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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 말띠여성 교수 3인의 새해 소망과 바람
[신년특집] : 말띠여성 교수 3인의 새해 소망과 바람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2.0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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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1-08 10:23:16
안팎으로 힘든 일이 워낙 많았던 탓일까. 2001년이 채 가기도 전에 사람들은 남은 날들을 훌훌 벗어던지고 새해를 성급하게 끌어당겨 놓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에게 활기차고 원기가 왕성한 해”라는 말띠해를 앞에 두고, 마음이 조급해질 만도 했을 것이다. ‘역동적이고 활달하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쾌활하고 진취적이고 정열적’이라는 말의 특성은, 주눅들어 가라앉은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질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말도 같은 말이 아니다. 고무줄처럼 질긴 여성에 대한 편견은 십이지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범띠해와 말띠해에 여아 출생률이 뚝 떨어지는 현실은, 합리성을 자처하는 우리 사회의 이율배반을 벌거벗기는 가늠자의 구실을 하기도 하다.
‘바람기가 있고, 이혼율이 높고, 눈물이 많고 팔자가 기구하다’는 말띠 여성의 삶은 과연 그럴까. 성급하게 결론 내리자면 ‘아니올시다’. 남성에게 필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인 뚝심이, 여성에게는 없어야 할 덕목인 ‘똥고집’으로 돌변하는 것처럼, 남성에게는 활달하고 진취적인 말띠의 기질이 여성에게는 팔자 세고 나대는 것으로 이름만 달리해 불리는 것뿐이다. 이런 뿌리깊은 편견들을 벗기기 위한 사람들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는 터, 얼마 전에는 말띠 여성에 대한 속설이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말띠해를 맞아 말띠 여성 교수 3인을 만나보았다. 편견의 이중벽을 뛰어넘어 오늘 이 자리에 서게 된 이들의 공통점. 활달하고 진취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왔다는 사실이다.

1942년(壬午)생 오정희 세종대 교수(응용화학)

말띠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가글쎄, 살아오면서 내가 말띠구나, 느껴본 적이 없었고 말띠와 관련된 세간의 이야기들 역시 전혀 개의치 않고 살아왔어요. 한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결정짓는 것은 그를 둘러싼 환경, 부모가 물려준 유전적인 소양, 세상을 살면서 쌓은 지식과 지혜, 이런 거 아닐까요. 나 자신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띠’에 대한 편견이 없었노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겠네요. 중요한 것은 바로 나 자신 아닐까요.
과학자를 꿈꾸던 소녀화학을 전공한 이유요? 별 다른 게 있나요. 그냥 막연히 좋았고, 가장 끌리는 학문이었어요. 눈치 보거나 앞을 재지 않고 당시에 내가 가장 원하는 것, 가장 공부하고 싶은 것을 찾았지요. 부모님도 여자애가 이과 가는 것을 말리지 않고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습니다. 그런 걸 보면, 세상의 편견과 맞서 싸우는 데 가장 큰 조력자는 부모님이십니다. 물론 그 반대이기도 하지요.
늘 새로운 것을 꿈꾸는 말처럼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환경 관련 일을 할까 해요. 조그맣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볼까 합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환경 오염이 아닐까 싶어요. 건강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활달하게 새로운 일거리를 찾고 싶습니다. 나이 들수록 기분이 처지면 안되니까요. 사회적으로 보람있고 개인적으로도 활기찬 생활을 하는 것이 새해 소망입니다. 교통문제도 해결됐으면 싶고, 무엇보다 질서가 잡힌 사회가 되어야겠죠.

1954년(甲午)생 김혜정 명지대 교수(건축학부)

누가 뭐라 해도 나는 말띠다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말띠였기 때문에 건축과 교수가 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 어린 시절은 특별한 것을 동경하기 마련인데, 저는 말띠생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무척 컸습니다. 활달한 말띠해에 났다는 자부심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데 큰 작용을 했던 것 같아요. 공학 가운에서도 오랜 시간 남성들이 점유하고 있던 건축을 선택하게 된 것 역시 말띠 기질이 한 몫 했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에서 여교수로 산다는 것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교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적고 관문은 좁지요. 하지만 일단 자리를 잡고 나면 다른 사회보다 차별이 적습니다. 차별 자체를 무시할 수 없지만 차별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지요. 남성교수가 하지 못하는 일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여성교수의 장점이라면, 학생들과 대화의 기회가 많고 소통이 쉽다는 걸 들 수 있겠네요. 아버지보다 어머니와 친밀하듯이 교수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남성 교수들 틈에서 생활하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입니다.
말띠해 세 가지 바람이제는 제발 싸움이 멎고 평화로웠으면. 올해 처음 시작하는 5년제 건축학과의 시작이 잘 되었으면. 그리고 내 나이 이제 48세. 지금까지 남성들 틈에서 전공분야의 한몫을 이루기 위해 전문가로서의 선을 분명히 긋고 살아왔어요. 아직까지 여성은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교만하다, 인간미 없다는 오해를 받을 때가 많았지요. 좀더 관대하고, 인간미 넘치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할 때가 온 듯 합니다.

1966년(丙午)생 정윤영 조선대 교수(의학)

말띠를 둘러싼 편견들자라면서 말띠와 관련된 편견을 참 많이 들었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저희 집은 1남 5녀예요. 아들이 있는데도 더 필요하다는 어른들 욕심에 줄줄이 딸 낳느라 어머니 고생이 크셨지요. 아버지와 오빠 위주로 돌아가는 집안 분위기에 자극을 많이 받았고, 딸 낳을 때 미역국도 제대로 못 드신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딸들이 공부 잘해서 사회활동 하고 능력껏 살기를 바라셨거든요.
편견은 일종의 억압이다말띠가 대가 세다 어쩐다 하는 편견들도 일종의 사회적인 ‘억압’ 아닌가요. 공부에서만큼은 남녀 차별이 없다지만, 의과대학만 해도 여자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선택할 수 있는 과가 많지 않아요. 공부를 아무리 잘 해도 여자들은 가고 싶은 과를 골라서 갈 수가 없지요. 앞에서 레지던트 재수하는 선배들 사정을 봐줘야 하고, 또 ‘험한 과’ 같은 곳에서는 여자들을 달가워하지 않으니까요.
말띠 성격, 말띠 기질어릴 때는 나서기를 싫어하는 성격이었어요. 대학 다니면서 세상을 좀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많이 바뀌었죠. 활달함을 타고났다기보다는 살면서 강해진 거죠. 제 전공은 해부학인데, 처음에 남자교수가 한 마디 하는 것과 제가 한 마디 하는 것이 무게가 다르니까 학생들이 코웃음을 치더군요. 능력과 강의 내용 이전에 ‘여교수’라는 호기심을 가진 학생들과 싸우느라 사람이 독해졌어요.
올해 이런 바람이 있다민감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올해 대통령 선거가 있잖아요. 제가 사는 지역은 오랜 세월 정치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지역을 넘어서는 대통령이 뽑혔으면 해요. 개인적으로는 올해 늦둥이를 낳았습니다. 늦둥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싶고, 공부하러 나갈 계획을 갖고 있는데 그것도 잘 되었으면 싶네요.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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