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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와 같은 거대언어들 세계화 통해 언어생태계 파괴”
“영어와 같은 거대언어들 세계화 통해 언어생태계 파괴”
  • 교수신문
  • 승인 2008.06.30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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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인터뷰] 수전 로메인 옥스퍼드대 석좌교수 vs 이익환 제18차 세계언어학자대회조직위원장

2008년은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언어의 해’이다. 언어학의 올림픽이라 할 세계언어학자대회가 1928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처음 개최된 이후 제18차 대회가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서울에서 개최되게 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언어학 고유의 영역 뿐 아니라 다양한 인접 학문과의 통섭적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언어와 생물학, 언어와 디지털 혁명, 코퍼스를 활용한 언어학의 지평 확산, 인지과학과 언어학, 언어정책, 언어교육, 문자, 언어권리와 언어생태계의 보전을 망라하는 다양한 분야의 세계적 석학들이 대거 참여할 뿐 아니라 국내에서 개최되는 세계적 학술대회에서도 보기드물게 750여편의 엄선된 논문들이 발표된다는 사실에서 우리 학계의 두툼한 성취결과를 엿볼 수 있다. 이번 대회기간 동안 다뤄지는 주제 중 특히 소수언어 보존은 언어생태계의 보존을 위해서 뿐 아니라 인류의 지적 자산을 보존한다는 의미에서도 중요하다. 전 세계 약 6천여 언어 중 사멸되는 언어가 많을 뿐 아니라, 영어로 대표되는 언어제국주의의 횡포는 더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교수신문>에서는 소수언어, 언어권리라는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  서울에서 개최되는 제18차 세계언어학자대회의 특별 초빙으로 한국을 방문하는 수전 로메인 교수와 세계언어학자대회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익환 연세대 명예교수(영어학)의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은 2008년 5월 23일 이메일로 이뤄졌다. 
이익환 교수는 1943년생으로, 1968년도에 서울대를 졸업하고, 1971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79년도에 ‘Korean Particles, Questions and Complements: A Montague Grammar Approach’라는 논문으로 텍사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에는 『의미론개론』, 『영어의미론 』, 『언어학 이론과 한국어 의미-통사구조 습득』등이 있으며, 『화용론』 등의 역서가 있다.


수전 로메인은 누구인가

1973년 미국의 브린 모어 대학에서 독일어와 일반 언어학을 전공한 후, 영국의 에딘버러 대에서 음성학으로 석사학위를, 버밍엄대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학문적 기여와 업적을 인정받아 노르웨이 트롬소대와 스웨덴 웁살라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까지 영국 버밍햄대 교수, 네덜란드 막스플랑크 연구소 선임연구원 역임했으며, 현재 영국 옥스퍼드대의 머톤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로메인 교수는 역사-사회언어학을 전공했으며, 이와 관련해서 사회 다중언어주의, 언어다양성, 언어변화, 언어습득, 언어접촉 등 여러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로메인 교수는 또 코퍼스언어학, 언어와 성, 문맹교육, 이중언어/몰입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과제를 수행해, 지금까지 『사회역사언어학: 지평과 방법』(Socio-historical Linguistics)외 16권의 저서와 「스코틀랜드어의 기술방법론(Approaches to the description of Scots)」 외 156편의 연구 논문을 출판했다.

로메인 교수는 대학 교육의 행정에도 봉사했으며, 특히 국제적 활동으로는 유네스코 전문가위원회의 전문위원을 역임하며, 유네스코의 세계 언어 관련 프로젝트의 기획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소수민족 언어의 권리를 보존하기 위한 일에 적극 목소리를 높여 왔다.

주요저서로는 『피진과 크리올어』Pidgin and Creole Languages (1988), 『이중언어』Bilingualism (1989), 『언어, 교육, 발전』Language, Education and Development (1992), 『사회 속의 언어』Language in Society (1994),『젠더의 소통학』Communicating Gender (1999), 『사라져가는 목소리들』Vanishing Voices (2000) 등이
있다. 특히 Vanishing Voices는 정신생물학 분야를 전공하고 아프리카언어를 연구한 다니엘 네틀이
옥스퍼드 대 머톤 칼리지에서 근무할 때 함께 기획한 책으로, 국내에는 2003년 『사라져가는 목소리들』이란 제목으로 번역(김정화 역, 이제이북스)돼 일반 독서대중들로부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익환: 유네스코가 금년을 ‘세계 언어의 해’로 지정했는데 그 의의는 무엇인가. 

