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연봉제 시행을 목전에 두고서 교수들의 신분불안이 가중되는 가운데서도 교권탄압은 예년에 비해 더 기승을 부렸다. 연초 숭실대를 시작으로 아주대, 인하대, 덕성여대, 한세대로 번져간 대학분쟁 사태는 이를 방증한다. 대학 분쟁과정에서 징계를 받거나 재임용탈락 처분을 받은 교수는 10여명에 이른다. 강정구 동국대 교수(사회학과)는 만경대 방명록 파문으로 때아닌 국가보안법의 마녀사냥에 시달려야 했고, 같은 혐의로 보수언론과 줄다리를 해온 이장희 한국외대 교수(법학과)는 조선일보와의 법정싸움에서 승소해 대조를 이뤘다.
그러나 교수들도 심화되는 신분과 지위하락을 더 이상 수세적으로 관망하지만은 않았다. 전문가 조직을 표방하며 2월, 전국대학교수회(회장 황한식 부산대 교수)가 닻을 올렸고, 11월에는 전국교수노동조합(위원장 황상익 서울대 교수)도 공식 출범을 선언했다. 두 조직의 출범은 대학정책을 지켜만 봐온 교수들이 현실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교육주체로서의 ‘선언’이었다. 특히 교수노조는 상아탑 권위에 갇혀있던 교수들이 스스로의 벽을 부수고 지식노동자로 새로운 정체성 모색에 나선 중대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교수노조가 가야 할 길은 험난하다. 교육부가 노조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법대로 처리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대학교수회와 교수노조의 설립이 정부를 상대로 한 권리찾기였다면, 경북대와 영남대 교수협의회의 학칙기구화는 대학내 민주적 의사소통체계를 만든 드문 결실이었다. 3월, 경북대 교협이 교육부와의 지난한 실랑이 끝에 학칙기구화를 이뤄 낸 데 반해, 영남대 교협은 대학당국과의 대화를 통해 10월말, 비교적 수월하게 일궈냈다.
전체적으로 올 한해 교수사회의 표정은 암울했다. 그러나 이 와중에서도 사회개혁과 대학개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교수들도 적지 않았다. 김동훈·김상봉 교수는 시민단체를 꾸려 직접 학벌철폐 운동에 나섰고,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과)는 대학사회의 구조개혁을 위해 서울대를 다른 대학 학생들에게 개방해야 한다는 ‘서울대 개방론’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정옥자 서울대 교수(국사학과)는 여교수 채용확대를 주창해 소외되고 여성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