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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지도’제작 가쁜히 … 겨레말 전체 겨냥하다
‘언어지도’제작 가쁜히 … 겨레말 전체 겨냥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6.1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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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국내 방언 연구 어디까지 와 있나

지역이 달라지면 말도 달라진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이지만, 이것을 학문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19세기 말 유럽에서의 일이었다. 프랑스의 역사언어학자 질리에롱(J. Gillie?ron)은 1896년부터 현지조사원 에드몽(Edmont)을 고용해 프랑스 전역의 방언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조사된 자료를 지도에 옮기는 작업을 1902년부터 시작해 1910년 마침내 ‘프랑스 언어지도’라는 최초의 방언지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1912년 질리에롱과 로끄(Roques)는 제작된 프랑스 언어지도를 해석해 그 결과를 『언어지리학연구』(Etudes de Geographie Linguistique)로 내놓았는데, 이 작업은 곧 ‘언어지리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낳게 됐다.

언어지리학은 언어 내부의 방언 분화 양상을 지도에 표시해 방언형의 분포를 공간상에서 보여 주는 데서 출발한다. 이어 방언형과 분포를 지리적, 정치적, 사회적, 언어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작업이 뒤따른다. 각 지역에 나타나는 방언형은 언어가 변화하는 각 단계를 보여 주므로, 방언지도란 시간상의 언어 변화를 공간 위에 펼쳐 놓은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변화의 선후 단계를 보여 주는 방언형들을 연결하면 어휘의 변화 과정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렇게 방언형의 생성과 전파의 과정을 추적하고 이들의 역사적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 언어지리학의 두 번째 단계이다. 마지막으로 각 방언형들을 비교하면 이들이 분화되기 이전의 고대 어형을 복원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재구성(reconstruction)의 작업은 문헌보다도 앞선 시기의 어형을 보여 줄 수 있으므로 방언은 언어사 연구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자료인 것이다.

방언 지도와 언어사 연구

우리나라의 방언 연구는 일본인 학자 오구라(小倉進平)에 의해 시작됐다.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오구라는 한국어의 역사를 밝히기 위한 방편으로 방언을 연구했는데, 첫 논문 「濟州道方言」을 『朝鮮及滿洲』에 발표한 시기가 1913년임을 감안하면 국어 방언의 연구는 프랑스와 비교해 볼 때 매우 이른 시기에 시작됐음을 알 수 있다.

해방 전의 방언 연구는 오구라와 그의 제자 고오노(河野六郞)에 의해 주도됐다. 오구라는 한반도 전역을 조사하고 조사할 때마다 보고서를 작성했으며, 나중에 이를 묶어 단행본으로 발간했으니 1944년에 펴낸 『朝鮮語方言の硏究』는 그 결정판이다. 고오노는 논문 『朝鮮方言學試攷-‘鋏’語攷』를 통해 『계림유사』에서 ‘割子蓋’로 나타나고, 중세어에서 ‘ㄱ?  ㅿㅐ’, 경상도 방언에서 ‘가시개’로 쓰이는 ‘가위’의 고대형을 재구하려고 했다. 이 작업은 언어지리학이 어떻게 역사적 연구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모범적인 연구였다.

방언 어휘의 수집은 방언 연구를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다. 어휘의 연구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어휘의 형태를 통해 음운론적 연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어휘의 수집도 오구라의 『朝鮮語方言の硏究』(상)에서 그 모범적인 예를 볼 수 있다. 이 작업은 하나의 어휘 항목에 대응하는 각 지역 방언형들을 조사해 보고하는 형식으로 이뤄졌는데, 각 어휘의 제시는 유해식으로 분류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오구라의 방식은 이후 김형규의 『한국방언연구』(1974)나 최학근의 『한국방언사전』(1978)에 그대로 계승됐다. 이와는 달리 특정 방언의 어휘만을 골라 모아 놓은 자료집도 출현하게 되는데, 1970년대부터 경기, 경북, 경남, 전남, 제주, 함북, 평북 등지의 방언 어휘집이 사전 형식으로 편찬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국적인 방언형의 비교를 가능하게 만든 것은 한국정신문화원의 『한국방언자료집』이다. 이것은 동일한 조사 항목을 통해 이루어진 郡별 조사 결과를 道별로 묶어 놓은 자료집이다.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개원하면서 어문학연구실에서는 ‘전국방언조사연구’를 실시하기로 계획했다. 약 2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1980년 6월 ‘한국방언조사질문지’가 만들어졌고, 이를 토대로 1980년부터 1985년에 이르는 5년 동안 남한의 각 郡을 단위로 한 조사가 실시됐다. 조사된 자료는 1986년부터 자료집 형식으로 출간됐으니 이것이 곧 『한국방언자료집』인 것이다.

『한국방언자료집』은 본격적인 방언지도의 전 단계였다. 방언지도가 바로 제작되지 못한 것은 북한 지역의 자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무릇 방언지도란 한 언어가 사용되는 전 지역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데 분단 상황 때문에 반쪽의 지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한국방언자료집』이 한국방언지도로 전환되지 못하고 멈칫거리는 동안 대한민국 학술원에서는 1993년에 ‘한국언어지도집’을 발간했다. 이 지도집은 ‘말(言)’, ‘여우’, ‘새우’, ‘듣다’ 등 극히 적은 수의 어휘와 운율적 특징만을 반영한 한반도 전역의 방언지도이기는 했으나, 언어의 점진적 변화 과정을 색깔의 농담 차이로 나타내는 등 국어 방언 지도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 참신한 작업이었다.

