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1:15 (목)
‘최초의 대답들’은 어떤 현대성을 지녔을까
‘최초의 대답들’은 어떤 현대성을 지녔을까
  • 김창한 객원기자
  • 승인 2008.06.09 15: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책들의 풍경]『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 피에르 아도 지음 | 이세진 옮김 | 이레 | 2008·『철학의 탄생』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

“오늘날에는 누구나 그리스적인 방식으로 생각한다. 설령 이를 전혀 깨닫고 있지 못하다고 해도.”(자클린 드 로미이) 맥도날드 햄버거만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 대한 ‘합리적 해명’으로 대표되는 서구적 사유방식 또한 학문 일반을 비롯해 전 세계적인 삶의 양식을 규정한다. 최근 서양 철학의 기원을 탐구한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와 『철학의 탄생』은 좁게는 분과 학문으로서의 철학의 뿌리를 캐고 있지만, 넓게는 서구적 사유의 밑바탕과 연속성을 새로이 복원하고자 한다.   

『고대철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저자 피에르 아도는 철학의 원형을 복원함으로써 이론적, 체계적 담론에 빠져 있는 오늘날의 강단 철학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한다. 철학적 담론은 무엇보다 생의 실존적 선택으로부터 기원하며 공동체 이를테면 철학적 ‘학파’를 통해 양성됐다는 것이다. 철학이란, 결국 특정한 삶의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욕망을 채워줄 ‘생활양식’인 셈이다. 물론, 그것은 철학적 담론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생활양식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우선, 저자는 ‘철학’이라는 말을 맨 먼저 사용한 이들의 역사를 살펴보고, 특히 철학을 ‘지혜에 대한 욕망’으로 정의했던 플라톤의 『향연』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리고 생활양식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고대철학사조의 특징을 일별하고, 어떤 연유로 중세로부터 철학이 순수한 이론적 활동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를 검토한다. 마지막으로 근·현대 철학에서 생활양식으로서의 고대 철학적 이상이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 그 가능성을 모색한다.

생활양식으로서의 철학을 최초로 안착시킨 인물은 소크라테스였다. 그는 ‘소유’보다 ‘존재’에 마음을 쏟아 스스로의 영혼을 탁월하게 가꿀 것을 역설했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특히 지혜와 어리석음의 중간자이자 매개자로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philo-sophe)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생활양식으로서의 철학을 자신의 ‘대화편’과 ‘아카데미아’를 통해 제도화시킨다. 이러한 ‘대화의 윤리학’의 중요성은 이 실천이 불러오는 삶의 변화에 집중됐으며 올바른 정치가를 양성하기 위한 의도 또한 내포하고 있었다. 저자의 해석에 따르면, 플라톤 대화편들의 비일관성은 이론적 체계의 구성이나 지식의 전달보다 철학적 삶을 ‘양성’하기 위한 철학 본래의 목적에 충실했던 결과다.

아리스토텔레스 또한 ‘라케이온’이라는 자신의 철학 학교를 통해 생활양식으로서의 철학을 추구했으나 그는 이론적 실천에 보다 치우져있었다. “행동으로써 발생하는 결과들을 노리는 생각들만이 ‘실천적인’것은 아니다. 정신적 활동과 자기 내의 목적을 지니며 그 자체의 관점으로 개진하는 성찰들이 그보다 훨씬 더 실천적이기 때문이다”는 것. 이후 에피쿠로스주의와 스토아주의를 거치면서도 생활양식으로서의 철학은 그 문맥을 유지하지만, 중세에 이르러 결정적인 단절을 겪게 된다. 저자는 철학적 삶의 양식과 담론의 단절 원인을 그리스도교의 급부상에서 찾고 있다. 중세에 이르러 철학적 담론은 신학적 논쟁에 사용될 수 있는 단순한 개념적 자료들의 차원으로 전락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단절은 르네상스시기를 거치면서 어느 정도 회복됐고, 대표적으로 ‘강단 철학’과 ‘세계 개념으로서의 철학’을 구분할 뿐 아니라 이론 이성에 비해 실천 이성의 우위를 주장했던 칸트에 의해 복원된다. 이외에도 루소, 몽테뉴, 괴테, 마르크스, 니체, 윌리엄 제임스, 비트겐슈타인, 메를로 퐁티 등의 철학자들을 통해 삶에 복무하는 철학이라는 고대 철학의 원형은 새롭게 태어난다. 그러나 이들은 고대 철학자들과 달리 철학적 공동체를 통해 철학적 삶을 키워내기보다는 선배 철학자들을 동무삼거나 실험실로 여기면서 철학적 삶의 양식을 개척해야만 했다.

