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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사] 업과 카르모그라프
[신년사] 업과 카르모그라프
  • 교수신문
  • 승인 2002.0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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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8 17:21:18
지난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송년호에서 교수들은 한 해의 우리 사회를 한자 성어로 五里霧中이라고 풀이했습니다.

寸鐵殺人의 혜안이고 교수다운 세상보기입니다. 그래서인지 각 일간지에서 풍자와 가르침으로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얼마전 새 천년을 맞는다고 밝은 세상의 소망으로 유난스러웠던 소란을 떠올리면서 씁쓸해집니다.

고사에서 유래된 오리무중의 사전적 정의는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찾기 어려운 것같이 무슨 일에 대하여 알 길이 없음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마 이러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길은 暗中摸索(?)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교수사회가 암중 모색이나 하고 있어서야 어찌 되겠습니까. 새해를 맞이하면서 因·緣·業 세글자를 화두로 삼아 正言·正行·正道를 찾아 우리 사회를 밝히는 등불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한 이것이 교수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로 여겨집니다.
적절한 옮김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연은 마음으로부터 생긴다는 글 귀 하나를 소개하면서 말문을 열고자 합니다. “뜻(情)이 있어서 씨가 묻히니, 인연 땅에 열매로 나네. 뜻이 없으니 씨가 없어서, 성품도 없고 남(生)도 없다.”

인연이란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 지은 열매라고 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란 말을 흔히 쓰듯 인연은 ‘인’과 ‘연’의 복합어로 因은 어떤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며 내부적 요인으로 개인의지의 적용을 받는 반면 緣은 이차적 요인들로 조건 즉 외부적 요인으로 사회적 조건의 구체화입니다.

세상사의 모든 일들이 인연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불교의 중요한 사상이지만 가벼히 쓸 수 없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농사의 예를 들면 볍씨는 인(원인)이고 노력, 기후, 물, 비료 등은 연(조건)인데 이 두가지가 화합해야 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과거에 자신이 지은 원인에 의해 이뤄진다는 인과의 이치는 자칫 운명론으로 치부될 수도 있습니다. 인과의 이치 속에는 운명과 그 극복 방안이 동시에 제시되어 있는 것이기에 인생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과 속에 있는 운명과 생명의 주체성과의 관계를 분명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여기에 존재와 비존재의 인간적 존재의 양면성에 직면하는 자아실현의 필연성이 요구되어집니다.

인과 연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겨나는 것이고 그 본질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또한 운명론적인 회의에 빠져 들기도 합니다. 그것은 예정되어 있는 것일까, 우연 또는 필연일까 이는 오로지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나가는 것이고, 만들 수 있고,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지금 잘못된 인과 연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 등 갖가지 인과 연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불투명하게 만들어 비리와 부패가 만연합니다. 어쩌면 이 사회를 오리무중으로 만드는 무슨 게이트니 리스트 등은 모두 악연의 결과입니다.

끝으로 생각하여야 할 것은 業입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모든 행위를 ‘업’이라 하는데 ‘짓는다’의 뜻으로 인과응보 또는 업보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이는 인도 힌두사상의 카르마(갈마)라는 개념에 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 말은 통속적으로 지금 나쁜 짓을 하면 저승에 가서 개나 돼지로 탄생한다는 윤회론의 교훈으로 작용하는 역사적 인과율을 말합니다.

불란서의 작가인 베르베르의 소설 ‘타나토노트’에서 히틀러는 분재로, 스탈린은 실험실의 흰쥐로, 무솔리니는 곡마단의 개로 환생하여 업보를 겪고 있다고 했으니 끔찍하기도 합니다.

악업은 반드시 악보로 되돌려진다는 진리를 새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업’과 ‘보’의 인과가 나타나는 시간의 불확정성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악업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베르베르의 소설에서 고안한 재미있는 기계, 카르모그라프(Karmograph)를 소개하면서 우리 각자의, 우리 사회의 선업점수와 악업점수를 계산해 보았으면 합니다. 만약 어떤 벤처기업이 이 카르모그라프라는 기계를 상품화했다면 얼마나 잘 팔릴까. 그리고 이 기계가 등장하고 나면 이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좋은 세상이 되겠지요.

올해에 어느 교수가 이 기계를 만들 용의는 없으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새해 새아침 발행인 이영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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