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5:55 (토)
‘현재학’전환 놓고 이견 … “경험적 성과 제시해야” 주장도
‘현재학’전환 놓고 이견 … “경험적 성과 제시해야” 주장도
  • 배원정 기자
  • 승인 2008.06.23 14: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쟁점] 민속학계, 개념·연구방법론 놓고 논쟁

‘필드’ 학문의 대명사였던 민속학 내에 조용하면서도 뜨거운 논쟁이 진행중에 있다.‘과거학’에서 ‘현재학’으로 민속학의 개념을 재편하고 연구 대상을 옮겨야 한다는 논의가 그것이다. 논쟁의 중심에는 과거에서 현재로 연구 대상의 무게중심을 옮겨가야 한다는 故 김태곤 경희대 교수(국문학)와 남근우 동국대 교수(인류학), 그리고 전통적인 민속학 방법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임재해 안동대 교수(민속학)가 있다.

임재해 교수는 2005년 <남도민속연구 11>에 게재한 「20세기 민속학을 보는 ‘현재학’논의의 비판적 인식」과 2007년도 <실천민속학연구 9>에서 발표한 「도시 속의 민속문화 전승양상과 도시민속학의 새 지평」에서 논쟁의 불씨를 당겼다. 임 교수는 이들 논문에서 1970년대 초반 김태곤 교수가 제기했던 ‘현대민속학론’과 남근우 교수의 「‘민속’의 근대, 탈근대의 민속학」<한국민속학> 38, 2003)을 비판했다. 김태곤 교수는 무속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긴 민속학자로 “전승문화에 대한 회고적인 입장만을 고수한 ‘과거학’으로서의 한국 민속학을 반성하자”며, 민속학의 새로운 방법론 전환을 주문한 바 있다. 그가 주장한 내용은 “종래 한국 민속학 방법은 학문의 목적이 과거 지향적이고, 민속학의 대상 영역을 벽지의 민간 전승체에만 설정해 결과적으로 민속학은 민간인의 현실적인 생활과는 단절된 입장”이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민속은 곧 잔존문화라는 일반적인 인식에서 탈피해 “민간인의 현실 생활 속에서 생동해 가고 있는 동태적인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대목에서 방법론적 전환의 동력을 읽어낼 수 있다.

1970년대 김태곤 민속학의 유산

김태곤 교수의 방법론 전환 주장은 두 학자에게 다른 영향을 미쳤다. 남 교수는 2003년 논문에서 김태곤 교수의 현재학 논의가 선결성을 띠고 있다며 이론적 지지를 선언했지만, 임  교수는 김태곤의 현재학 논의를 비판하면서 우회적으로 남 교수의 주장들에까지 반론의 그물을 던졌던 것이다.

임 교수는 현재학을 주장하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즉, 농촌이나 벽촌에서 전승되는 민속 문화를 원시적 잔존문화로 폄하하는 시각과 민족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편견, 식민지학자의 피해의식이 잠재된 의견들이라는 것. “민속학자들이 민속연구를 통해서 자민족 고유성과 민족문화의 원류나 원형을 밝히고자 하는 것을 ‘과거학’이라고 비판하고 말면, 민속학의 학사적 출발자체를 매도하는 것”이란 주장이다. 무엇보다 김태곤 교수가 벽촌민속 연구를 비판했으면서도 스스로 산촌민속조사를 실시하는데 앞장섰다는 실례가 그것을 반증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임 교수의 주장들에 대해 최근 남근우 교수는 <한국민속학> 47호(2008.5)에 「도시민속학에서 포클로리즘 연구로-임재해의 ‘비판적 성찰’에 부쳐-」란 반박의 논문을 게재하면서 응수에 나섰다. 남 교수는 임 교수의 지적을 두고 “민간인의 전승문화와 현실적 실제 생활 모두를 전담할 새로운 ‘사회민속학’을 추구하자는 김 교수의 견해를 오독한 것”으로 비판했다. 더 나아가 공동체의 무의식적 관행으로서의 ‘민속’이란 개념보다 도시와 농촌을 불문하고 우리 눈앞에서 의식적으로 펼쳐지는 민속 담론의 정치권력적 구도에 좀 더 비판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민속학 연구를 실천하자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현재학’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차는 ‘민속’이란 개념을 설정하는데서도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임재해 교수는 “전통은 전승력을 지니고 있으며, 지금 여기까지에 이른 역사적 전통이 있을 수 있고, 지금 여기서부터 만들어 가기 시작하는 새로운 전통 또는 현대적인 전통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 뒤,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전승력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보태면, 한층 더 풍부한 전통문화가 축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민속이 없어진다는 단선적 판단 아래 민속의 개념까지 바꿔가며 민속학을 하겠다는 것은 민속학을 순전히 자신의 입지 강화나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왜곡시키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민속학의 개념은 사회변동과 상관없이 원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지, 다수결의 원칙이나 문화적 비중에 따라 민속학의 학문적 성격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완강한’ 설명이다. 