로메인: 언어문제는 교육, 과학, 사회과학, 문화, 커뮤니케이션, 정보 등에 있어서 유네스코의 핵심적 사명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유네스코는 모든 언어를 보호하고, 특히 사멸위기에 처한 언어들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모든 관련 당사자들을 독려하고 있다. 유네스코는 1992년 소수민족 언어의 권리를 보존하기 위한 내용을 담은 “인종적으로, 종교적으로, 언어적으로 소수민족에 속하는 사람들의 권리” 장전을 공포했다. 소수 민족들의 언어 권리를 인정하고 이 언어들을 보존하기 위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2008년을 ‘세계 언어의 해’로 지정한 것은 유네스코가 특히 언어와 관련해 이러한 프로젝트를 기획, 수행하려는 것이다.
이익환: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는 몇 개의 언어가 있는가. 언어의 수가 감소하고 있다면, 주요 원인은 무엇인가.

로메인: 현재 세계의 언어 수는 약 6천여 개로 추정된다. 크리스털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어는 세계 16대 언어이다. 일반적으로 언어의 수는 감소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고유한 언어를 보유한 소수 민족들이 쇠망하는 것이 주원인이지만, 영어와 같은 거대언어들이 세계화를 통해 언어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익환: 사람들은 어떤 언어들이 원시적이고 어떤 언어들은 발달된 언어라고 말하기도 한다. 다양한 언어를 연구한 입장에서 당신의 견해는.

로메인: 아직 어떤 집단의 모국어라고 할 수 없는 ‘피진어’를 제외한다면, 원시언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과 아시아의 일부 언어가 전 지구 패권을 차지하게 된 것은 해당 언어의 사용자들이 구비하고 있는 기술과 문화의 여파이지, 언어의 본질적 문제는 아니다. 가령 영어의 제국주의적 패권은 언어생태계의 적자생존의 결과가 아니라, 좀 더 깊고, 복잡한 구조적 조건의 결과인 것이다. 유라시아는 전 세계 어느 곳보다도 높은 생산성을 갖춘 농업지대였다. 영어를 비롯한 일부 유라시아 언어들의 생물지리학적 조건이 유리했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높은 인구밀도와 농업생산성을 통해 산업화를 이룰 수 있었고, 이와 더불어 그들의 언어도 영토를 넓혀가게 된 것이다.

이익환: 우리는 종종 어떤 언어가 더 과학적이라고 하는 말을 듣는다. 이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로메인: 언어의 멸종위험이라는 문제는 전 지국적 에코시스템을 보존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을 보존하는 것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지식은 서구세계의 시각에서 경제적 기여를 하지 못하는 한 인류의 자산으로 평가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지금까지 인류는 지역적 에코시스템에 관한 토착적 지식을 수집하고 보존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예를 들면, 효과적인 해양자원보존에 관한 서구의 과학적 지식은 거의 없다. 특히 열대지역에서는 해양생물의 다양성이 무궁무진하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계획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거의 배타적으로 영어를 통해 기록된 서구의 과학은 지역적 에코시스템을 보존하는 데서 직면하게 되는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는 전혀 특권적 지위를 누리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거의 모든 과학적 발전은 기존의 습관적 사고방식으로부터 탈피해 발상의 전환을 함으로써만 가능했다. 과학적 지식의 생산은 이제 더 이상 영어라는 한 언어로는 어불성설이다. 물론 힌두어나 키스와힐리어와 같이 자국의 언어가 과학언어로 발전되지 않은 곳에서 지식을 생산하는 자기 강화적 습관을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자신의 언어가 학문언어가 아니기 때문에 점점 더 국제어를 사용하게 되고, 그 결과로서 자국어는 더욱 더 비학문적 언어가 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는 쉽지 않다. 학문을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들도 발전시켜야 한다.   
이익환: 언어권리란 개념은 설명이 필요한데.

로메인: 언어는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언어사용자인 인간이 권리를 가질 뿐이다. 따라서 언어사멸이라는 문제는 해당 언어 사용자들, 그들의 정체성, 그들의 문화적 유산, 그들의 권리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보편적 언어권리 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Linguistic Right)은 유네스코 도움으로 이뤄졌다. 그러한 법제화는 누구나가 자신의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고 언어정체성을 인정받아야 하며, 다른 언어를 말하고 쓰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소수언어를 사용하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모국어를 통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공공부문에서도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돼야 하며, 자신의 모국어가 공용어가 아닌 사람 누구나가 이중언어화자(bilinguist)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즉 자신의 언어와 나머지 선택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중언어화자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언어권리의 핵심이다.   

