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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신뒤르켐주의 문화연구의 두 얼굴
[깊이읽기] 신뒤르켐주의 문화연구의 두 얼굴
  • 배성인 한신대 외래교수·정치학
  • 승인 2008.09.22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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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삶의 의미: 문화사회학』 제프리 C. 알렉산더 지음│ 박선웅 옮김│ 한울 아카데미│ 2007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문화를 이론화하려는 학문적 연구가 많이 진행됐지만, 문화현상의 복잡성 때문에 다양한 문화이론들은 체계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사회가 직면하는 큰 위기와 그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구성원들의 대응 방식을 문화적인 시각으로 풀어가는 논의가 풍부하게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것은 풍성하게 진행돼온 학계의 문화 담론이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에 의해서 주도됐거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관점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문화 담론을 영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주도했고 사회학은 주변에 머물러 제 역할을 못한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그러한 결과로 인해 심각한 지적 불균형과 문화에 대한 풍부한 사회학적 전통이 무기력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현재의 이론적 경향으로는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비판과 함께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거시와 미시, 구조와 행위, 안과 밖을 아우를 수 있는 사회학적 문화이론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그런 점에서 ‘신기능주의’를 주창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제프리 알렉산더의 저작은 고전사회학자 뒤르켐에 뿌리를 두고 기호학과 해석학을 적극 수용해 신뒤르켐주의 문화연구의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는 우리가 늘 경험하는 일상사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다루는 해석학과 기호를 통해 의미를
생산하고 해석하며 공유하는 행위와 그 정신적인 과정을 연구하는 기호학을 종합해 ‘구조주의 해석학’ 이란 관점을 개척했다. 그럼으로써 코드와 서사 등의 문화구조가 인간의 행위와 상호작용, 사회적 제도 등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와 방식을 조명했다.

그는 기존 미국 사회학계의 주류담론인 파슨스류의 정통 기능주의가 문화-사회의 친화성만을 강조한다고 비판하면서 문화의 굴절, 적대적 문화 등으로 보완·계승했다. 그가 제시한 기획은 바로 뒤르켐과 베버에 그 기원을 두고 뒤르켐의 저작을 참고한 뒤르켐주의 문화사회학으로서 미국의 역사적 사건에서 사람들의 주장을 분석했다. 문화사회학을 위해서는 보다 해석학적이고 기호학적이어야 하며 뒤르켐과 베버를 해석학 및 기호학과 연관 지워 풀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알렉산더는 뒤르켐과 베버를 자주 등장시키면서 해석학과 기호학으로 치장해 새롭게 해석했다. 이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그 결과 1980년대에서 9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미국사회학계 내에서 기존의 문화분과사회학(sociology of culture)과는 차별되는 문화사회학(cultural sociology)이 발전돼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강한 프로그램(strong program)’을 제안하면서 문화사회학의 이론적 정교함을 추구하고 있는데, 강한 프로그램의 핵심은 문화의 자율성을 이론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그는 문화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문제를, 문화를 사회구조로부터 분석적으로 분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기존의 문화분과사회학은 문화를 사회구조에 의해 결정·규정되는 상부구조나 이데올로기로 봄으로써 문화의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의 문화분과사회학은 ‘약한 프로그램(weak program)’이다.

알렉산더는 약한 프로그램이 여전히 문화에 대한 사회학적 탐색을 지배하고 있다면서 해석학적 부적절성, 문화의 자율성에 대한 애매함, 그리고 구체적인 사회과정에서 문화의 작용에 대한 추상적인 기제 등의 조합을 약한 프로그램의 특징으로 본다.