새로운 방법론인가, 메타비평의 한계인가

남근우 교수는 원론적인 문제에 천착해 좀 더 적극적으로 민속이란 개념을 변화시켜야 한다며 임 교수에게 반문한다. “‘민속’과 같은 민속학의 기초 개념이 도농의 사회변동과 상관없이 원론적으로 존재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종래의 민속개념을 수정하지 않고서도 민속학은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민중들의 삶을 대상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런 측면에서 남 교수는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또, “임 교수가 도시민중의 민속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느새 기정사실로 인정해버렸는데, 전승하는 민속 문화를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어떤 논리로 민속의 ‘전승주체’가 될 수 있는지, 그들이 ‘향유하고 전승하는 민속’이 정말로 존재할 수 있는지가 밝혀져야 그 새로운 전승주체들이 대상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남근우 교수가 최근 출간한 『‘조선민속학’과 식민주의』(동국대출판부, 2008)에서 연구의 중요한 단서로 사용한 사진이다. 조선인과 일본인 간의 우호적인 분위기는 기존학계의 ‘식민지배 담론’ 대 ‘저항담론’이란 이분법적 관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남 교수는 “한국 민속학사를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들에서 탈피해 조선민속학에도 정치성과 사상성에 대한 기본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왼쪽부터 송석하, 무라야마 지준, 아카마쓰 지조, 이마무라 도모, 아키바 다카시, 손진태, 정인섭.


이 논쟁을 보는 민속학계는 ‘조용히 더 지켜보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새로운 쟁점이 활발하게 논의된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다는 입장이다. 김성례 서강대 교수(종교학과)는 “이제까지 민속학에 대한 사실주의적인 접근방법론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기존 방법론에 대한 전면적인 비판, 해석학적인 접근, 자기반성적 성찰이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다”며, “생활문화가 하나의 도시적 내지는 탈근대적 형태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전통의 원형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메타비평에 그치기만 한 주장이 아닌, 그것이 과연 실제 민속학에 적용될 수 있느냐를 좀 더 분명히 밝혀줘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강정원 서울대 교수(인류학)는 “이제까지 민속학 연구에 현장학습과 정리, 수집에 의한 보고서 형태의 연구 성과가 주를 이뤘던게 사실”이라며, “현대 민속학이 그래서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는 구체적이고도 경험적인 연구 성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논의의 초점은 현재를 어떻게 민속학에 소화시킬 것인지, 그리고 민속학의 범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로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민속학에 사회과학적인 접근을 수용하려는 젊은 민속학자들의 움직임이 이제까지 민속학은 발로 뛰는 학문이란 생각을 갖고 있던 기존 세대들에게 ‘남이 쓴 글에 대한 비평에만 머무른다’는 인식으로 남을 것인지, 보다 풍부해진 방법론으로 이론과 현장학 모두를 섭렵한 민속학 갱신으로 이어질지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배원정 기자 wjbae@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