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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풍경] '새로운 예술의 해'를 통해 본 2000년 문화정책
[예술계풍경] '새로운 예술의 해'를 통해 본 2000년 문화정책
  • 김정아 기자
  • 승인 2000.1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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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04 14:23:37
문화관광부는 우리 문화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중점적으로 지원한다는 취지로 '2000, 새로운 예술의 해' 사업을 기획했다. 이는 91년에 시작되어 매년 개별 장르를 지원하던 '문화예술의 해' 운영체계의 연장인 동시에, 장르중심적 기성 예술의 한계를 드러내는 변화의 징후이기도 하다. '새로운 예술의 해'는 젊고 실험적인 작가들을 지원함으로써 예술계에 등장한 혁신적 에너지가 대중과 만나게 하려는 취지로 출발한 것으로, 애초의 명칭은 '젊은 예술의 해'였다. 그러나 실제로 지원 대상은 최첨단 테크놀러지를 사용한 예술, 산업화 가능성이 있는 예술, 기존의 장르 구분이나 문화권 구분을 넘어서는 퓨전 예술 등이 대부분이었다.

비교적 예술의 공공성에 주목한 분야는 미술 부문이었다. 박찬경 전주대 교수는 "미술부분 조직위원회의 세대가 파격적으로 낮아졌을 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합리적이고 진보적인 경향의 이론가 평론가들이 포진했다"고 평가했다. 미술축제 공모전 형식으로 지원작을 선정한 미술 분야는 2억의 예산으로 16개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소액다건 원칙을 지켰다. 특히 '아방궁 종묘점거 프로젝트'가 성균관 유림과 전주 이씨 종친회 등의 물리적 저지로 인해 무산된 사건은 미술이 공공 영역에서 소통될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소액다건 원칙이 선정기준의 부재에 대한 핑계가 될 수도 있음은 무용 부문에서 나타났다.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22개 단체는 '새로운 예술의 해' 참여작이라는 이유로 기업의 협찬을 따냈을 경우에 일정 비율을 위원회에 내야 했다. 위원들은 "협찬 받는 단체와 못 받는 단체와의 재정적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

한편, '새로운 예술의 해' 추진위가 이권에 관련된다는 비판은 그리 설득력이 없다. 전체 기획의 예산이 20억이며, 6개부분 수십개 사업과 별도로 '멀티아트페스티벌' '새천년의 풍경, 월인천강지곡' 등 대규모 총괄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위원들은 "정말 적은 예산 밖에 없어 기획료 한푼 받지 않고 희생적으로 일한다". '새로운 예술의 해' 사업의 문제점은 적어도 지원대상 선정의 투명성은 아니었다.

'새로운 예술의 해' 사업의 문제는 문화지원정책 일반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업의 목표는 장르별 지원이라는 우리 나라 문화 지원 정책을 극복하고 기존의 예술 개념으로 포괄할 수 없는 예술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술적 잠재력을 분출하는 주변 문화는 여전히 소외됐으며, 매체의 형식적 경계를 강조하는 기성 예술이 주된 지원의 대상이 됐다. 지명도 중심의 안전 지원과 결과물 중심의 사후 지원이라는 우리나라 문화지원정책의 기조와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11월 10일 문화연대 주최로 열린 '제1회 문화정책포럼'에서 현재의 문화정책에 대한 공과가 본격적으로 제기됐으며, 발제를 맡은 심광현 한예종 교수는 "문화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혁정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저한 인식과 점검이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11월 23일 문화예술진흥원 주최로 열린 '문예진흥기금사업개선 토론회'에 모인 100여 명의 문화예술 관계자들 역시 현재의 결과물 중심 단기 지원이 아닌 장기적인 지원이 필요함에 동의했다.
최근 문화정책 점검과 관련된 토론회 가운데 11월 22일 열린 '독립문화 활성화를 위한 대안과 정책 토론회'는 '새로운 예술' 정책의 잠재적 지원대상의 육성을 들을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중요한 자리였다. 발제를 맡은 서동진 문화평론가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에 대한 지원이 전반적인 문화정책의 개혁과 병행되지 않는다면 엄청난 공모 경쟁을 치르며 행사 지원비나 나눠 갖는 처량한 신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예술'의 개념과 '새로운 예술'에 대한 지원 방향과 관련, 비판적인 제안들도 나온다. 우선, 새로운 예술에 대한 지원은 사후적 성과물에 대한 지원이 아닌 맥락과 생태에 대한 지원이어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단, 특정 작가의 특정 작품에 대한 지원에서 벗어나 예술의 유통구조와 예술 소비자를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를테면, 인디밴드에 음반제작비를 지원하기에 앞서 독점과 폭력조직에 연루된 음반산업의 유통구조를 개혁해야 하며, 미술품 제작을 지원하기에 앞서 잠재적 패트론을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새로운 예술에 대한 지원은 우리 사회의 예술 생태 전반에 대한 지원이 돼야 한다는 주장도 귀담아 들을 만하다. 현재 우리 사회의 새로운 예술적 활력은 미학적 규범을 공유하는 기성의 예술 장르에서 발견된다기보다는 특정 장르 안에 포섭되기 어려운 대안적 예술공간에서 발견된다. 장르의 형식적 퓨전은 예술적 활력의 패러디일 뿐이다. 이섭 광주비엔날레 프로그래머에 따르면, "현재 무대 위의 크로스오버의 형식주의는 불행히도 우리 사회의 관습에 근거하는 잡종교배이다. 사물놀이와 재즈밴드가 한 무대에 있다 하여 새로운 공연예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최근 정부는 전경련 등 재계의 준조세 폐지 요청을 수용해 지금까지 영화관 미술관 공연장 등의 입장료의 2∼6.5%로 부과되던 문예진흥기금 모금을 2002년 1월로 조기 폐지하고 '공공기금'으로 전환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경제적인 이유로 예술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지원금에 대해 행정적 통제를 가하는 정책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예술의 진정한 활력을 보듬지 못하고 경화된 예술 형식에 매몰된 지원이라면, 경제논리를 반박할 여지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김정아 기자 anonio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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