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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워라, ‘문화’도 경제회복 지렛대로 삼다니
놀라워라, ‘문화’도 경제회복 지렛대로 삼다니
  • 백원담 / 성공회대·중어중국학
  • 승인 2008.06.16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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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새정부 문화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전후 한국에서 문화정책은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국민화의 기획으로 수립·관철돼 왔다. 박정희정부는 개발독재에 의한 압축적 근대화(조국근대화)의 기획을 추동하면서 국가중심의 발전주의논리에 의한 국민통합 및 동원의 기제로서 문화영역을 발견했다. 그러나 당시 박정희정부는 문화를 ‘문예’로 한정, 공보와 방송 중심의 일방향으로 ‘국민화’를 추동했다.

문민정부에 접어들어 문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을 좇아 재정위됐다. 김영삼 정부는 ‘쥬라기공원’의 신화를 내세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시장경쟁논리를 문화로서 치장하는 전초작업을 자행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로서 ‘문화향수권의 균등한 실현’을 내세우고, 문화의 세계화·산업화에 주목하는 한편 문화산업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해 경쟁력강화를 위한 국가주의적 발전모델에 의한 진흥정책을 추동했다. ‘국민의 정부’ 문화정책의 특징은 문화를 정치논리와 경제논리에서 동시에 바라보고 ‘국익’ 공통부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문화의 경제적 가치를 부각시키고 문화를 ‘공보’라는 국가정책수행기능으로부터 국민의 문화적 물질적 수요를 근거로 ‘진흥’이라는 지원육성대상으로 전환시킨데 있다.

규제에서 진흥, 정치논리에서 경제논리로

2003년 노무현 정부는 ‘문화로 부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문화비전으로 하여 세계 5대 문화산업 강국실현, 동북아시아관광허브 도약, 세계 10대 레저스포츠 선진국도입을 3대 정책목표로 내세웠다. ‘국민의 정부’에 비하면 문화정책수립의 기초는 취약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정치논리와 경제논리를 계승하면서 문화의 사회적 가치확산에 주목한다. 문화행정 혁신, 문화관광정책의 공공성·자율성 확대, 문화산업·관광산업의 국가경제 신성장 동력화, 문화재정의 안정적·효율적 운영이라는 정책과제의 제출은 그것을 입증한다. 

참여정부는 2004년, ‘창의한국’을 21세기 국가의 새로운 문화비전으로 제시하며, 문화개념과 문화적 가치의 확산을 꾀했다. 창의적인 문화시민-다원적인 문화사회-역동적인 문화국가의 관계상 설정은 참여정부가 문화의 문화적 가치에 근거해 문화공공성의 실현을 목표로 한 문화정책의 기조를 세운 것이라 할 수 있다. 문화개념의 확대에 따른 정책영역의 확장과 사회문제의 문화적 처방에 대한 이념적 제도적 준거틀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이창동 장관의 퇴임과 함께 야심찬 문화정책기획은 경제적 가치를 우위에 둔 내용으로 변질됐다. “창의성과 문화를 바탕으로 문화·관광·레저스포츠의 다양한 콘텐츠의 산업적 활용을 통해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조기에 견인하는 중장기 비전과 전략”을 담은 ‘문화강국 C-Korea 2010’이 그것인데, 창의산업의 지원육성을 기본골간으로 한 문화정책이 ‘창의’에서 ‘산업’으로 방점이 옮겨진 것이다. 이는 이제 문화는 산업의 형태로 생산과 조절이 이뤄진다는 현실을 반영하며, 그 문화산업의 현황은 대기업의 진출과 지배력강화로 문화산업의 구조변화가 이뤄지는 와중에 있다. 대기업이 제조업에서 문화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기존 메이저 문화산업체들과의 흡수·합병·동맹 등 복잡한 관계 형성 속에서 새로운 권력지형을 형성한 것이 오히려 문화정책의 전환을 강제한 것이다. 정부의 진흥정책에 의해 지원, 육성된 산업이 정부의 정책을 조정하는 기이한 현상을 목도되는 국면이다.

 이명박 정부는 소프트파워가 강한 창조문화국가’를 문화비전으로 2008년 주요업무계획(200.3.14)과 정책비전(2008.6)을 통해 문화정책을 가시화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문화관광부는 문화체육관광부로 문패를 바꿔달았다. 정부 수립 60주년, 대한민국정부가 들어선 뒤 문화관련 중앙부처의 호칭은 부단히 변화되어 왔다.

