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8:55 (금)
“글로벌 외치면서 ‘자기표절’ 외면해서야”
“글로벌 외치면서 ‘자기표절’ 외면해서야”
  • 김봉억 기자
  • 승인 2008.09.01 17: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 ‘새로운 연구윤리’ 모색

최근 고위직 인사들의 인사검증과정에서 또 다시 제기된 ‘자기표절’ 문제는 학계의 뜨거운 감자다. 한국 학계와 대학가는 ‘국제경쟁력’을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평가․출판 현실은 ‘우물 안 개구리’다.

지난달 28일 한국학술단체총연합회(회장 한민구 서울대)는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우리나라 학계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새로운 연구윤리 및 교원업적평가 제도’라는 주제로 제3회 통합학술대회를 열었다.인문사회 교수들과 자연과학 교수들이 현실 진단과 함께 개선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김형순 인하대 교수(신소재공학부)는 “중복출판과 이중출판 등 자기표절은 세계적인 출판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한국의 자기표절 문제는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자기표절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는 ‘글로벌’도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7년 과학기술부 훈령으로 마련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는 ‘자기표절’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위조, 변조, 표절,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만을 다루었다. 반면에 1997년 마련된 영국출판윤리위원회의 가이드라인에는 표절과 중복출판을 다루고 있다. 또한 36개 국가의 50개 학회가 모인 ‘유럽 화학관련연합회’는 지난해 이중투고와 이중출판, 표절, 자기표절 등을 담은 출판윤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연구윤리 문제는 교수업적평가와 맞닿아 있다. 김 교수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들은 한 해 논문 발표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 인도, 한국 등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나라들은 한 해 논문 발표수가 늘고 있는 현상을 제대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은 지난 2006년 논문 발표수가 2005년에 비해 각각 -2.22%, -2.12%, -4.04%, -5.77% 줄었다. 반면, 중국은 16.86%, 인도 6.90%, 한국은 0.85% 늘었다.

중국 공과대학의 연구업적심사 평가기준도 새삼 눈길을 끌었다. 주목할 만한 점은 EI의 출판업적을 SCI의 업적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서는 홀대하고, SCI 논문을 위주로 평가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는 다르다. 학술저작이나 특허 등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국가나 성급 수상실적도 SCI 논문실적보다 높은 비중으로 평가가 이뤄진다. 네이처, 사이언스에 실린 경우 평가점수가 가장 높고, 국가급 수상 실적이 다음이다. 성․부급 수상실적과 저서, 국제수준의 연구성과가 같은 점수를 뒤를 잇고 있다. 국내 최초 연구성과도 비중이 높다. 취득 특허와 국내 선진 연구성과도 높은 편이다. 그 다음이 SCI 논문과 EI 논문이다. 김 교수는 “중국의 연구업적심사 평가지표가 한국보다는 합리적으로 보인다”면서 “짧은 시간에 SCI 논문만을 요구하는 한 연구부정행위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표절의 정치성 배제도 주요하게 제기됐다.
최창수 고려대 교수(공공행정학부)는 “현재 표절 이슈가 심각한 것은 학문공동체 내에서 합의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채 정치권과 언론에 의해 과도하게, 따로는 과장되게 논의되고 있는 점”이라며 ‘표절의 정치성’ 배제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정치권과 언론에 의한 일방적인 표절 논의가 학문공동체의 존속과 진실성을 위협하는 거대한 위협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학문공동체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론에 나선 국양 서울대 전 연구처장(물리천문학부)도 “표절 문제는 형식보다는 내용에 초점을 둬야 하고, 기자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 학계에서 신중히 판단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