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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2001 송년세미나 '토론자 논평 요약문'
교수신문 2001 송년세미나 '토론자 논평 요약문'
  • 교수신문
  • 승인 2002.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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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8 17:12:09
강신익(인제대 의철학):박이문 교수는 몇 가지 중요한 전제의 검토를 생략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선이 무너졌다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유전물질이 같은 종류라 하더라도 현상적으로 나타나는 차이마저 무력화될 수 없다. 오히려 생명공학이 제기하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검토하기 이전에 생명공학의 이론구조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유전자결정론이 문제인데, 실제로 유전현상은 새포 내, 유기체 내 환경과도 긴밀히 영향을 주고받는다. 여기서 비환원적 생물학의 가능성을 타진해볼 수 있다. 우리는 시간과 물질의 덫에 갇힌 생명을 구제해 더 넓고 깊은 시공간으로 끌어내야 한다. 물질보다는 가치를, 개체보다는 맥락을, 인간보다는 생태를, 시간보다는 더 넓은 시공간을 중심에 두는 생명개념이 필요하다.

이중원(서울시립대 과학철학):생명공학의 발전을 대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생명공학을 위시한 과학기술 문명시대의 바람직한 윤리는, 인간에게 행복 혹은 선을 제공하는 긍정적 요소들만을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실용주의적 윤리관을 벗어나, 인간 나아가 자연에 불행 혹은 악을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요소들을 이러한 긍정적 요소들과 대등하게 평가하여 양자의 조화를 이루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윤리이어야 한다. 즉 과학기술의 양면성이 윤리적 판단에 동등하게 반영돼야 한다. 한편 생명복제의 문제는 몇몇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윤리기준들에 의거해 해결하기 어렵고 사회집단 내부의 의사결정만으로 해소될 수도 없다.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엄밀한 분석을 위해서는 과학의 도움이 필요하다. 비록 과학기술이 인간사회에 많은 윤리적 문제를 야기했지만, 역설적으로 올바른 윤리적 선택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성진기(전남대 철학):인간 존재와 인간의 삶은 문화적 규정에 제약받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타인의 장기이식의 덕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사람이나 복제된 인간에게 바람직한 인간적 삶이 약속될 수 있는가. 우리는 복제되거나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인간의 인생에 대해서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또 인간의 무병장수를 위한 노력을 비난하는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첨단생명공학을 인류의 축복으로 동일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의 논의점 ‘경계에 선 생명’, 바로 그 위험은 진정한 인간적 삶의 의미를 간과해버린 공학기술의 곡예와도 같다.

김명식(고려대 철학연구소):박이문 교수는 생명이 소중한 이유를 입증하기 곤란하며 그 가치 또한 주관적 느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는데 그렇지 않은 측면도 있다. 어떤 환경은 누군가에게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다. 우리가 그 존재의 성장과 관련된 생물학적 조건을 안다면, 그것은 평가가 가능한 객관적 사실의 영역이다. 이것은 인간의 인식 및 승인과 무관하게 존재한다. 한편 생명의 문제들은 경제적 사유만으로도, 형이상학적 사유만으로도 해결되지 않는다.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합의이다. 즉자적 선택, 준비되지 않은 선호에 기초해서는 안되고, 숙고(deliberation)에 기초한 것이어야 한다.

강미정(한남대 생명윤리):생명공학이라는 기술 자체는 그 의도가 식량문제해결에서 시작해 삶의 질을 고양하려는 선한 것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생명공학의 기술이 자본주의와 인간의 이기주의, 편의주의와 어우러져 반윤리적 행위를 가능케 했다. 따라서 생명공학 기술 자체에 윤리성, 반윤리성이라는 평가보다는 그것을 이용하는 인간들의 윤리성, 반윤리성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생명공학이 오히려 인간의 주체성을 증대시켰다고 본다. 즉 신이나 자연의 위력에 대항한 인간의 주체철학이 생명공학을 낳게 했고, 이 생명공학적 결과를 인간이 자유롭게 이용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생명공학으로 인한 자율성의 과도한 남용이 여러 부작용을 일으켰다. 때문에 인간의 가치관 설립이 중요한 것이다.

홍성욱(토론토대 과학사):박이문 교수는 낙태, 인간복제 등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보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개인의 선택의 차원을 벗어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첨단 생명공학의 가장 큰 이슈는 유전자조작을 통해 인간을 바꾸는 것이고, 이로 인해 발생할 유전적 차별의 문제가 우려된다. 개인적인 선택은 그 개개인의 이성과 자유에 기반하며, 이를 충분히 사용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어느 정도 평등하게 나누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첨단 생명공학이 나아가는 방향은, 바로 지금의 권력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향이라는 것이 우려스럽다. 돈 있는 사람들이 월등한 능력의 아이를 낳고, 돈 없는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면 미래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한계를 인정하고 공론을 존중하는 태도만으로는 이런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결국 이것은 개인의 선택의 한계를 사회가 결정하는 문제, 즉 정치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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