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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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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09.22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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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지만.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과거와 미래를 겨냥한다. 왜냐하면 책을 통해 우리는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다. 이번 주 신간 안내는 과거와 미래를 사유하게 하는 책들을 모아보았다.

우선 교양과학 분야의 『물리학으로 보는 사회』(필립 볼 지음, 이덕환 옮김, 까치)는 근대 이후 출현한 여러 물리학 이론들을 통해 각 시대를 조망하는 참신한 저작이다. 이를테면 근대 물리학의 기계론이 당대의 홉스적 사회상과 닮았다는 식의 논의를 전개한다. 그러나 물리학으로 사회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하기란 애초에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까. 이 책은 논의는 상당히 산만해서, 구체적으로 물리학 이론이 어떻게 각 시대의 사회를 바라보는 프리즘이 될 수 있는지를 파악하기기 쉽지 않다. 흥미롭게 읽을 책이긴 하지만, 이론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일만한 책은 아니다.

역사학 분야의 『치유의 역사학으로 : 라카프라의 정신분석학적 역사학』(도미니크 라카프라 지음, 육영수 외 옮김, 푸른역사)는 정신분석이라는 메스로 역사를 해부하려는 저작이다. 저자인 라카프라는 전이 등의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통해 역사적 대상에 대한 거리두기와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라카프라의 이러한 주장은, 역사를 단순한 사실의 나열로 보는 것도, 그렇다고 자신을 이입시켜 지극히 주관적 관점에 매몰시키는 것도 거부하면서, 반성과 성찰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역사의 상처에 대한 치료는, 역사의 아픔을 지금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에서 거리를 둘 때 가능하다는 것, 바로 이 거리두기의 변증법을 염두에 두면서 읽을 만하다.

역사학 분야의 또 다른 책으로는 『역사로서의 현재-전 세계 권력 지형에 대한 비판적 조망』(네르멘 사이크 외 지음, 김병철 옮김)이 관심을 끈다. 13명의 세계적 지식인들은 이 책에서 세계 경제, 신제국주의, 인권, 세속주의 등과 관련된 현대의 모습들을 역사적 맥락을 통해 고찰한다. 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 문제들이 역사라는 맥락을 가지고 있다면, 그 역사의 무게만큼, 문제들을 해결하는 길은 쉽지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제 경제 기구가 그 성립 및 발전의 과정 속에서 부유한 국가들의 이해를 주로 대변하게 됐다든지, 영국 등의 식민 통치에서 해방됐지만 식민 정부의 유산은 지속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역사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역사를 통해 현재를, 역사로서의 현재를 바로 이 책과 함께 끊임없이 바라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역사학 분야의 책을 한 권 더 보자면 『국가폭력과 세계의 진실위원회』(프라실라 B.헤이너 지음, 주혜경 옮김, 역사비평사)에 주목해야 한다. 전 세계의 진실위원회(혹은 유사한 형태의 위원회)를 소개하고 검토하는 이 책은 역사의 상처를 다루는 올바른 태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실증적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진실과 정의의 양립 문제나 가해자의 이름 공개 문제, 그리고 진실위원회의 구체적 운영에 대한 고찰은 몇 번이고 되씹고 검토하고 고민해야 될 주제들이 아닐 수 없다.

지식인들의 대담집 『전환의 모색 -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할 것인가』(장회익 외 지음, 생각의 나무)는 한국 사회의 현 좌표와 향후 행보에 대한 진지한 대화의 산물이다. 민주화, 시장경제 등 삶의 직접적 현안에서부터 한국 인문학의 패러다임과 생명사상의 문제 등 지식인 담론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하며 현재와 미래를 잇는 가교를 고민하고 있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좀 더 많은 필진이 참여해 다양한 측면에서 우리의 미래를 사유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이다. 책의 후속편이 계속해서 나와 주길 출판사 측에 기대한다. 만일 후속편이 나온다면 더 젊은 학자들의 신선한 주장과 사유와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철학에서는 다소 특이한 저작이 『전래동화·민담의 철학적 이해』(이종란 지음, 철학과 현실사)라는 이름으로 나왔다. 이 책은 콩쥐팥쥐 등 전래동화를 이데올로기적, 철학적, 사회적, 역사적 맥락에서 다각적으로 분석하면서, 조상들이 사회를 바라본 시선이 오늘에도 유용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콩쥐팥쥐를 해석하면서 사회적 악행에 대한 응징을 말하고, 이어서 친일파 청산까지 이어지면서 힘없는 다수의 승리까지 말하는 저자의 필력에는 경탄을 금할 수 없다. 무리한 점이 없지 않지만, 전래동화와 민담에서 현 사회가 지향해야 될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반성하게 하는 이 책의 시도는 철학이 어떻게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가를 읽게 해준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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