이익환: 소위 말하는 ‘사멸위기에 처한 언어’는 유지, 보존돼야 한다고 말하는데, 여기에 동의하는가, 동의한다면 그 이유는.

로메인: 그렇다. 문화적, 언어적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은 사회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언어적 다양성이야말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전례가 없는 규모의 글로벌화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국지적 환경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고, 후손에게 지역적 정체성을 전하고자 한다. 문화적, 언어적 다원주의가 국가적 정체성과 정치적 동질성이라는 연대 장치를 약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다양성 속에서의 새로운 인간상을 만들어내는 강력한 원천이 되고 있다. 언어다원주의의 고양을 통해 우리는 보편성과 국지성, 통일성과 다양성 사이의 갈등에 내재하는 가치의 충돌에서 헤어날 수 있는 조화로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이익환: 세계 각국은 언어 다양성과 국민/민족 정체성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 한 나라 안에서 소수민족 집단의 언어권리나 다른 권리를 어떻게 인정해야 하는가.

로메인: 한 국가의 공통의 언어는 그 국가의 문화와 뗄 수 없는 것으로 간주돼왔다. 언어야말로 국가에 대한 충성 그 자체로서 현대화와 경제적 진보에 필수적인 요소로까지 간주됐다. 지난 18, 19세기에 새로운 국가들이 그와 결부된 언어와 문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른바 국가적 문화는 실제로는 지배적인 인종집단의 문화일 수밖에 없었다. 현대 세계의 정치질서의 기반이 되고 있는 국민국가는 모든 학문적 분석의 기본단위가 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국가라는 경계선 안에서 추진되는 정책들이 바로 지배적 집단의 언어와 그 언어의 화자들에게 다수파의 지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약 9억 명의 화자를 가지고 있는 중국표준어는 지구상에서 화자가 가장 많은 언어이다. 중국에서 중국어는 다수 언어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가령 말레시아와 같은 나라에서는 약 25%의 인구만이 사용하는 소수언어이다. 오늘날 위기에 처한 언어들의 대다수는 주로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변방인 국가, 혹은 인종집단에서 발견된다. 그러한 집단은 적어도 관용의 권리, 즉 사적 언어사용에 대한 정부의 개입으로부터 자유를 누려야 한다. 그러나 지배적 언어를 제외한 소수 언어들에 대해 공공분야에서의 사용을 허용하거나 장려하는 법적 장치는 기대할 수 없다.

이익환: 한국에서 일부 학자들은 영어를 한국어와 동등한 지위의 제2언어로 간주하는 정책을 주장한다. 이들은 각급 학교에서 모든 과목을 영어로 교육하는 것을 제안하면서 이를 통해 학생들이 세계화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다른 학자들은 이러한 식의 교육이 한국어의 중요성을 훼손하고 자신들의 국민적 정체성을 흐리게 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로메인: 북유럽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학교 교육을 통해 점점 더 이른 시기에 영어 공부를 시작함으로써 점점 더 영어와 자국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화자들이 돼 가고 있다. 이렇게 해서 북유럽에서는 아마도 학령기의 아이들 중에 하나의 언어만을 사용하는 경우는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유럽연합에서도 영어는 약 90%의 학생들이 선택하는 외국어가 됨으로써 더욱 더 급격하게 가장 선호되는 외국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아이들이 집에서는 한국어를 계속해서 배우고 사용하지만 학교에서는 영어가 더욱 더 중요해진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한국에서 학교에서의 매개어로서 한국어 대신에 영어를 사용해야 할 긴급한 필요성을 발견할 수는 없다. 

이익환: 오는 7월 21일부터 26일까지 열리는 세계언어학자대회에서 발표할 당신의 강연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로메인: 언어다양성의 운명은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시대가 빚어놓은 여러 결과들에도 불구하고 세계적 논의의 장에서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나의 강연은 언어가 왜 중요한가에 대한 것이다. 이 문제를 이해하는 핵심은 인류의 발전에 있어서의 언어권리와 언어적 다양성이 가지는 중요한 역할을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세계의 언어들을 보존하는 것은 문화적 생존을 위한 포괄적인 전략의 일부다. 한 공동체의 경제적, 문화적 웰빙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언어적 다양성을 지속해야 한다. 언어의 보전을 지속가능하고, 적절하며, 강력한 발전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심으로 인식하는 것은 마치 다른 자연자원을 면밀하게 기획하고 보전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언어를 바라보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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