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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책이 태어난 자리들, 책을 보는 시선들
[신간안내] 책이 태어난 자리들, 책을 보는 시선들
  • 오주훈 기자
  • 승인 2008.09.08 1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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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시장의 불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출판사들은 자신들의 고집스러운 원칙과 독자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이번 주 신간은 바로 그 출판사들의 분투를 느끼게 해준다.

   우선 철학에서는 『알랭 바디우와 철학의 새로운 시작 1,2』(김상일 지음, 새물결)이 눈에 띈다. ‘『존재와 사건』과 『도덕경』의 지평융합을 위한 시도’라는 야심찬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의 저자는 한신대에서 철학를 가르쳤던 교수이다. 저자는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의 문제의식 및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걸어간 길이 결코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바로 공통된 문제의식 해결의 실마리를 바디우의 수학적 존재론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다. 대단히 난해한 이 저작이 얼마나 많은 학계나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나름의 관점에서 독창적 논의를 전개하려는 저자의 시도는 눈여겨봐야 한다.

   한편 역사학 분야에선 『근대공문서의 탄생』(김진우 지음, 소와당)에 관심을 가져볼 수 있다. 이 책은 소와당의 고문서연구총서의 두 번째 책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책이다. 한국학 중앙 연구원에 재직 중인 저자는 이 책에서 갑오개혁 당시 공문서의 변천 과정을 세부적으로 추적, 한국의 근대를 살펴보고 있다. 이를테면 날짜표기 방식이나 국한문 사용, 서명 방식의 변화는 물론이고, 관청의 문서 취급 규정 등을 통해 오늘날 우리 사회 공문서 양식의 근간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상업성은 없어 보이지만, 이런 묵직한 주제의 책을 과감하게 내놓은 출판사의 뚝심에 감탄할 뿐이다.

   문학 비평에서는 『섹슈얼리티와 광기』(이수영 지음, 그린비)가 있다. 연구 공간 수유+너머의 연구원인 저자는 ‘한국 근대문학과 앎의 의지’라는 부제로 펴낸 이 책에서 푸코의 이론을 적극 차용하여 섹슈얼리티와 광기를 통해 20년대 한국 문학을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근대문학은 병든 상태에서만 인간의 감춰진 진실을 포착할 수 있었다”고 말하면서 “무의식적 진실에 대한 앎의 의지가 근대문학에 다름”아니라고 강조한다. 색다른 시각으로 한국 근대문학을 바라보려는 저자의 용기는 높이 사야할 것이다. 그러나 일제시대라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고찰보다 서구 이론에 의존하는 모습은 ‘댄디즘’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킨다.

   교양과학 분야에서도 괜찮은 신간이 보인다. 『과학이 광우병을 말한다』(유수민 지음, 지안)는 어느 정도 열기가 식었지만 끝났다고 할 수 없는 광우병 논쟁을 겨냥한 책이다. 뇌 과학을 연구한 현직 의사인 저자는, 200 여 편의 광우병 관련 과학 논문을 토대로 관련 쟁점들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저자의 깔끔하고 신중한 정리는 ‘위험하다’ ‘아니다’의 위험한 이분법을 넘어서고자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띠지와 뒤표지 등에서 출판사가 홍보를 위해 책의 내용을 과장하고 있는 점은 눈에 거슬린다. 예를 들어 출판사 측은 ‘더 이상의 광우병 논쟁은 없다’, ‘과학은 광우병의 실체를 알고 있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과학적 증거에 입각해 현재까지 조심스럽게 추정된 내용과 향후 연구되어야 할 부분을 밝히고 있는 저자의 신중함에 배치된다.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등의 책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다치나바 다카시의 새로운 책이 번역되었다. 『천황과 도쿄대 1, 2』(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청어람미디어)는 천황과 도쿄대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2차 세계 대전 종전까지의 일본 근현대사를 해부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전통적인 정치학, 역사학 논문의 형식이 아니라, 논픽션 리포트의 형식의 책이다. 그래서 천황과 도쿄대라는 축이 지탱하고 있던 “초국가주의자들의 이론과 심리의 실제를 그들의 뇌수 갈피갈피와 마음의 갈피갈피까지 헤집고 들어가 보다 깊이 파헤치는 것”에 주력한다. 학벌주의가 여전히 견고하고 뉴라이트의 물결이 심상치 않은 우리 입장에서,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를 듣듯이 볼 수만은 없는 책이다.

오주훈 기자 apo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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