 순수한 자연의 연구라는, 일견 제국의 정복의제에 반하는 활동형태를 취하면서, 실상 지구를 자원의 창고로 보는 제국의 눈이 돼 주었으며, 또 그 자원을 수탈해 내는 도구가 돼줄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는 곧 린네가 과학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과학으로 인해 지구 전체가 상업, 정치, 식민 지배의 대상이 될 수 있었으며, 이어서 유럽 부르주아 계급의 경쟁, 착취, 폭력의 그림자가 지표 여기저기에 각인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경제나 관리를 논하는 린네의 입장이 제국주의적 자연관으로 전용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김 박사는 바로 린네의 경우조차도 주변부적 시선이 교착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린네는 전형적인 제국의 부르주아와는 거리가 먼 학자였고, 스웨덴 역시 제국의 중심지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제국의 눈이라는 집합적인 실체를 상정함으로 해서 너무 많은 역사적 행위자들의 실체가 가려져 왔음”을 의미한다.

김 박사는 환경사학자로 저명한 프랫(Pratt)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19세기의 훔볼트를 “제국의 눈을 형성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그려보고 있다. 훔볼트는 “그가 여행했던 지역의 지형과 기후 그리고 동식물들을 높은 곳에서 조감하듯 측정하고 도표화하면서 훨씬 공격적인 방식으로 제국의 도구로 활약했다.” 특히 “제국의 의지가 담긴 훔볼트의 자연학 특히 자연지리학은 남아메리카 문화에 갖가지 흔적을” 남기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 내려는 남미 사람들로서도 훔볼트가 남겨 놓은 그 지역 자연에 대한 서술은 훌륭한 도구”가 돼 주기에 이른다. 이는 결국 남미인 등의 현실과 관련이 깊을 포스트 식민주의적 기획 자체가 제국의 또 다른 이면이자 사생아로 드러남을 의미한다. 그런데 김 박사는 여기에서도 “훔볼트는 남미의 자연 뿐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도 상당량의 저술을 남겼으며, 노예제도나 부당한 경제제도 등에 대해서도 강경한 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곤 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단일한 제국의 눈이란 없으며, “제국의 눈이라는 분석틀 속에서도 다층적인 서사와 다양한 분석 단위들”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20세기 생태학의 경우는 보다 극명하게 제국의 눈과 식민지의 눈이 자웅동체처럼 은밀한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생태학은 흔히 급진적이고 진보적이며 지극히 반제국주의적 입장을 가진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김 박사는 “현대적인 학문분야로서의 생태학이 형성되고 정립돼 온 과정은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의 논지에 따르면, 생태학은 본래 “1900년대에 식물상의 천이 과정을 이주민이 정착민을 제거하면서 서식지를 점유해 나가는 모습”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1920년에서 1930년대에 생태계의 개념을 확립한 영국인 탠즐리의 경우는 “영국 연방의 효율적인 관리를 염두에 두었다.” 이는 설령 환경이 인류 미래를 위협할 수 있다는 자각 자체가 중심부 제국에서 연원하지 않았더라도, 제국의 시선이 없이는 불가능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게다가 극단적으로 순수 자연을 찬양하는 목가적 경향의 경우에도, “동물보호구역을 설정하면서 그리고 국립공원을 지정하면서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을 몰아내는 과정을 승리를 향해 진행되는 환경사로 그리는 행태”를 통해 제국주의적 면모를 보인다. 김 박사는 이를 두고 “인간의 개입이 배제된 원생지 또는 원생 자연에 대한 거의 무조건적인 열광적인 숭배 역시 제국주의적 시선이 만들어낸 관념인 듯싶다”고 평하는데, 이는 곧 제국의 질서를 회의시하는 환경 담론이 제국의 질서 내에서 배태됐으며, 제국과 식민지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혀 서로를 바라보는 중층성이 20세기 생태학의 진실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김 박사는 논문 말미에서 “사회경제적인 상황, 법률제도, 제국주의적인 힘 등, 지형, 기술은 물론 시간, 공간, 진보에 대한 개념과 같은 추상화된 길과 같은 구체적인 마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제국의 눈과 식민지의 눈을 나누어 대조시켜 보거나 국가단위의 차이를 살피는 데서보다 훨씬 더 다양한 장소에서 다층적 층위로 길을 찾아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김 박사의 논의는 환경사, 생태사를 둘러싼 논의가 조야한 환경 보호 담론이나 혹은 제국과 식민지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거친 분류법의 한계를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 그 중요성이 있다. 다만 김 박사의 다원론적 접근법이 환경 담론에 대한 제국주의적 접근법의 위험성을 흐릿하게 하는 것 아닌가라는 문제점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환경사를 미시적 관점에서 조망해야할 필요성이 보다 풍부한 사례와 분석을 통해 그려지지 않고, 주장에만 그친 감이 있는 점도 한계로 보인다.

국내 학계에서는 동양사 분야의 유장근 경남대 교수, 정철웅 명지대 교수 등이 환경사 연구자로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서양사 학계에서는 주경철 서울대 교수김기봉 명지대 교수 등이 오래 전부터 꾸준한 관심을 보여 왔다. 이번 학회를 계기로 성영곤 관동대 교수, 박흥식 서울대 교수 등이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연구자들의 등장이 기대된다.

거대사 또는 지구사로서의 환경사의 문을 연 앨프리드 크로스비의 책이 『콜럼버스가 바꾼 세계: 신대륙 발견 이후 세계를 변화시킨 흥미로운 교환의 역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있다. 생태학의 역사를 사상사의 시각에서 다루면서 동시에 환경에 미친 산업자본주의의 힘을 보여주는 고전이 된 도널드 워스터의 책도 『생태학, 그 열림과 닫힘의 역사』로 소개돼 있다. 포스트 식민주의 담론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그 연구 결과들을 잘 보여주고 있는 데이비드 아널드의 책은 『인간과 환경의 문명사』로 번역됐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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