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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가면 ‘워스트 클래스’ 인데…
이대로 가면 ‘워스트 클래스’ 인데…
  • 김유정 기자
  • 승인 2008.09.01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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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CU 육성사업을 보는 대학사회 시각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 대학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미 한계가 보이는 전시행정의 일면인가.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이하 WCU 사업)과 관련, 사업계획서 제출 시한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장밋빛 미래를 점치는 목소리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5년간 총 8천250억원을 투자해 우수 해외학자를 유치하고 국내 교수와 공동연구를 통해 대학 경쟁력을 키우고 학문후속세대를 양성한다는 사업 취지에 대해선 대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학과 신설, 일정기간 전임교원 임용 등 전폭적인 지원에도 사업 성패를 좌우할 ‘우수 해외학자’가 과연 한국으로 선뜻 오겠다고 나설지 물음표를 붙이는 이들이 많다.

“한국 대학으로부터 접촉이 와도 WCU 사업 이후의 문제(해당 학교에서 계속 교수로 신분이 보장 되는지, WCU 기간 동안의 파격적인 대우를 계속 유지하는지)를 질문하면 대학 측에서도 정확히 대답을 못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실적으로 따져볼 때 유명한 석학이 한국에 올 리가 없다. 대학도 사업 신청을 위해 외국 대학에서 일하는 한국인 조교수를 중심으로 적임자를 찾고 있다.” “초빙에 성공했다해도 그들을 지속적으로 잡아둘 수 있는 유인책 문제, 한국 대학의 풍토 적응 등의 문제가 산적해 있다.”

세계로 돋움하는 대학의 노력이 활발하다.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의 한 교수가 지난 8월 독일 슈타인바인스대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 성균관대


해외 학자를 찾기 위한 ‘제1 시장’은 단연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거나 박사후연구원, 연구소 직원으로 일하는 한인 학자들은 자신이 WCU 사업 취지에 맞는 사람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선뜻 제안에 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최고 인재를 한국에 데려올 수 있을까. 미국 대학에서 근무하다 국내로 자리를 옮긴 교수들 대부분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웨인주립대에서 교수로 재직한 최재우 경희대 교수(정보디스플레이학과)는 “사업 공고내용을 봐선 초빙하기 위한 사람이 주로 박사후연구원인지, 외국인 학자인지, 국내 학자인지 확실치 않다”며 “아무래도 한인 학자들이 들어올 것 같은데, 현지에서 정규직을 갖고 있는 사람의 경우 모든 것을 정리하고 들어오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학에서 5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다 올해 초 국내 대학에 임용된 한 교수는 대학 측으로부터 “WCU 사업을 위해 미국에서 근무할 때 같이 일하던 교수를 소개시켜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주변에서도  안정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 이들도 ‘한 번 생각은 해 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다소 망설이는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대학이 WCU 사업을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빠듯하다는 지적도 있다. 제안을 받은 사람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6월 WCU 사업계획을 발표하고 오는 20일까지 신청서 접수를 마감하겠다고 밝혔다.

WCU 사업을 준비하면서 ‘정부 눈치 보기’도 심각하다. 서울 ㄱ대학 연구처의 아무개 과장은 “서울 소재 대학은 WCU 사업신청 준비를 거의 다 한다고 봐도 된다.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엔 말 한 마디 잘 못 했다가 교과부에 자칫 학교 이미지가 안 좋게 비춰질 수 있다”고 조심스러워 했다.    

WCU 사업신청을 포기하자니 대학 위상이 걸려 있고, 막상 준비하자니 쉽지 않은 상황이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대학들은 세계적인 대학으로 재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대학장(물리학)은 지난 7월 한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지금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교수보다도 나을 것이 없는 학자들을 외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파격적 대우를 하면서 데려오는 것은, 아까운 세금의 낭비일 뿐 아니라 어려운 국내 환경에서도 연구와 학생 지도를 묵묵히 해온 대다수 성실한 교수들을 모욕하는 일”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유능한 인재를 데려오는 일도 중요하지만, 대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한 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데 공감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재원 세종대 교수(건축공학과)는 “국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교수를 육성하는 일도 현 대학 시스템으로는 어렵지 않나”라며 “대학 지원을 늘려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교수는 소프트웨어인데, 하드웨어가 갖춰지지 않으면 아무리 우수한 소프트웨어를 갖고 있다 해도 발전은 어렵다”고 꼬집었다. 최재우 교수 역시 “한국에 와보니 국내 연구자들이 이미 연구를 훌륭히 잘 하고 있었다”며 “WCU 사업에 들어가는 돈 일부를 대학 육성에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교수들 스스로가 우수한 해외 학자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지 자문했다. “정말 우수한 학자를 불러온다고 치자. 국내 교수들은 긴장할 것이고 능력이 너무 뛰어나면 부담될 텐데, 교수들이 앞장서 그 학자를 데려오자고 제안할지 모르겠다.”
WCU 사업, 방향은 잡았지만 의도대로 뿌리를 내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높고도 험해 보인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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