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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힘줄 … 비평 정체성이 모호하다
한국문학의 힘줄 … 비평 정체성이 모호하다
  • 교수신문
  • 승인 2008.06.0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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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동향] 여성 평론가들의 약진, 성과와 한계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은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여성문학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90년대를 경계로 우리 문학은 이데올로기와 집단의식을 반영하는 운동성의 차원을 뒤로 하고 개인성과 내면성의 확대를 두드러지게 드러냈는데, 이러한 문학지형의 변화는 여성문학의 자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 시기부터 여성문학은 남성중심의 문학제도와 가부장적 담론에 맞서 여성의 자기정체성을 모색하는 일관된 문제의식을 지녀왔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이 담론적 차원에서 뚜렷이 쟁점화된 시기는 90년대부터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문학에서 여성문학비평의 자리가 상당히 두텁게 형성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일 것이다. 각 문예지들이나 학회 등에서는 서구의 페미니즘이론을 적극적으로 소개하면서 여성문학의 이론적 정립과 실천적 방향에 대한 다양한 특집과 쟁점을 마련하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 두텁게 형성

최근 팔봉비평문학상의 수상자로 박혜경 평론가가 선정되었다. 이에 대해 언론은 첫 여성 수상자라는 점을 유독 강조하면서, 수상 이유로 작가와 작품을 독창적이고 섬세하게 균형적으로 읽어내는 여성문학비평의 장점이 높이 평가됐음을 특별히 부각시켰다. 여기에서 필자는 한 가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지금 여성문학비평의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작품을 미시적으로 읽어내는 정교한 텍스트주의를 여성문학비평의 장점으로 재단하는 것은 모성성과 내면성에 갇힌 보수적 여성주의의 관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과 전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여성문학비평은 개인과 내면이 아닌 집단과 사회로 그 외연을 넓혀나갈 필요가 있다. 텍스트 안에서만 문학을 바라보는 비평 방식은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들을 외면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여성문학비평에서 메타비평의 부재를 가장 아쉬워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실천적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문학비평은 여성의 목소리와 역할을 상당히 소외시켜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문학비평이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서 형성된 강단비평의 토대 위에서 발전해 왔다는 점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즉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서 여성의 자리가 상당히 협소했다는 사실과 시나 소설에 비해 여성문학비평이 상대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전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90년대 중반부터 여성문학비평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결정적 이유는 대학이라는 제도 안에 여성문학 연구자의 수가 그만큼 확대됐다는 사실과 깊이 관련된다. 물론 70-80년대에도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해서 김현자, 정영자, 송명희, 정효구, 박혜경 등의 여성비평가가 등단하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비평가의 수에 있어서나 발표된 비평의 양에 있어서나 여성문학비평의 독립성을 인정할 만한 토대를 갖췄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90년대 이후 등단하여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여성문학비평가들을 열거하면, 황도경, 신수정, 문혜원, 백지연, 김수이, 심진경, 최성실, 서영인, 김예림, 이경수, 엄경희, 김진희, 강유정, 강경희, 정여울, 허윤진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2000년대 이후 비평가로서 첫 출발을 했다는 점에서, 엄밀하게 말해 2000년대의 비평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들어 이들의 비평이 더욱 빛을 발하며 평단의 중요한 목소리로 자리잡게 된 데는, 2000년대 이후 한국문학지형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이들의 비평적 관심이 감각적이고 대중적인 논리 위에서 여성적 글쓰기의 개성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즉 기이한 상상력과 다양한 글쓰기 방식의 실험을 동원한 낯설고 이질적인 문학적 양상들을 동세대의 감각으로 읽어내는 이들의 비평적 독법은 그 자체로 비평의 신선함과 새로움을 갖춘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와 비평가의 관계가 이토록 가까웠던 적이 언제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요즘 젊은 비평가들, 특히 여성비평가들은 여성문학의 달라진 경향을 새로운 지형도로 읽어내는 데 강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여성문학비평을 좀 더 냉정하게 살펴보면, 여성성의 본질에 대한 이해에서부터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즉 탈근대 사회로의 이행이 여성의 문제를 여성 안에서만 사유하지 않도록 그 범주를 확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문학비평의 모습은 여성의 틀 안에서 또 다른 여성성을 발견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무엇보다도 지금 여성문학비평은 남성/여성의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 복수화된 젠더의 다양성을 주목함으로써, 사회역사적 문맥 속에서 여성문학의 실천적 담론을 정립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즉 여성문학에 내재된 여성성의 문제를 모성성과 내면성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사적 경향을 비판함으로써,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여성의 사회적 성정체성에 대한 실천적인 고민을 이끌어 내는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여성문학비평이 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점을 개괄적으로 정리하면, 첫째, 감각적 섬세함이라는 수사에 사로잡혀 미학적인 분석과 해석에 지나치게 얽매여 있고, 둘째, 텍스트를 둘러싼 컨텍스트의 사회역사적 의미 찾기나 실천적 태도에 무관심한 경향이 두드러지며, 셋째, 2000년대 이후 젊은 세대의 문학을 새로움의 가치로 호명하는 데만 집중함으로써 여성문학사의 전체적 지형 속에서 여성성의 변화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넷째, 여성문학론의 쟁점과 여성문학의 방향에 대한 메타비평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여성문학의 지향점을 뚜렷이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쟁점 결여된 비평, 설자리 없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토대로 앞으로 여성문학비평은 남성/여성이라는 생물학적 차이를 강조하는 차원을 뛰어 넘어, 복수화된 젠더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중층적으로 분석해내고 그것의 현실적 의미 효과를 쟁점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금 여성문학비평의 현실은 너무나 평온하고 조용한 모습으로 텍스트의 언어와 구조에 대한 분석에만 매달려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평이 쟁점의 부재를 드러낸다면, 그것은 이미 비평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잃어버린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여성문학비평은 끊임없이 새로운 의제를 만들어나가면서 여성과 문학의 관계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의식을 생산적으로 제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문제는 점점 더 복잡하고 심각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여성과 노동, 여성과 국가, 여성과 민족 등 거시적인 체계 위에서 여성의 자리는 더욱 구체적이고 쟁점적인 문제의식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 앞에서조차 여성문학비평의 모습이 궁색해져 버린다면 굳이 문학비평에서 여성의 자리를 독립시킬 이유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텍스트의 안과 밖을 적극적으로 소통시키는 새로운 비평전략을 담론화할 필요가 있다. 여성이론이 실천의 영역과 괴리된 지식의 차원에 머물러 버리는 것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경계해야 한다. 지금 여성문학은 텍스트 바깥에서 텍스트 안을 향해 힘차게 걸어오고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상일/ 동의대· 문예창작학과

필자는 부산대에서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타락한 중심을 향한 반역』, 『주변인의 삶과 시』, 『전망과 성찰』, 『서정의 미래와 비평의 윤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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