 문교부(1948), 문화공보부(1969), 문화부(1990), 문화체육부(1993), 문화관광부(1997)로부터 문화체육관광부(2008)에 이르기까지 집권세력은 문화부처의 명칭을 개조해왔는데, 그것은 이전 정권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정치적 효과의 측면이 크다. 문화관광부를 문화체육관광부로 확대·통합한 근거는 생활체육 수요확대와 스포츠의 경제적 가치 증대에 따라 문화정책영역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위의 체육정책과제는 내용적으로 이미 노무현정부의 ‘창의한국’에 제시된 바 있으므로 개명은 전시효과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문화와 문화정책이 사회적 합의과정 없이 집권세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주도되고 있는 현실을 극명하게 드러내준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문화의 지위, 문화의 생산과 조절이 국가주도로 ‘국익’(경제회복을 통한 선진일류국가형성)이라는 명분 아래 경제논리를 따라 이루어져가는 현실을 목도하게 한다.

이명박 정부, 참여정부가 닦은 길 달린다

이명박 정부의 192개 국정과제 중 문화관련 항목은 ‘핵심문화 컨텐츠 집중 육성 및 투자 확대’ 1개만 설정된 바와 같이 새 정부에서 문화는 경제회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콘텐츠 산업 전략적 육성, 체육의 생활화-세계화-산업화, 생활 속의 문화환경조성, 관광산업의 경쟁력 강화 등 4대 정책목표를 설정했다. 참여정부가 문화정치논리에 입각해 문화인식 및 문화공공성의 실현과제를 설정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문화경제적 입지에서 문화산업육성발전을 위한 기초문화예술과제의 컨텐츠적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대별된다. 

참여정부는 정권 초기단계에서는 문화행정의 혁신과 문화관광정책의 공공성·자율성 확대, 문화산업·관광산업의 국가 경제 신성장 동력화, 문화재정의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운용이라는 세부 추진전략을 가시화했다. 그러나 ‘창의한국’이후 문화정책이 문화산업중심으로 이동하면서 시장친화적 구조 창출, 블루오션(Blue Ocean 전략), 협치(Governance)시스템 구축으로 추진전략을 변화하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완화 등을 통한 시장친화적 구조창출, 지속가능한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지원체계 구축, 협치(Governance)적 시스템 구축, 창의·혁신의 제도화·일상화를 추진전략으로 내놓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친근성과 연동성이 드러난다. 태생은 다르지만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가 닦아놓은 문화산업정책의 터전 위에서 문화산업정책중심의 문화정책을 주도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양 정부 모두 문화정책에 있어서 국가주도의 발전주의와 신자유주의 세계화논리를 이념적 기초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양산되고 있는 문화노동자의 존재양식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의 논리가 양 정부 모두에게 관철되고 있는 지점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는 문화의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가치창조의 측면에 대한 이해가 부재하다는 점에 문제의 초점이 있다. 문화기업의 이해관계에 따른 각종 규제완화는 문화의 자율적 발전을 침해할 것이고, 대다수 국민의 문화향유권·문화주권 또한 경제논리로 박탈해갈 것이다. 

바로 며칠 전 나온 새 정부의 문화정책비전에 ‘문화예술로 삶의 질 선진화’가 ‘콘텐츠산업의 전략적 육성’과 ‘체육의 생활화·산업화·세계화’ 항목에 밀려 세 번째 정책목표로 설정돼 있는 것은 이 정부의 문화정책기조가 문화산업중심의 산업정책에 가깝고, 기초문화예술정책 또한 ‘선진화’에 방점이 찍힘으로써 발전주의의 포로가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잡지 등 정기간행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공포, ‘콘텐츠코리아 추진위원회’ 발족, 부처 구조조정, 문화산업 투자환경 개선을 위한 한국형 문화산업 완성보증제도 도입방안 논의 등 새 정부에 들어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해온 항목을 열거해보면 이러한 우려는 어느새 현실이 되고 있음을 진감할 수 있다. ‘문화’가 없는 문화정책의 미래는 우리에게 어떤 삶을 강요할 것인가. 

 

백원담 / 성공회대·중어중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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