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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SCI의 욕망
[기자수첩] SCI의 욕망
  • 박상주 기자
  • 승인 2008.06.09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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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Science Citation Index)가 만들어진 이유는 단지 ‘학술지가 너무 많아서’였다. 모든 저널을 다볼 수 없으니 볼만한 저널만 골라 검색하자는 것이다. SCI는 그러나, 언제부턴가 대학평가와 국가 순위 지표로 등장해 점차 학문 권력, 학계 표준 역할을 맡고 있다.

SCI가 생소했을 무렵 “SCI에 게재됐다”가 뉴스였다. 점차 SCI 게재 수가 늘자, “인문사회계는 실적이 없냐”는 소리가 나왔다. 이 때 즈음 학술진흥재단(이하 학진) 등재평가가 시작돼 인문사회계 학술지도 연구업적에 산정됐다. 다시 ‘국제경쟁력’이 정부와 대학의 화두가 되자 학진 등재지는 금세 힘을 잃었다.

학회가 나섰다. 한국 학술지를 SCI등재지로 만들겠다는 것. 지난 4월까지 SCI, SSCI, SCIE, A&HCI 등 톰슨로이터社 ISI데이터베이스에 등재된 SCI급 한국 학술지는 모두 65종에 이른다. 영국 <타임즈>가 대학평가에서 엘스비어社 스코퍼스 논문수를 계산하자, 학술지들은 등재가 수월한 스코퍼스에 몰려 (지난해 1월 기준) 80여 종이 등재됐다.

급기야 학진까지 나섰다. ‘한국 학술지들을 SCI DB에 등재시키겠다’는 목적을 내걸고 지난 4월 국제학술지협의회를 결성, 보름 뒤 학진 간부가 미국 톰슨로이터 본사를 찾아가 편집개발이사를 만났다. 학진은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킬만한 장엄한 보도자료를 냈다. “SCI와 학진 KCI DB를 연계, 한국 학술지를 SCI 데이터베이스 대상으로 진입시킬 수 있는 제도적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 직접 접근 방식으로 방문을 주도함으로써 한국 학술지의 국제화 협상에 있어 유리한 위치를 점했다”고 밝혔다.

정작 톰슨로이터社 한국지사 김희일 대표는 “반박자료를 낼까했다”고 털어놨다. 공신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SCI등재가 협상으로 이뤄질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SCI DB에 진입할 수 있는 제도적 협력 기반, 그게 대체 뭐냐”고 되물었다.

한국 학술지가 SCI급 저널이 되는 건 나쁠 이유가 없다. 다만 대학·학진·학회 욕망에 SCI만 가득하고 ‘좋은 논문을 쓰자’는 욕망이 안 보이는 게 문제다. 좋은 논문이 많은 학술지는 자연히 SCI급 저널이 되고, KCI가 그런 학술지를 많이 등재하면 학진은 ‘협상에 유리한 위치’를 점해야 할 이유가 없다.
참고로 SCI 등재는 협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저널이 가진 논문의 질로 이뤄진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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