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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치과의사와 수학자
[딸깍발이] 치과의사와 수학자
  • 박경미 편집기획위원·홍익대
  • 승인 2008.09.22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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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미 편집기획위원·홍익대
얼마 전 치아 치료를 받으러 어려서부터 친구였던 치과의사를 찾았다.
그 친구는 말썽을 일으킨 치아를 신경치료해 아픈 상황을 호전시켜 주고 크라운을 씌우는 유형의 변화를 만들어냈다. 치과병원 의자에 누워있는 내내 그 친구의 전문성에 비할 때 과연 필자의 전문성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수학이나 교육과 관련된 일은 가시적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무형의 변화를 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수학을 가르치는 일을 주요 관심사로 하는 필자는 실제적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주눅이 들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첨단 기기를 산출해내는 공학 분야와 비교할 때 수학과 교육은 금방 어디에 소용되는지 입증해 보이기 쉽지 않다.

일반인들은 골치 아픈 수학을 배워서 어디에 써먹나 하면서 삐딱한 시각에서 바라보지만, 수학의 효용 가치는 대략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첫째는 수학이 제 분야의 기초 이론을 제공한다는, 비교적 직접적인 기여이다.

일기예보를 할 때 복잡한 미분방정식을 풀어야 한다거나, 경제학의 한계효용을 계산할 때 미분이 필요하다거나, 혹은 정보화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암호학에서 정수론이 요긴하게 이용된다는 예를 통해 수학의 쓰임새를 설명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수학 학습을 통한 사고력의 신장이라는 측면이다. 수학 내용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길러지는 여러 가지 사고력, 이를테면 논리적·비판적·창의적 사고력이나 추론 능력, 추상화 능력 등은 다른 학문을 하는 정신적 토대를 이룬다. 예로부터 수학은 인간의 정신 능력을 기르는 도야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시대와 중세에는 7자유학과로 중요시됐다. 특히 플라톤은 『국가』에서 ‘기하학은 아래로 향하는 우리의 영혼을 위로 향하도록 철학적인 마음가짐을 만들고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가는 학문’이라고 규정했다. 이처럼 수학은 우리의 생각을 정돈하고 합리적으로 추론하며 사고에 질서를 부여하는 인간 사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씨의 병’이라는 위상수학적 개념이 소제목으로 등장하는데, 이 두 가지 개념의 특징은 소설 속에서 적절한 은유를 형성한다. 이처럼 작가는 문학 작품과 수학을 접목시키기도 했지만, 아마도 작가가 수학을 배우며 습득한 사고력은 문학적 상상력의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작가가 복잡하게 얽힌 복선을 정교하게 구조화하며 소설을 쓸 때 수학을 통해 길러진 사고력이 일조했을 것이다.

요즘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양 과목에 대한 요구 조사를 해보면 ‘밸리댄스’나 ‘결혼학’ 등 시류를 타는 과목을 신설해 달라고 한다. 어차피 대학도 수요자 중심으로 서비스를 해야 하니 고답적인 성격의 과목을 버리고 학생들의 요구에 충실한 과목으로 방향을 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름대로 설득력 있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식 능력이 왕성한 대학 시절에 배워야 할 과목은 실제와의 관련이 적어 대학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면 자발적으로는 평생 접할 기회가 없는 이론적, 사변적, 추상적 성격일 필요가 있다.
즉 대학교육마저 지나치게 실제적 유용성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영국의 교육학자인 피터즈와 허스트는 실용적인 가치가 낮아 보이는 교과를 왜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 ‘지식의 형식’이라는 개념을 동원해 설명했다. 수학을 비롯해 고전적인 교과들은 인간이 장구한 세월에 걸쳐 누적시켜온 경험의 상이한 측면을 각각 개념적으로 체계화한 것이다. 또 이런 체계화는 특정 개인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공동으로 발전시키고 엄밀하게 정련시켜온 공적인 성격을 띤다. 따라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인류의 정신적인 공적 전통인 지식의 형식에 입문할 필요가 있다. 

수학과 교육을 논하는 필자의 일을 치과 의사의 일과 비교할 때 비록 눈에 띄는 그 무엇을 금방 만들어내지는 못하지만 여러 학문을 하는 펀더멘탈을 제공함으로써 다방면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을 확인해야 할 것 같다.

박경미 편집기획위원·홍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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