앞서 소개한 책이 소크라테스 이후를 기점으로 (고대 철학의) ‘철학함’에 대한 탐문을 시도했다면, 콘스탄틴 J. 밤바카스의 『철학의 탄생』은 탈레스에서 데모크리토스까지 흔히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라고 불리는 先學들을 통해 초기 그리스 사상계의 밑그림을 그린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현대인들이 유럽 사상의 기초가 마련되고 성장하는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흔히 사람들은 철학과 과학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시작됐다고 믿는 경향이 있는데, 그리스 정신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들의 사상들은 소크라테스 이전에 일어난 정신의 계몽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 저자는 “파르메니데스가 없었다면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되었겠는가?”라고 묻는다.

둘째 이 책의 목적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저작에서 드러난 자연과학적 차원을 강하게 부각시키는 데 있다. 그들의 사유는 철학(형이상학, 윤리학 등)뿐만 아니라 과학(물리학, 화학, 우주론 등)과도 서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통일적인 전체성을 띄고 있었다. 그럼에도 기존 연구서들은 문헌학과 철학의 측면만 과도하게 부각시켰기 때문에, 서양 사상의 선구자들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이루지 못했다고 강하게 비판한다. 특히 이 부분은 이 책의 강점으로, 취리히 대학 자연과학부에서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철학과 자연과학의 인접 영역에 대한 연구에 매진해왔던 저자의 이력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결과다.

칼 야스퍼스가 ‘세계사의 축의 시대’라고 불렀던 인간 정신의 획기적 발전은 기원전 7세기에 서양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발생했다. 사유를 통해 세계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유사했으나 그 발전 양상은 달리 나타났다. 중국 제국에서는 정의로운 정치 질서 안에서 인간들이 맺어야 할 관계에 대한 실천적 고민이 지배적이었다. 인도에서는 또한 인생의 심오한 의미에 대한 종교적 고민이 그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강력한 중앙국가도, 종교적인 성직자 집단도 없었던 그리스에서는 자연의 조화 앞에 느꼈던 경이감이 세계의 시초와 본질에 대한 근본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왜 유독 그리스 지역에서 이러한 방식의 정신적 발전이 일어났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책의 서두에서 저자는 그리스의 자연, 사회, 종교, 신화 등을 일목요면하게 살피고 있다. 이후 저자는 탈레스에서 데모크리토스까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들을 충실히 인용하면서 그들 사상의 전체상을 만들어낸다. 특히 그들의 자연과학적인 면모를 현대 과학과 접목시켜 해석함으로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최초의 질문들’을 던졌다는 의미 이외에도 그들의 ‘최초의 대답’들이 가지는 현대성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를테면 탈레스의 질문과 양자 역학 사이에 다리를 놓고, 데모크리토스와 돌턴의 현대 화학을 함께 풀어내고 있다.

‘캄캄한 방에서 그곳에 있지도 않은 검은 고양이를 찾고 있는 장님’. 찰스 다윈의 이 농담은 비록 수학자들을 직접 겨냥한 것이지만, 분과 학문의 울타리와 개념의 구조물 속에 갇힌 모든 ‘가분수형 지식인들’과 ‘절름발이 지식인들’을 꼬집는 말이기도 하다. ‘생활양식으로서의 철학’을 복원하고자 했던 피에르 아도와 ‘통합적 사유의 고대적 원형’을 복구하고자 했던 콘스탄틴 J. 밤바카스가 뻗고 있는 서양 사유의 기원을 탐구하는 더듬이를 따라가보자. 그 발걸음이 진중하다면, 우리는 ‘앎과 삶의 분리’와 ‘분과 학문들 간 장벽’을 해소할 열쇠 하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창한 객원기자 han@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