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0:40 (목)
[현장취재] 전국대학총장회의-한 부총리와 대학총장 간의 대화
[현장취재] 전국대학총장회의-한 부총리와 대학총장 간의 대화
  • 안길찬 기자
  • 승인 2001.12.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12-26 21:18:38
 ◇ 지난 11일 삼청동교원징계재심위원회 대강당에서는 청년실업과 대학현안에 관한 한완상 부총리와 대학총장과의 만남이 이뤄졌다.
신입생 모집난에, 졸업생들의 취업난에 근심이 쌓여가고 있는 연말 대학가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표정이 밝지 못한 것은 교육인적자원부도 마찬가지. 국가 인적자원 양성과 배분의 임무를 띠고 재출범한지 1년만에 IT·BT 등 첨단학문분야의 인력양성 계획을 내놓으며 흐트러진 대학의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분주했지만, 교수 계약제·연봉제, 교수노조, 국립대발전계획 등 뜨거운 감자는 교수사회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오히려 근심을 부추겼다. 희비가 교차하는 세밑, 1백여명의 대학 총장과 한완상 부총리가 머리를 맞댔다. 그들은 무슨 얘기를 나눴을까.

모임은 지난 11일 삼청동 교원징계재심위원회 대강당에서 열렸다. 악화일로에 있는 청년실업 대책을 숙의하고 대학정책현안에 관해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마련된 이날 자리는 현 정부 들어 처음 마련된 총장과 한 부총리의 ‘만남’이었다. 행사 1부는 진념 경제부총리와 노동부 관계자가 참가한 가운데 청년실업 대책을 논의했고, 2부는 대학정책 현안에 관한 한 부총리와 대학총장들과의 의견교환 시간으로 진행됐다.

총장들 할말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

부총리의 호출을 받고 전국에서 몰려든 총장들은 교육부가 어떤 선물을 안겨줄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결과적으로 이날 회의에서 총장들은 빈 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기대한 선물 보따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은 듯했다. 선물일 수도 있는 진념 경제부총리의 “내년부터 국립대의 등록금 책정권한을 대학에 완전히 일임하겠다”는 발표도 있었지만, 가중되는 대학 재정난을 해소하기에는 ‘언발에 오줌누기’ 방책이라는 평가가 총장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총장들이 기대한 획기적인 국고지원책이나, 취업난 해소책 보따리를 풀어놓아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오히려 대학교육의 현실 적합성을 높여 달라는 뼈있는 주문을 던져 총장들은 이래저래 불편한 눈치였다. 교육부의 일방적인 정책해설로 이어진 이날 회의는 할 이야기는 많지만 좀체 입을 떼지않는 총장들의 긴 침묵으로 더욱 썰렁했다.

그렇다고 전혀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계약·연봉제를 놓고 한 총장이 이의를 제기하자 한 부총리가 즉각 답변에 나선 장면이 그것. 정해주 진주산업대 총장은 “계약·연봉제에 대한 교수들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교육부가 이 제도들을 강행하면 대학과 교수들간의 마찰은 불가피해진다. 제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갑작스럽게 실시하면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점에서 몇몇 대학을 정해 시범운영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절충안’을 짜냈다.

그러나 한 부총리는 “계약·연봉제는 대학의 자율성을 신장하고 실력있는 교수를 우대하기 위한 정책”이라며 “교수들의 우려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제도 시행을 법으로 정한 이상 시기를 더 이상 늦추기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한 부총리는 이어 “교수 단체들이 두 제도를 교수신분을 훼손하는 수단으로만 받아들이는 것 같은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계약·연봉제와 교수 신분보장은 상호보완적인 관계다. 실력있는 교수의 신분은 절대적으로 보장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제도 도입 취지임을 이해해야 한다. 능력이 검증된 교수라면 지금보다 정년보장이 더 빨라질 수 있다”며 “교수들이 총장과 대학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가 발생한다. 총장들께서 먼저 교수들의 불신을 풀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학부제와 모집단위광역화로 인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서울대 등 일부 대학이 검토하고 있는 ‘전공계약제’에 관한 문답도 오갔다. 한 부총리를 대신해 서남수 대학지원국장은 “짧은 기간에 학부제를 추진하다보니 이 과정에서 오류가 빚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고 정책방향을 완전히 뒤바꾸기는 어렵다”고 전제하고 “기초학문 분야가 위기를 맞는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전공예약제를 제한된 범위에서 한시적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대학 깊이 있는 교감 부족

비록 총장들 가운데 일부가 입을 떼긴 했지만, 회의의 전체 분위기를 뒤바꿀만한 ‘뜨거운 열기’는 피어오르지 못했다. 안팎의 어려움과 위기에 직면한 대학, 그리고 이 대학 수장들의 고뇌어린 심정은 좀처럼 표출되지 않았다. 교육부-대학이라는 두 축의 깊이 있는 교감은 멀기만 했다.

취업난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고, 대학 현안을 둘러싼 갈등이 그 어느때보다 증폭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이날 자리는 획기적인 묘안까지는 찾지 못하더라도 활발한 의견교환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면서 문제의식을 나눌 수 있는 장쯤은 될 수 있었다.

갑작스런 만남이 다 그런가. 소득도, 기대도 없이 눈인사 나누고 밥먹고 서둘러 헤어진 이날의 메마른 풍경이 세밑 대학사회의 모습인가. 대책없이 총장들을 불러 모은 교육부의 속셈이 어디에 있었던간에, 아무 준비없이 덜렁 참여해 자리만 지키다 입 한번 제대로 떼지 못하고 자리를 턴 총장들도 ‘소득 없는 만남’에 대한 책임이 있다. 대학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총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들의 어깨 너머로 어수선한 신사년 대학의 길고 지루했던 그림자가 내려 앉았다.
안길찬 기자 chan1218@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