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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꿈을 위한 줄타기
[학이사] 꿈을 위한 줄타기
  • 서용순 세종대·철학
  • 승인 2008.09.08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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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순 세종대·철학

실제로 많은 사람이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할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이전의 가치가 몰락하고 새로운 가치가 완전히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인 것처럼 보인다. 학교 곳곳에서 보이는 여러 풍경은 이러한 변화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학문에 대한 열의와 지적 욕구는 학생들 사이에서 사실상 실종됐고, 도서관에서는 영어와 각종 고시준비에 열중인 학생들로 가득 차 있다. 대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공간이라기보다는 단순히 취업을 준비하는 예비 직업인들의 대기소로 전락한 것 같다. 진리? 한 마디로 웃기는 말이다.


세상은 변했고, 그 변화에 따라 사회의 모든 것은 재편되고 있다.
이런 말은 어쩌면 불필요할지도 모른다. 세상은 그런 것이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이 세상이다. 우리는 때로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때로 그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변화는 순리를 역행하기도 한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아주 급진적인 퇴행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역사, 지극히 비극적인 역사를 보고 있노라면 어떤 희망 또한 품게 된다. 그러한 역행에 역행하는 사람들의 흔적 역시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철학자들의 이름이다. 타락한 그리스 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으로부터 출발해, 절대왕정의 확고한 지배를 거부했던 계몽주의 철학자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흐름에 끝까지 맞서 싸웠던 마르크스, 객관주의의 지배에 홀로 대항했던 키에르케고르… 비록 그들 중 많은 숫자는 오늘날 배척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그들이 틀렸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오로지 하나, 확실한 것은 철학이 현실의 변화와 거리를 두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회철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의 변화에 대해 고민한다. 게다가 오늘날과 같이 거칠 것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변화와 마주한다면 그 고민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철학이라는 학문 중에서도 사회철학이라는 분과는 현실과 직접적으로 관계하고 있기에 그러한 변화에 눈을 감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철학’이기에 무차별적인 현상을 경계하고 그 현상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


그렇게 사회철학은 현실을 고민하며 현상의 배후를 노린다. 바로 거기에 사회철학자의 딜레마가 있다. 그의 학문은 단순한 학문을 향한 열정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한 거시적인 통찰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남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으로 전락하는 것을 경계해야 하는 위험스런 줄타기인 것이다. 현실을 이야기하며, 현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현상들과 거리를 두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일까. 더구나 오늘날처럼 시류에 편승하는 세태가 ‘대세’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때에는 그 현상들과 거리를 두는 것은 적지 않은 용기를 요구한다.


이 시기는 실제로 사회철학에 많은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질서가 세계를 지배하는 오늘날, 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에 착수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몰두하고 있는 사회철학의 몫일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그것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하는 근거를 만들어내는 일이야말로 사회철학을 연구하는 학자의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확신을 나는 지울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일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학문, 세상에 아부하기 위한 학문이 아니라면, 그 학문이 현상과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견지하는 것이라면, 그 학자에게는 고단함에도 지치지 않는 인내가 요구된다.


그저 시류에 편승하는 것은 양심을 가진 학자가 걸어야 할 길이 분명 아니다. 그 길에 혼자 남더라도 옳은 것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용기야말로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는 학자의 자세가 아니던가.
학문으로 빛을 삼고 글로 소금을 삼아 어둠에 빠진 세상을 밝히고 썩어가는 세상을 치유하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 학자의 학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러한 명제는 분명 이상적이다. 짐작컨대, 많은 이들은 그것을 이상적인 것을 넘어 ‘공상적’이라고 말하며 코웃음 칠 것이다.


결코 무리가 아니다. 지금의 세태가 그러하다.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세상이 지금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인류의 역사상 이런 시대는 얼마든지 있었고, 그 가운데는 공상적인 것으로 보이는 보편적 가치의 이름으로 과감히 시류를 거스른 학자들  또한 있었다.


이 시대 역시 그러한 학자를 절실히 요구한다는 생각이 비단 나의 것만은 아니리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질서를 다시 생각하고, 그것을 극복할 최소한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어쩌면 내가 꿀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꿈일지 모른다. 그 꿈을 계속 꾸기 위해서, 이 위험스런 줄타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위험을 통과한다.

서용순 세종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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