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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볼 수 없는 것을 만질 수 있게
[나의 강의시간] 볼 수 없는 것을 만질 수 있게
  • 박 경 성신여대·지리학
  • 승인 2008.09.2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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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에서 나의 강의 철학에 대한 원고청탁을 받고 생각을 해보니, 정작 내가 강의 철학을 말할 만큼 강의법에 대한 연구가 있었던가를 생각해 보았다. 수년째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도 어떻게 강의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강의해왔다는 반성이 먼저 나를 짓누른다. 하지만 현재의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는 말에 안도하고 글을 쓰기로 했다.

우선 내가 가장 역점을 두고 가르치는 과목은 지형학과 ‘환경변화 및 재난관리’라는 과목이다. 두 과목을 가르치면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많이 고민한다. 그 이유는 지형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이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엄밀한 과학이 아닐 뿐더러 실험실에서 복원하거나 실수를 거쳐 가면서 배워갈 수 있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수학이나 통계학처럼 증명이나 문제풀이를 통해서 가르칠 수 있는 과목도 아니다. 대부분의 실험 과학은 얼마간의 실험실 작업을 통해 증명이 되거나 가정이 틀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지형분야는 어떠한가. 산사태의 거대한 규모는 이론적 설명의 틀을 벗어나기 십상이다. 이러한 현상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강의실로 끌어다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생각한다. 내 강의엔 그래서 상당한 양의 시청각 자료가 투입된다.


그 대부분은 국내외의 답사를 통해 개인적으로 수집한 사진자료를 이용한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지형은 다양하며 혼자서 이 모두를 답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지형학 교과서에서는 이들 모두를 가르치도록 요구하고 있으니… 이젠 학생들도 외국을 다녀올 기회가 많아 내가 가보지 못한 지형을 답사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런 때는 요즘 말로 ‘대략 난감’.이런 점에서 ‘구글’은 구세주 역할을 한다. 현대는 자기 홍보시대인 까닭에 소소한 여행기 또는 답사기를 인터넷 상에 올리고, ‘구글서치’가 찾아준 이들 자료를 적절히 강의에 이용하기만 한다면 별 문제없이 해결할 수 있다. 동남아를 휩쓸었던 쓰나미의 추억은 우리에게 벌써 아련한 기억만으로 남아 있지만 재난관리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원인, 경과, 사후 대책 등을 추적하게 해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정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학생들에게 지도하는 것은 적절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부생들에게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 세울 정도의 가설을 설정하게 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좌절감만을 줄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리포트의 주제를 잡으라고 하면 대부분 대단히 큰 주제와 문제의식을 가지고 면담을 하러온다. 하지만 본인이 투입할 수 있는 시간과 방법론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첫 면담에서 흔들리게 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중요하지만 학문의
세계에서는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한 교육 방법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학생들과의 ‘면대면 대화’가 중요하다.

근엄하기만 한 교수는 대화가 어렵다는 것이 개인적인 소신이며, 중고등학교의 담임선생처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는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이다. 학생들의 김밥도 하나씩 집어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대화와 수업에 참여한 모두와의 시선 맞추기, 그리고 가능한 모두의 이름을 외우고자하는 노력이 수반되면 학생들과의 대화는 쉬워지고 그러면 좀 더 진지한 학문의 세계에 대한 토론도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박 경 성신여대·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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