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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세밑의 교수사회
[대학정론] 세밑의 교수사회
  • 논설위원
  • 승인 2001.1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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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4 16:57:50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교수·대학 사회를 되돌아보면, 유난히 사건이 많았던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정치 참여, 지식인 논쟁, 표절 시비, 제자 성추행 등 책무와 도덕성에 관련된 비판 앞에서 교수사회에 주어진 높은 기율을 다시 한번 발견한다.

그러나 교육자로서, 학문 연찬의 과정에 있는 한 사람의 학자로서 교수를 들여다 보면 이들이 겪고 있는 남다른 아픔과 고뇌, 좌절의 형체를 외면할 수 없게 된다. 어쩌면 이 모습 속에서 2001년 우리 대학의 앙상한 품격을 엿볼 수 있으리라. 우리 신문이 송년호를 준비하면서 교수들을 대상으로 벌인 한 설문조사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교수들의 인간적인 면모, 아파하는 대목이 알몸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교수들이 가장 많이 스트레스를 받은 대상은 ‘학생들’이었다. 어째서 그런가. 학생들은 예전에 비해 기초 소양이 부족하고, 호기심과 지적 자극도 없을 뿐더러 학습 열의 또한 부족해서 강의 시간이 별 재미 없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울리는 핸드폰 소리, 산만한 수업태도와 무표정 등 학생들의 작은 행동도 하나 하나가 커다란 스트레스였다.

교수들을 피로하게 만든 스트레스는 이외에도 더 있다. 업적평가에 따라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하는 대학의 분위기, 성과급 실시로 동료 교수들과 논문 편수 경쟁을 벌여야 하는 서글픈 현실도 스트레스였고, 그나마 얼마되지 않는 규모인데 이 마저 불평등하게 나눠주는 연구비도 큰 스트레스였다.

무한 경쟁의 뻘밭으로 자신들이 내던져지고 있다는 인식, 무엇보다 교수들의 신분을 놓고 오간 유치한 흥정인 계약·연봉제는 교수들의 기억 속에 깊은 아픔을 배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전국대학교수회나 교수노조 같은 기구에 희망을 걸었으리라.

그렇다면 새해에는 교수들이 겪고 있는 고뇌의 흔적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무엇이 스트레스를 양산하고 있는지 대학 당국과 교육부, 그리고 교수들 각자가 깊이 따져볼 일이다. 버릇없고, 지적 호기심조차 지니지 못한 학생들 사이에서 허덕이는 저 처량한 우리 시대의 교수 모습에서 오늘날 대학을 강박하고 있는 편협한 시장의 논리를 읽는다고 한다면 비약일까.

그러나 한편으로 자정능력이 뛰어나고 도덕적 기율이 높은 교수사회가 자신의 고뇌에서, 인간적 모습에서부터 즐비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할 때, 가장 앞선 필요충분조건은 역시 자신들에게 주어진 ‘책무’에 대한 깊은 반성과 재성찰일 것이다. 올해 불거진 도덕성 실추의 모습들이 결국은 이런 자기 비판의 부재, 자기 반성과 성찰의 결핍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학생들을 탓하기 전에 나는 어떻게 준비하고 가르침에 나섰는가를 반성할 일이며, 국민의 혈세로 지급된 연구비를 과연 정당하게 집행했는지, 동료 교수들과 합리적 의사소통을 위해 늘 먼저 나섰는지, 학문후속세대를 위해 그들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제기하려 했는지를 따질 일이다. 세밑 교수들을 우울하게 만든 여러 스트레스는 어쩌면 이런저런 문제에 얹힌 낡은 ‘희극’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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