북한 지역의 방언 조사가 가까운 시일 안에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지도 제작을 마냥 미룰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선 『한국방언자료집』을 토대로  남한의 자료만을 반영한 방언지도의 제작이 시도됐고, 2008년 2월 마침내 153장의 언어지도를 갖춘 ‘한국언어지도’ (The Linguistic Atlas of Korea)가 완성되기에 이르렀다(오른쪽 기사 참조). 이 사업을 계획한 지 실로 30년만의 일이었으며, ‘프랑스 언어지도’가 만들어진 후 한 세기만에 이루어진 쾌거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언어지도’는 북한 지역이 빠진 반쪽의 방언지도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립국어원은 2004년부터 북한의 사회과학원과 공동으로 ‘남북한 지역어 조사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 사업은 남북한의 각 도에서 매년 한 지점을 선정해 미리 제작된 질문지에 따라 실시되는 방언 조사이다. 이 지역어 조사 사업은 남북한의 공동 사업이라는 점, 그리고 구술 담화가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조사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담화의 조사란 현지 토박이들의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10시간 이상 녹취해 이를 전사하는 작업을 말한다. 디지털 기술과 컴퓨터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토박이의 말을 생생하게 보존하고 기록해 두는 일이 쉬워졌으므로 문장의 억양이나 성조가 그대로 반영된 자연 발화가 녹취되고 전사될 수 있게 됐으니, 수백 년 후의 후손들은 이제 21세기 초의 한국말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듣고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방언 퇴조 현상 학문적 조명 필요

‘한국언어지도’와 ‘남북한 지역어 조사 사업’에 비춰 보면 앞으로 한국 방언 연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방언 조사의 지역을 넓혀야 한다. 북한 지역의 방언과 함께 중국 조선족과 중앙아시아 고려 사람들의 방언도 아울러 조사돼야 한다. 중국과 중앙아시아의 방언은 그 뿌리가 북한 지역 방언에 있지만, 수십 년 동안 독자적인 발전을 해왔으므로 그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방언은 급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 이는 물론 표준어 교육과 매스컴 그리고 교통의 발달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각 지역의 언어는 빠르게 표준화 돼 현지 토박이말은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서나 찾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면 옛말을 반영하는 방언을 찾으려 했던 과거의 연구 방향만을 고집할 수 없는 환경이 됐다. 사라지는 방언의 소멸화 과정이나, 표준화에 저항하는 방언의 성격을 찾는 등 방언의 퇴조를 학문적으로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그밖에 성(sex)과 계층, 직업, 교육 수준의 차이 등에 기인한 언어의 변이 현상에도 주의를 기울여 사회방언의 연구도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제 국어의 방언 연구는

방언의 쇠퇴와 더불어 연구 대상과 방법을 새롭게 찾아야 할 일대 전환기에 와 있는 것이다.

이기갑 / 목포대·국어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전남 방언의 언어지리학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에는 『전라남도의 언어지리』,  『전남방언사전』(공편) 등이 있으며, ‘심악이숭녕국어학저술상’을 수상했다.

 


 

 
方言 분포 추적한 『한국언어지도』의 힘

1978년 시작한 ‘전국방언조사연구’의 최종목표는 『한국언어지도』의 출간이었다. 30년이 흘러서 그 목표가 성취됐다. 이익섭 서울대 명예교수, 전광현 단국대 명예교수, 이광호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이병근 서울대 명예교수, 최명옥 서울대 교수가 함께 작업해 내놓은 『한국언어지도』(태학사, 2008)가 그것이다.
언어지도는 각 지역에 어떤 方言들이 쓰이고 그것들이 어떤 분포의 모습을 보이는지를 시각적으로 쉽게 드러나도록 보여 주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한국언어지도』는 기본적으로 각 방언형을 여러 다른 모습의 부호로 표시하고, 다시 그것을 계열별로 분류해 다른 색깔로 구분했다. 일차적으로 기호의 모양과 색깔로써 지역 간의 方言差를 드러내려고 한 셈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바탕색을 이용해 방언 구획을 보여줌으로써 방언 분포를 더 선명하게 표시한 것도 특징적이다. 陳列지도와 分布지도를 통합한 방식을 취한 것이다. 저자들이 “우리 언어지도는 독보적이라 할만하다”고 자부심을 드러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언어적 다양성을 통해 생동하는 다채로움을 보여주고, 우리말의 긴 역사와 각 지역의 독특한 삶의 흔적을 아로새긴 방언이야말로 21세기 민족문화유산의 알갱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국언어지도』는 저자들의 말처럼 ‘아쉬움’이 남아 있는 미완의 작업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남한만으로 언어지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풍부한 민족어의 발견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번 언어지도에 포함된 항목도 매우 제한적이다. ‘벼’에서부터 ‘쇠다’까지 153개 언어지도만 그려졌다.
그러나 언어지도의 밑그림을 그려냄으로써 민족어 원형으로서의 방언을 추적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한 점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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