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8-12 17:35 (수)
[특별인터뷰] 법정싸움중인 강정구 동국대 교수
[특별인터뷰] 법정싸움중인 강정구 동국대 교수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12.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12-26 21:13:52
△대학으로부터 최근 직위해제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대응할 계획입니까.


“대학은 사립학교법상 형사사건으로 기소되면 직위해제 처분을 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하더군요. 그러나 이런 규정이 있다하더라도 국가보안법으로 기소된 교수가 직위해제된 경우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상대 장상환 교수나 한국외대 이장희 교수의 예가 그러하죠. 학문의 자유를 앞장서서 보호하고 증진시켜야 할 주체인 대학이 주체로서의 본분을 망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내용인지 고려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의 이념과도 전혀 맞지 않습니다.”

△현재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은 만경대 방명록 서명 때문으로 보입니다. 방명록에 쓰신 내용의 순수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제가 방명록에 쓴 ‘만경대정신’은 ‘민족정기정신’을 뜻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만경대를 어떤 장소로 바라보는가입니다. 당시 제가 연상한 것은 만경대학원이었어요. 만경대학원은 항일무장투쟁을 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자식들, 주로 고아들이죠. 그들을 데려다가 교육시킨 특수교육기관입니다. 학원의 설립목적은 민족을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한 사람들을 후대에까지 보상해줘 민족정기정신을 붇돋우기 위한 것입니다. 그 민족정기정신이 바로 만경대정신인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서명을 한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 만경대 하면 김일성의 생가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래서 만경대정신을 주체사상과 연결짓는 것 같은데요.


“그럴 수 있겠죠. 그러나 만경대정신은 역사적 고증을 통해 보면 적어도 6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미국의 셔먼호를 격퇴한 장소라는 점에선 반침략반외세민족주의로 볼 수 있고, 김구선생도 1948년 분단을 막기 위해 북한에 들러 그곳을 방문했다는 점에서 남북협상정신으로 볼 수 있는 거죠. 이러할진대 언론과 검찰이 방명록에 서명한 사람의 뜻은 들어보지도 않고 주체사상신봉주의로 몰아 세우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일반인이 그렇게 적었다면 의아심을 가질 수 있겠죠. 그러나 저는 남북현대사를 평생 공부한 학자이며, 북한전문가입니다. 만경대에 관한 한 엄청나게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언론의 태도는 파시즘에 다름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지식인으로서 신중치 못한 행동이었다는 지적이 적지 않습니다.


“전략적으로 사고하지 못했다는 것이겠죠. 그러나 왜 학문하는 학자가 그런 전략적 사고까지 하면서 학문을 해야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그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유감스럽고 죄송한 부분은 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학문하는 사람이 전략적 사고까지 하면서 학술논문을 발표해야 하고, 방명록도 그것에 맞춰 써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이는 곧 역사적 실제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을 제대로 하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국민 정서를 생각해야 되고, 눈치를 봐야하는 형편에서 학문적 진리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겠습니까. 운동가들에게 그렇게 요구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학자에게 그렇게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검찰은 선생님의 그간의 연구업적도 문제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검찰 공소장의 90%가 연구업적에 관한 사항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방명록에 서명한 것만을 가지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기는 무리인거죠. 검찰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1993년 ‘역사비평’ 여름호에 게재한 ‘미국과 한국전쟁’ 논문이고, 다른 하나가 서울대에서 주체사상토론회에서 발표한 논문입니다. 그런데 둘 다 당시 검찰에서도 무혐의 처분을 내린 사안입니다. 그래서 제가 제기하고 있는 것은 똑같은 논문이 왜 1993년에는 문제가 안되다가 2001년 8월에는 문제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검찰이 스스로 만경대 사건으로 그간의 연구내용을 문제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연구활동은 주로 어디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입니까.


“제가 이제까지 해온 연구작업은 한마디로 말하면 ‘냉전의 성역 허물기’입니다. 검찰의 공소장 내용을 보면 이런거예요. 한국전쟁, 주체사상, 주한미군, 미국의 대 한반도정책, 자주노선, 친일파 청산, 연방제 통일방안… 이 주제들을 보세요. 감옥소에 들어가 곰곰히 생각해보고, 검찰 공소장을 보니까 내가 생각해도 참 누구도 다루려 하지 않는 주제였구나 생각되더라구요. 저는 개인적으로 민족·민중·비판학문을 지향합니다. 민족학문을 지향한다는 학자가 국가보안법이나 냉전수구세력 때문에 연구를 기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선생님께서는 현실 학문을 지향하시는 것 같습니다. 학계에 전하고 싶은 말씀도 많을 것 같은데요.


“이 땅의 학문은 이 땅에서 하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성을 띨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지금 이 땅의 학문은 지적으로 과잉서구화돼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에 대한 이해도 없고 서구의 학문 경향에 따라 춤을 추는 모습입니다. 아직 민족중심적이고 주체적인 학문은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족학문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그것이 배타적 민족주의는 아닙니다. 우리 민족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면서 인류의 보편적 이해와 결합시키는 학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