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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빵이 건물’ 강남 진출기
‘빵빵이 건물’ 강남 진출기
  • 이용재 건축평론가
  • 승인 2008.09.08 15: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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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도심 속 벌집 ‘어반 하이브’

1972년 김인철은 전동훈 선배의 소개로 엄건축연구소 입사. 첫 직장. 당시는 ‘엄건축연구소’ 전성시대. 소공동 롯데호텔을 시작으로 광화문 교보빌딩, 세종문화회관 현상설계 당선. 통일교가 추진하는 여의도의 108층 규모의 통일교 성전도 수주. 아시죠 엄덕문 선생 통일교 신자인거.

마침 이희태 선생이 명동에 있던 사무실 문 닫고 칩거 중.
1978년 엄덕문이 이희태를 영입해 광화문 교보빌딩의 실시설계를 맡기면서 엄건축연구소는 엄이건축연구소가 된다. 엄덕문이 통일교 산하의 일성건설 사장으로 옮기면서 이제 엄이건축은 이희태 시대를 맞이한다. 마침 통의동 사무실이 도로 확장으로 철거되면서 엄이건축은 엄덕문 선생이 자택 지으려고 마련해둔 평창동 언덕에 사옥 짓고 이사.

1986년 엄이건축 문 닫게 생겼다. 엄덕문의 제자 김인철과 이희태의 제자 이각표가 마주 앉았다.
김인철은 디자인 사장, 이각표는 경영 사장. 김인철 소장님. 왜. 먼저 나가서 자리 잡으십시오. 곧 따라 가겠습니다.

빚 청산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미 사옥도 건설회사로 넘어간 상태. 5팀 중 2팀을 끌고 김인철은 야반도주. 강남에 아지트를 만든다. 부소장 한영제와 마주 앉았다.
야, 사무실 이름을 뭘로 할까. 형 이름의 인자와 제 이름의 제자를 따서 인제건축으로 하죠. 그러지 뭐. 이게 아르키움의 전신이다.

엄이에서 갖고 나온 의정부시청, 논현동주택, 연희조형관으로 버틴다.
아르키움은 ‘architecture+um’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건축가들이 모여 사는 집이다 뭐 그런 뜻이다.  제일생명 사거리 노른자 땅 300평이 매물로 나왔다. 일명 동경카바레.
교회에서 만난 건축가에게 설계 의뢰. 구청 미관심의에 두 번 낙방. 열 받아 구청장을 찾아갔다.

난 강남구에 세금 내려고 왔다. 왜 못 살게 구냐. 도대체 낙방이유가 뭐냐. 여긴 보통 땅이 아니다. 강남 교보타워에 필적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설계자 바꿔라. 좋다. 그럼 내 고등학교 동기가 김인철인데 그 친구면 돼냐. 오케이.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후문 앞 본사 캠포츠빌딩 설계 이후 20년 만에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야, 디자인 하나 해주라.

어딘데. 제일생명 사거리. 뭐라고나.
나 꿈이 강남대로에 진출하는 거다.
만날 강남 뒷골목만 어슬렁거리다 37년이 흘러갔다. 잠이 안 온다. 건너편엔 보타가 서 있고. 너 잘 만났다. 수만 평의 벌건 덩어리를 이기는 방법은. 내 평생에 기준층이 있는 건물을 맡아 보기는 30년 만이고.
이번에 돈 좀 벌어 보자. 

뭘 모르는 사람들, 기준층이 있는 건물이 뭐냐고 질문을 날린다.
“같은 모양의 평면을 계속 쌓아 나가는 건물. 카피 카피.”
아리아리하게 가자. 있는 듯 없는 듯. 수평 목재 루버를 쭉 보내고 동측 면에 거대한 영상 멀티비전 설치.
미관심의 단박에 통과. 목재 루버는 살랑 살랑 움직이고. 어라 루버에 먼지 쌓이면 어쩌지. 재설계에 들어간다.

이제부터 까지기 시작.
자부담이라. 난 언제 돈 벌지. 건축주에게 전화. 야, 다시 만들었다.
노출 콘트리트에 105센티미터 크기의 구멍을 3천371개 뚫었다. 모형을 본 건축주의 아들 왈. 아빠, 이거 벌집 아냐. 그래 이 ex-void는 urban hive가 된다. 도시의 벌집. 재심의 통과. 통과 이유. 희한하게 생겼음.
대형 시공사를 찾아 나섰다. 연면적이 3천500평이라고나. 우린 1만평 이하는 안함. 

신성건설이 나섰다. 작지만 강남대로에 2년간 신성건설 간판을 설치할 좋은 기회.
신성건설 사장은 현장소장을 불렀다.
야, 김인철이 시키는 대로 해라. 까져도. 예. 월 구조. 외벽이 전부 힘을 받는다.
그래 내부엔 기둥이 없다. 시원한 공간.
철근을 전부 45도로 배근하고 만들어진 다이아몬드 형태에 원 구멍을 뚫는다.
왜 圓이지.
“사각은 땅, 원은 하늘을 뜻하걸랑.”
지하 4층까지 파 내려가고 지하 2층은 상가, 지하 1층은 내년 완공될 지하철과 연결.
연결 공사비 7억은 자부담. 이제 비로소 1층으로 올라왔다. 이제 김인철은 꿈에 그리던 강남대로에 콘크리트 타설 시작.

