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졸업 무렵이 되면, 高麗葬에서 알 수 있듯 조선시대 이전에는 은혜라는 개념이 없었다는 둥, 감사할 줄 모른다면 짐승과 다를 것이 없다는 둥 하면서 가르침을 빙자하여 사은회를 종용하기도 했지만, 내가 ‘은혜’로 불릴 가르침을 저들에게 베풀기는 했는가 하는 자괴감이 앞섰다. 게다가 4년 동안 대학에 다니면서 ‘실력 없는’ 내 강의는 한번도 듣지 않은 학생들까지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다’고 노래할 때는 은근히 솟아나는 부아를 근엄하면서도 자애롭고 흐뭇한 표정 뒤로 감춰야 했다.
그 사은회를 드디어 올해에는 하지 않고 넘어갔다. 과대표라는 학생이 뒤늦게 찾아와서 송구한 목소리로 ‘사은회 일정을...’이라며 쭈뼛거릴 때, 같은 학과의 친한 동료교수와 입을 맞춰 ‘망년회들’을 핑계로 무산시킨 것이다. 왜 우린들 가르쳐 내보내는 제자들과 격식 있는 자리를 열고 서로를 가슴속에 다시 새기는 일을 마다하겠는가만, 취업 전쟁의 와중에서 어깨 처진 저들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어떻게 웃으며 마주볼 수 있단 말인가. 또 뿔뿔이 흩어져 있다가 풀죽은 채 ‘사은’을 준비해야 할 저들의 마음 고생은 또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보지 않는다고 있는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견기업의 중견간부로 있는 친구에게 취업을 부탁하는 전화를 걸었다. 당장의 실적이 중요하기 때문에 경력자를 쓰지 대졸자는 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회사는 내일은 생각하지 않느냐는 나의 목소리 높아진 반문에, 오늘의 내 자리가 불안한데 회사의 내일까지 걱정할 수 있느냐고 그는 미안해했다.
청년실업난 해소를 위해 ‘교육부는 100대 기업에 공문을 보내 채용규모의 확대와 지방대생 및 여학생에 대한 차별 폐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아마도 기업들의 반응은 내 전화에 대한 내 친구의 반응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비아냥거렸을 것이다. 만인을 만인에 대한 늑대로 만드는 시장의 논리를 정정해야 할 정부가 냉혹한 시장에 자비를 구하다니.
이런 무능한 정부는 묵은해와 함께 가고 새해에는 고용을 창출하여 내 제자들의 어깨를 펴주는 정부가 오기를. 送舊迎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