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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자가 서예 서적에 빠진 사연
경영학 전공자가 서예 서적에 빠진 사연
  • 박상주 기자
  • 승인 2008.06.23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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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장서 1만권 기증한 송기철 고려대 명예교수

“학자는 유산으로 책을 남기는 게 어울립니다.” 송기철 고려대 명예교수(84세·사진)가 책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정년 후 10년이 지나서다. 그가 모은 책 분야는 평생을 해왔던 전공인 경영학이 아니다. 뒤늦게 취미로 시작한 서예, 한학 분야다. 15년 전 아내가 세상을 떠나면서 적적하게 주변을 정리하던 송 교수에게 자식들이 권해준 취미였다.

처음에는 글씨에만 집중했다. 송 교수는 그러나 어느새 서예 관련 서적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서예는 점차 시제, 그림, 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장돼 갔다. 10여년 뒤 취미는 어느새 한학에 닿아있었다. 넓어진 관심분야에 더불어 그의 서고도 관련 서적들로 채워져 갔다.


“학자들은 무엇인가에 빠지면 금세 익숙한 방식대로 자료를 모으는데 집착합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시작된 고서 수집은 국경을 넘었다. 외국 고서상과도 관계를 텄다. 구하기 어려운 책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서예 쪽이다 보니 역시 중국책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무한하면서도 알려지지 않는 중국 학문이 고스란히 살아있어요.”

이렇게 모인 한·중·일 서예 관련 책이 1만1천여 권에 이르렀다. 송 교수는 가까이서 두고 보는 5백여 권만 덜고 1만571권을 고려대 박물관에 기증했다. “고려대를 나와서 고려대 교수로 있었습니다. 꼭 후학들에게 책을 주고 싶었지요.” 송 교수는 이미 정년 때 연구실에 있던 경영학 관련 자료와 서적 1만여 권을 도서관에 기증했었다.

송 교수는 이번에는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대체로 예산이 적고 예산 배정도 후순위로 밀려납니다. 학예관을 더 보충하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책 기증이) 도움이 되리라 봤습니다.” 기증된 서적은 한국책 1천545권, 중국책 7천152권, 일본책 1천88권, 기타 외국서 83권, 정기간행물이 52종 702권에 달한다. 한화로 계산하면 2억2천563만3천원 어치다.

“경영학을 해서 교수로서는 꽤 수입이 좋았지요. 게다가 퇴직 후에 자동차 운전기사 안 쓰고, 아내에게 줄 용돈도 못주고, 술 담배 안하니 책 살 돈이 넉넉해 졌어요.” 송 교수는 그러나 “후학들이 책을 부담스러워 해요. 나이든 사람이 주니 더 그럴 밖에요. 젊은 사람들, 책 열의가 너무 없어요. 대학생이면 1천권쯤은 있어야 하잖아요”라고 말한다.
오거서를 대학으로 몰고 다니는 송 교수는 “훗날 자신이 이름 지은 문고 하나 가지는 게 꿈”이라 했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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