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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찾아내는 ‘디박’… 자기말로 글쓰기 교육 강조하기도
표절 찾아내는 ‘디박’… 자기말로 글쓰기 교육 강조하기도
  • 최성욱 기자
  • 승인 2008.09.22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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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베끼기, 예방책 있나

인터넷, ‘정보의 바다’를 누벼온 학생들은 보고서 작성에서 표절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대형 강의, 전공수업, 실험실습을 막론하고 자행되는 학부 학생들의 보고서 표절에 교수들은 기술적인 측면과 교육적인 측면에서 그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일찍부터 표절예방프로그램을 개발해 온 조환규 부산대 교수(정보컴퓨터공학부)와 글쓰기 연습을 통해 체질개선의 효과를 노리는 강석우 가톨릭대 교양교육원장(일어일본문화전공), 하병학 교양교육원 교학부장을 만났다.

조환규 부산대  교수는 3~4년전 대학원 연구원들과 함께 ‘공학작문’시간에 쓸 프로그램을 고안했다. “학생들의 글이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첨삭해주기 위해서 유사구와 단어를 찾아주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만들고 보니 표절여부도 가려지더라고요.” 한글판 표절예방프로그램 ‘디박(DeVAC:Document eVolution Analyzing Center)’은 우연한 ‘발견’과 같았다.

영미권 대학에서는 표절예방프로그램을 상용화한 지 오래지만 한글인식기능이 없어 한국의 대학당국들은 프로그램 도입에 주저해왔다. 디박은 자주 쓰는 단어와 신생어를 포함, 총 2억 어절을 망라한 ‘한글말뭉치사전’을 탑재시켜 검색영역을 한층 넓혔다. “유사단어 표절여부를 퍼센트로 나타내 줍니다. 대형 강의나 인터넷 강의 과제물 검사 때 진가를 발휘하죠.” 하지만 인터넷 자료까지 자동 검색을 하지는 못하기 때문에 비교문서들을 함께 입력시켜야하는 한계는 있다.

기계의 효율성만큼이나 조 교수의 활용원칙은 뚜렷하다. 우선 과제를 제시할 때 표절여부를 디박으로 검사하겠다고 학생들에게 공지한다. 디박을 구동시켜서 의심이 가는 보고서들을 가려내고 개개인 면담을 한다. “유사단어 빈도가 높다고 표절을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사연을 들어봐야죠. 그런데 5~6단어가 유사하면 거의 맞다고 봐요. 이런 학생들은 대부분 자인합니다.”

창의적 글쓰기에 디박의 기여도는 어느 정도일까. 한때 조 교수는 학생들에게 주제를 주고, 표절여부를 가려내기 힘든 ‘표절보고서’를 주문했다. 학생들은 30분에 안에 마칠 분량을 무려 3시간이나 소모했다. 조 교수는 실제로 과제를 낼 때 보통 네 시간 정도 매달리면 작성할 수 있는  A4용지 다섯 장 분량의 보고서를 요구한다.

에피소드도 솔깃하다. 조 교수는 재미삼아 어느 연구기관 자료들을 디박으로 구동시켜 본 적이 있는데 표절은 기본이요, 베낀 것을 또 베낀 문건들도 많았다고 한다. “정부 보고서만 봐도 기본적으로 ‘양’입니다. 내용보다 외형을 중시하는 경향을 고쳐야 해요. 표절예방대책은 개인윤리의식을 강조하기보다 양적 평가기준부터 고치는 게 우선입니다.”
표절예방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보고서 표절을 근절할 수 있을까. 조 교수는 손사래 친다. “디박은 다분히 도구일 뿐입니다. 검색프로그램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학생들의 보고서 표절 여부를 가려내는 건 결국 교수님들의 몫입니다.”

조 교수는 디박 외에도 ‘프로그래밍 보고서 관리시스템’도 자체개발해서 전공수업에 활용하고 있다.  디박은 작년부터 외부사람들도 이용가능 하도록 프로그램을 열어두고 있다( http://devac.cs.pusan.ac.kr:8080).
학교 차원의 예방책도 있다. 가톨릭대는 한국학술진흥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학부생을 대상으로 ‘학습윤리’교육을 하고 있다. 교양교육원(이하 교육원)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표절근절운동에서 규율에 따른 강력한 징계, 소위 법치주의는 발도 못 붙인다. 자기 판단의 힘을 길러주는 윤리교육과 올바르게 인용하는 글쓰기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표절문제에 윤리교육을 강화하거나 글쓰기 교육을 보강하는 양자택일의 정책을 취한다. 교육원의 시각은 다르다. 학생들에게 학습윤리를 심어주기 위한 전제는 언제나 창의적 글쓰기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몇 해 전부터 가톨릭대는 ELP(윤리적리더육성프로그램)과정을 운영하고, 창의력과 문제해결능력을 배양하는 CAP과정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하병학 교수는 학부생 보고서 베끼기의 문제를 초중등교육부터 풀어간다. “학생들은 ‘무엇, 무엇을 조사해 오시오’라는 학습패턴에 익숙합니다. ‘조사하라’는 교육방법은 창조적인 성과물을 만들어오라는 게 아니라 학자들의 의견을 수집해 오라는 것이죠.” 여기에 강석우 교수의 말을 덧붙이면, “인용과 학습의 모호한 경계”를 이해할 기회가 없었던 학생들에게 보고서 짜깁기 정도야 남의 얘기나 다름없다.

교육원이 추진하는 윤리교육과 글쓰기 작업의 근간은 학생들에게 ‘다가가기’다. 하 교수는 단어 하나까지도 조심스러워 한다. “연구윤리, 연구윤리 강조하는데 학부생들에게 ‘연구’는 거리감이 있어요. 학부생들에게는 ‘학습’윤리가 적절합니다.” 교육원은 연구조교도 ‘수업조교’로 바꾸어 부른다.

학부 과정부터 보고서 베끼기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주기 위해 체크리스트와 가이드라인을 자체 제작해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일종의 학습윤리 양심선언에 해당하는 체크리스트는 학내 모든 교과목 보고서 표지에 의무기입을 추진 중이다.

“‘자기의 말로 자기의 글을 써보라’는 과제를 던져주면 쓸 말이 없다며 막연해 하죠.” 창의적인 글쓰기를 유도하는 강 교수의 교수법은 간단하면서도 흥미롭다. 먼저 지난 수업시간에 어려웠거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말하게 한다. 학생이 이해하면 ‘왜 그 주제(혹은 분야)를 모르겠다고 했는지’를 물어본 후 주제 선정 이유와 내용을 글로 쓰게 한다. 강 교수는 “창의적인 자기 글쓰기는 이 단계부터 가능하다”고 말한다. 학생은 본인의 글로 발표를 하고 참고문헌을 정리한다.

교육원은 보고서 표절문제를 학생들의 시선에서 풀어나가는 데에 의지를 가지고 추진하고 있다. 학생들은 교육과 글쓰기를 통해 진화하고 있는데 만성화돼 있는 일부 교수들의 무관심이 지속된다면 학생들의 양심적 보고서는 요원하다. 학생들의 보고서 베끼기 예방대책에 윤리교육과 글쓰기 훈련이 병행되듯이 교수와 학생의 변화와 노력은 함께 시작돼야 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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