아르키움 전 직원은 콘크리트 타설 날 현장으로 출근. 애인도 동반. 모두 집에 전화를 한다. 아부지 저희 지금 강남대로에 레미콘 타설 중이에요. 축하한다.
스틸 프레임 현장 제작. 40센티미터에 이르는 외벽이 터지면 안 되니. 레미콘 회사는 공장 세우고 물청소. 레미콘 차도 물청소.
노출콘크리트가 곧 마감이니. 철판에 구멍 세 개를 수직으로 세우고 4면을 쭉 돌렸다. 15대의 레미콘 도착. 타설. 제일 작은 잡석 사용. 치고 비비고치고 비비고. 1시간이면 칠 양이지만 4시간 걸린다. 살살. 살살. 뽀얀 마감을 위한 일이라.

여긴 최고 높이 60미터 제한지역.
1층을 시민에게 돌려 줬다. 10미터 완화. 그래 이 집의 최고높이는 70미터가 된다.
타설 17번 반복. 구청에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2008년 5월부터 최고높이가 80미터로 완화 됩니다. 뭐라고나. 공사 끝났는데.
나 원 참. 정면인 강남대로변을 비롯한 3면은 50센티미터 뒤로 물러나 전면 유리 설치.
더블 스킨. 벌집을 통과한 빛은 90센티미터 완충지대를 지나면서 아리아리해진다.
내부 바닥엔 다시 벌집 그림자가 쫙 만들어지고. 뻥 뻥.

지나가던 택시기사에게 손님이 물었다.
저 건물 이름이 뭐에요. 희한하게 생겼네요. 아 저거요. 빵빵이 빌딩이요!
그래 이 집은 도시의 벌집에서 빵빵이가 된다. 집주인 열 받았다.
뭐라 내가 빵빵 이라고나. 벌집을 아무리 외쳐도 소용이 없다. 동측 면에 샤프트를 두고 다시 3미터 폭의 빈 공간을 둔다. 여긴 흡연공간. 부럽다.

장안의 화제. 모든 신문도 이 건물을 빵빵이라고 부르고. 악플이 올라왔다.
돈암동에 있는 빵빵이 빌딩을 베꼈대나 뭐래나.
“아니 선생님 애들이 베꼈다고 난리네요.”
“내가 먼저 설계했음.”
“홍콩의 빵빵이를 베꼈다는 악플도 올라왔는디유.” 사진을 보여주신다.
“저건 pc판 붙인 거야. 난 창을 뚫은 게 아니고 프레임 자체가 창임. 그럼 4각형 창 건물은 전부 서로 베낀 건가.”
“그러네요. 그럼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 감유.”
교수님 방에 있는 의자를 가리킨다.

 
몇 년 전 전시회에 출품했던 3센티미터 크기의 구멍이 뻥뻥 뚫린 의자. 공사비는 평당 6백만 원. 연면적 3천500평 곱하기 6백만 원이면 얼마더라.
여기 땅값이 얼마더라. 평당 1억 2천.
“몇 평인데.” “3백 평.”
“그럼 전체 땅값이 얼마야?” “몰라.”

임대자들이 줄을 섰다. 전체를 통으로 쓰겠다는 이도 나서고. 대부분 디자인 회사들. 조건이 있다. 외벽에 간판 설치 불가. 길가에 별도로 기둥 세워 간판 설치해 준다. 플래카드 설치도 불가. 아리아리한 입면을 망가트리면 안 됨. 70미터 높이의 노출콘크리트 건물은 국내 첨.
세계적으로도 아마 첨인. 밤에 전 층에 불을 켰다. 3천781개의 원 구멍은 완전 벌집. 전국의 벌들 속속 도착. 바글바글. 강남대로에 공짜 집이 만들어 진거다.

이 집에 들어서는 방문객은 조심할 것. 벌에 쏘일 수 있음.
“아니 선생님 왜 건물 이름에 영어를 쓰시는 거에요.”
“우리도 이제 글로벌화해야지.”
국민 여러분 부탁드립니다. 이 건물 빵빵이 아니걸랑요. 어번 하이브. 어번 하이브. 어번 하이브. 들은 척도 안하는군. 빵빵.

“선생님, 좀 남으셨남유?”
“또 까졌음.”
길담서원에 특강을 갔다. 아줌마들 바글바글. 자녀를 건축과 보낼려고 하는디. 뭐라고나. 굻어죽고 싶으면 보내서유. 내가 아는 건축가 중 돈 번 사람 한 명도 없음. 단 부모가 도와주면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순 있음. 물론 평생 밀어 줘야 됨.

 

이용재 건축평론가

필자는 명지대 건축과 대학원에서 건축평론을 전공했다. 주요 저서로는『좋은 물은 향기가 없다』,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든거에요』,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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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우 2019-07-20 03:20:12
엄덕문 선생님 작품에 관심이 생겨 조사하던 중 좋은 글 읽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