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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설비 과잉 프랑스에서 배워야 할 교훈
원전설비 과잉 프랑스에서 배워야 할 교훈
  • 석광훈 / 녹색연합 정책위원
  • 승인 2008.09.0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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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030 국가에너지기본계획 타당한가

지난달 신규 원자력 발전소 문제로 정부와 시민사회간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제3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하 국기본)이 확정됐다. 지난 2002년에 작성된 제2차 국기본만 하더라도 그런 계획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사회적 관심은 극히 낮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국기본은 ‘국가기본계획’으로서의 위상과 기능을 전혀 갖지 못한 채 전력, 천연가스, 석탄 등의 개별 에너지수급계획들을 단순 짜깁기하는 유명무실한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에너지수급 구조는 지난날 유휴원전 이용률제고, 중화학공업 지원, 물가관리  등 다양한 부문에서 다양한 정책목표들을 추진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대부분 특정 논리에 따른 것으로 오래전 정책시효가 소멸됐거나 국가전체 차원에서 재평가해 볼 때 종료됐어야 하는 것들이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체계적인 평가와 개별 에너지정책들을 재조합할 수 있는 의사결정기구가 절실하다. 이 때문에 지난 4년 동안 시민단체와 민간전문가들은 국가에너지기본법을 법제화하고 국가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가에너지위원회 구성안을 제시해 국기본의 위상을 환골탈태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정부가 제출한 국기본은 앞서 밝힌 문제들에 대한 개혁방안은 없이 향후 건설할 원전 개수 제시 등 이미 전력수급계획처럼 하위계획에서 하고 있는 일들을 단순 반복함으로써 많은 이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국기본이 반드시 제시했어야 할 일들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에너지가격구조 특히 전기요금 개선책이다.

현재 우리의 전기요금을 구성하고 있는 핵심적인 논리는 원자력발전과 같이 건설비는 비싸지만 연료가격이 싼 발전설비의 이용률 제고, 철강, 비철금속 등 제조업지원정책이다. 정부는 지난 1980년대 건설한10여기 원전의 70%가 유휴설비로 남아돌 때 이의 이용률을 높여주기 위해 할인형 요금제도들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들 전기요금 할인정책들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문제들을 초래했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지만 요금할인으로 전력수요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면 발전소가 모자랄 정도가 됐다. 또한 2000년부터는 재정경제부의 수송용 유류세제를 개편하면서 경유가격인상에 등유가격을 연동시키면서 등유난방 가구의 상당수가 등유난방을 포기하고 심야전기로 몰리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다급해진 한전은 심야시간이 되면 원전의 남는 전기는 고사하고 연료가격이 가장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는 LNG 발전소나 중유발전소를 추가로 가동시켜 모자라는 전기를 공급했다. 원전의 남는 전기를 활용한다는 논리로 만들어진 전기난방 등 할인요금제도들이 일종의 반등효과(rebound effect)를 불러온 것이다. 이처럼 심야전기와 경부하 전기요금으로 인한 한전의 손실은 매년 1조원에 육박하고 그동안은 이를 다른 부문의 소비자 즉 주택용 소비자나 상업용 소비자에게 전가시켜왔다. 그러나 올해 상반기부터는 이마저도 한계에 봉착해 결국 정부가 한전의 적자손실 중 일부를 세금(약 8천억원)으로 메워주겠다고 한다.

여기에서 원자력발전의 문제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원자력은 건설비가 비싼 대신 연료가격이 싸며, 기술적으로는 건설공기가 10년에 이르며 수요가 내려간다고 해서 그에 따라 출력을 조절하기 어렵다. 때문에 상당수의 OECD 선진국들은 전기난방용 전기요금제도들을 운영하고 있고 이들도 수요 측의 반등효과를 봐왔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이 원자력의 소유주가 민간이고 전력시장은 경쟁체제이기 때문에 신규원전건설이나 개별 전기요금을 정부가 일일이개입하지 않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운영한다. 때문에 할인형 요금제도로 수요가 상승하게 되면 시장의 기능에 의해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요금이 원가에 따라 조정돼 우리처럼 폭발적인 수요증가는 없다.

반면 예외적으로 정부가 신규 원자력에 대한 투자와 전기요금을 결정을 하는 한국과 프랑스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지난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 한국, 프랑스, 미국 등 상당수의 국가들이 원전을 대규모로 추진했던 때가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 원전을 준공할 시점인 1980년대에 다다르자 오일쇼크로 인한 경기후퇴와 전기수요감소로 막대한 원전설비 과잉이 예상됐다. 이 때 발전소 건설을 민간이 결정하는 미국의 경우 1970년대 말에 무려 40건의 신규원전 건설계획을 중도에 폐기시켰다. 대신 정부는 공공규제정책법 등 5개의 에너지효율개선 제도들을 도입해 수요와 공급 측에서의 효율개선으로 난국을 대처했다.

하지만 국영기업의 투자로 원전건설을 주도했던 프랑스와 한국은 원전설비 과잉이 분명하게 예측되는 상황에서도 원전건설을 지속했으며 대신 심야전기나 산업용 할인요금제도들을 남발해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했다. 우리보다 더 극단적으로 원전건설과 할인요금제도들을 추진했던 프랑스는 이미 지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기난방수요가 폭증하면서 겨울철 첨두부하가 여름철 첨두부하를 추월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해 프랑스의 겨울 첨두부하는 88기가와트(GW)로 여름 첨두부하의 1.5배에 이르렀고 이는 프랑스의 총 원전용량보다 원전 25기분량이나 더 높은 수치이다. 결국 프랑스는 겨울철마다 이 모자란 전력을 중유발전을 추가가동하거나 심지어는 독일 같은 탈원전국가로부터 전기수입을 해서 충당하고 있다.
프랑스나 한국의 사례는 원전을 대규모로 건설할 경우 그것도 국가주도로 건설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우리 경제와 사회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국가주도로 원자력기술을 도입하게 되면 나중에 가서는 원자력기술의 맹점을 보완해주기 위해 거꾸로 우리 경제시스템을 바꿔줘야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찍이 미국의 저명한 기술사학자 랭던 위너는 ‘사회적 역적응(Reverse Adaptation)’이라고 규정했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2030년까지 신규원전 11기를 추가건설한다는 계획을 중단하고 에너지가격구조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석광훈 / 녹색연합 정책위원

필자는 영국 서섹스 대학에서 과학기술정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국가에너지위원회 전문위원으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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