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20:10 (금)
실용주의 살리려면 ‘추상명사’ 껴안아라
실용주의 살리려면 ‘추상명사’ 껴안아라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8.06.23 14: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각] 서병훈 교수, <철학과 현실>에서 이명박 정부에 훈수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사진)가 최근 나온 <철학과 현실> 여름호의 특집 ‘실용주의란 무엇인가’에 「이념이 튼실해야 실용도 산다」는 글을 게재, “이명박 대통령이 사르코지의 실패한 실용주의를 반면교사 삼아 성공한 대통령으로 거듭” 나려면 자유, 정의, 인간성 등과 같은 ‘추상명사’를 보듬어 안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 교수가 보기에 이명박식 실용주의의 문제점은, ‘이념의 시대’, ‘실용의 시대’라는 슬로건에 이분법적 논리구조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전임 정부의 ‘이념 과잉’에 대한 치유책으로 탈이념을 강조하며 그 처방으로 실용을 내세우는 방식이 논리적으로도,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정합성을 띠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명박 정부 사람들도 결코 ‘386’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사고가 케케묵었다고 비판하는 데서 더 나아가 실용주의가 이념에 포박됐음을 꼬집는다. 서 교수는 반세기 전 서구 우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이데올로기의 종언’의 허약한 지적 풍경을 환기한 뒤, “그 어떤 수사를 동원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데올로기를 탈색시킬 수는 없다. ‘이념의 시대를 넘어가자’는 세계관 역시 강고한 이데올로기의 틀에 갇혀 있음은 명확한 사실이다”고 주장한다.

사정이 이렇게 진단되다보니 실용주의라는 또 하나의 이념을 현실 속에서 운용하려 하는 이명박 정부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서 교수에게는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서 교수는 “실용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원칙까지 무시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속물주의의 제단으로 몰아가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걱정을 불식할 수 있을까.

서 교수는 “실용주의자들은 정책과 이념을 둘러싼 다양하고 자유로운 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더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 기존의 틀을 넘는 새로운 상상력의 필요성을 역설한다”고 운을 뗀 뒤, 미국 실용주의 철학자들을 다시 한번 더 불러들인다. 즉 “(존 듀이, 로티 등) 그들은 과학적 객관성에 기반한 실증주의적 합리성 개념이 매우 편협하고 근거없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들이 볼 때, 각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는 ‘차이의 자유’가 확대되고, 약자를 배려하는 문명화된 태도를 가진 사람이 늘어나야 진정 합리적인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시적 성과를 내놓기 위해 사람들을 닦달하는 것은 합리성과 거리가 멀며, 이렇게 본다면 결국 듀이와 로티의 실용주의(프래그머티즘)와 작금의 한국사회에 통용되는 실용주의는 ‘전혀 별개의 것’이라고 단언한다. “신자유주의를 맹종하며 경제에 도움이 되면 무엇이든 좋다고 하는 천박한 속물근성은 프래그머티즘과 전혀 다르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원칙을 잃으면 독단에 빠지게 될 것이라는 경고는 여러 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서 교수도 이점에서는 원칙론적이다. “원칙이 살아야 실용주의도 힘을 얻는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그는 생각은 약간 달랐다. 그의 말을 빌려보자. “존 듀이, 로티 등 실용주의자들은 철학이 시대의 요구에 답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바른 의미의 진보에 대해 고민했다. ‘이명박 실용주의자들’도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인문학적 성찰의 중요성을 절감해야 한다. ‘추상명사’를 보듬어 안아야 실용주의도 살 수 있는 것이다.” 서 교수의 바람대로 ‘이명박 실용주의자들’이 어떤 ‘추상명사’를, 어떻게 수용할지 주목된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