파슨스의 기능주의, 영국의 버밍엄학파, 유럽의 네오 마르크스주의, 피에르 부르디외의 실천이론, 하버마스의 비판이론, 미셸 푸코가 주도한 탈구조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 등이 가장 대표적인 약한 프로그램의 주자들이며, 이들이 이론적인 흐름을 강력하게 지배해왔다고 비판하고 있다.
알렉산더는 ‘강한 프로그램’과 ‘약한 프로그램’의 구분기준을 문화의 자율성이 얼마만큼 해석학과 기호학에 의해 풍부하고 견고하게 보장되느냐에 있다고 보았다. 문화의 자율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문화는 물질적 요소에 종속됨을 의미하며 그만큼 인과적 설명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뒤르켐의 사회이론이 전반적으로 최초의 구조주의적인 작업이라는 사실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그런데 뒤르켐은 세속화된 근대시민사회에서 사회적 결속이 왜 가능한지, 보편적 사회도덕이 집합의식으로 창출되고 재생산되는지 명쾌하게 답을 구하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러한 뒤르켐의 연구전통은 배제됐다. 그 이유는 현대의 이성적인 인간이 경제나 정치같은 생활밀착형 부문을 중요시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성이라는 말은 성과 속과 같은 문화적인 것과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됐다. 이러한 배경이 저자로 하여금 사회갈등과 사회통합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강한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목표는 문화구조 즉 개인 집단 혹은 제도적 행위를 안내하는 구조를 밝히는 것이다. 그의 강한 프로그램은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에 의해서 제공된 해석학적 기획에 의해발 됐다.  그리고 미국의 실용주의와 경험주의 전통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이론적 논의를 진전시키고 문화사회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경험적 논의, 사회적 서사, 사례연구를 동원하고 있다.

책의 구성이 전쟁이나 홀로코스트와 같은 근대의 폭력(2장), 워터게이트 청문회와 같은 세속 의례에 의한 도덕적 집합의식의 강화(6장), 미국 시민사회의 투쟁(5장), 컴퓨터에 대한 무의식적 의미구조와 사회적 반응(7장), 경험적 연구를 위한 이론적 논의(3, 4장) 등으로 이뤄진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강한 프로그램으로 대표되는 알렉산더의 문화사회학은, 사회적 현상을 경제나 정치와 같은 도구로 분석하려고 하는 요즘 경향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에, 제도와 행위자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구조주의를 발판으로 삼아 한계를 돌파하려는 이론적 구체성과 경험적 연구에 대해서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강한 프로그램의 가장 큰 장점은 그것이 단순히 추상적인 문화 이론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경험적 연구를 위한 구체적인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 책은 기존의 문화연구와 달리 사회통합의 문제에 진지한 질문을 던짐으로써 문화사회학의 지평을 확장한다.

하지만 구조주의의 추상성과 이론적 수준을 뛰어 넘으려는 경험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측면에선여전히 난해하다. 그는 알튀세르와 푸코 등의 인과성과 자율성에 대한 글쓰기 노력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난해하고 복잡한 언어 작업과 기능주의와 유사한 환원론적 사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표명했지만 그 역시 난해한 말과 복잡한 글을 통해 부분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신기능주의는 정치학에서는 이미 오래전에 수용돼 많은 학자들에 의해서 응용되고 있는 접근방법으로서 참신성과 독창성과는 다소 거리가 멀다. 아마 그의 이론이 늦게 소개된 탓이리라.
경험적 분석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제도와 행위자에 대한 분석은 객관성으로 포장된 주관적 수준에서의 분석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이 우려가 된다.

미국적 경험 연구가 한국적 상황에 맞게 적용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즉 이론의 일반화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문제로 남겨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문화를 사회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상부구조나 이데올로기로 봄으로써 문화의 자율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일면적이다. 무엇보다 문화적 마르크스주의에 의해서 문화연구가 독점돼 지적 흐름을 편향시켰다는 문제제기는 불편하다. 마르크스주의가 추구하는 문화사회는 결국은 임금노동과 상품생산이 아니라 문화활동이 삶의 중심이자 목표가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추구하는 사회통합과 공동체가 과연 모든 구성원들에게 평등의 원리가 구현된다는 효율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배성인 한신대 외래교수·정치학

필자는 단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략적 유연성, 한미동맹의 대전환』 등의 저서와 「부시의 위기인가 미국정치의 위기인가」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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