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7:05 (목)
심미성에서 ‘앎’으로
심미성에서 ‘앎’으로
  • 이영범 독일통신원·만하임대 박사과정
  • 승인 2008.09.01 17: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 ‘문학과 지식’ 둘러싼 논의 풍성

아름다운 문학은 유용한 학문적 지식을 제공하는 매체인가. 지식으로서 문학 혹은 문학의 지식은 기존의 지식 담론들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며, 그것의 변별적 특성은 무엇인가. 지식의 역사적 변화 과정에 대한 탐구를 중요한 학문적 탐구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독일 학계의 최근 동향은 ‘문학과 지식’과 관련된 풍성한 논의를 생산하고 있다.

요셉 포글의 『지식의 시학』은 “모든 지식의 질서는 특정한 재현 방식들을 형성하고 특권화하고 있다”는 기본 테제에서 출발해, “표현 연관이 형성되고 완성되며, 그것이 수행적 힘을 얻고 있는 재현들을 규제하는 규칙과 방법”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에 따라 문학적 지식의 대상들은 ‘발화의 준거 대상들’이 아니라 발화 방식들 자체, 즉 기표들의 물질성, 지식의 담론적 성격과 자기 준거성에 놓이게 된다.

미셸 푸코의 담론분석에서 영감을 얻은 그의 방법론은 다양한 지식 영역들에서 나온 주제와 모티브의 문학적 형상 문제 뿐 아니라 문학적 재현 방식들과 지식의 형식들 간의 상관관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담론들의 질서 내부에서 문학의 지위 문제, ‘글쓰기 체계’로서 문학적 담론들의 작동방식을 결정하고 있는 기술적, 제도적 장치들에 대한 문제에 대한 다양한 탐구영역들을 개척하고 있다.

문학 체계와 정치학, 경제학, 생물학, 병리학 등 타 분과학문들 간의 경계과 전이장소를 지식의 매체로서 문학의 발생 공간으로 파악하려는 포글의 관찰 방식은 문학을 ‘문화사의 전제조건’으로 파악하는 지그리트 바이겔에게서도 발견된다. 그녀는 세부적 사실, 흔적들, 잔해들, 주변적인 것들 등과 같은 미시적 세계에 대한 섬세한 관찰에서 문화라는 거시적 세계를 재구성해내고 있다.

문화학을 새로운 학문영역이 아니라 ‘전이과정들에 대한 사고와 연구’로 이해하는 바이겔은 이른바 ‘아름다운 문학’을 그러한 영역들을 관찰하고 분석할 수 있는 특권화된 매체로 파악한다. 즉 기존의 학문적 지식과 다른 종류의 특수한 ‘앎’을 제공하는 문학은 다른 분과학문들의 지식(그리고 무지)과 균형을 맞추는 데서 독특한 해명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학문적 입장의 대전제는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전지전능한 관찰자를 관찰할 수 있다는 신학적 거대담론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그래서 요헨 회리쉬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발견해낸 “당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나는 보고 있다”는 문장으로 바이겔의 연구 업적을 요약한다. 즉 루만의 ‘2차적 질서에 대한 관찰’과 ‘의사소통의 장애’를 본업으로 삼는 문학은 체계 논리에 갇혀 있는 다른 분과학문들이 볼 수 없는 사실들을 파악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그에 따르면 문학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지식 개념과는 다른 ‘부정에 면역적’이고 ‘유사 판단 명제적’인 지식을 제공한다. 가령, 보바리 부인은 자살 시도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플로베르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지적해봐야 문학을 이해하는데 무의미하기 때문에 문학적 지식은 ‘부정에 면역적’이다. 또한 문학은 지시대상이 없지는 않지만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취한 자기준거적 체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말과 사물, 표상과 세계, 사유와 존재 간의 적합성을 지식의 요건으로 파악하는 판단 명제가 아니라 ‘유사 판단 명제’이다.

‘부정 면역적인 유사 판단 명제’로서 문학적 지식은 신뢰할 수 있는 확고한 지시대상을 결핍하고 있는 반면, 엄격하게 연구 대상이 정해져 있는 다른 지식체계에 비해 신, 세계, 사랑, 죽음, 돈, 권력 등 모든 대상을 주제로 다룰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회리쉬는 문학학을 보편적 토론과 관심을 유발할 수 있는 주제와 문제 중심의 학문으로 재정립할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 이는 부르노 라투어의 ‘하이브리드’적 지식 개념이 지배하고 있는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 인문학이 추구해야할 지식의 성격에 대한 근본적 통찰을 담고 있다는 점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영범 독일통신원·만하임대 박사과정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