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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밑에 보내는 편지
세밑에 보내는 편지
  • 교수신문
  • 승인 2001.1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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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4 16:51:19
이동렬
이화여대·심리학

며칠 있으면 새해, 이 때면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마음을 모아 자기의 작은 소원을 되뇌인다. 나는 앞으로 은퇴까지 꼭 5년, 저 멀리 종착역이 보이는 그런 자리에 있다. 그렇다고 바램 한 두 가지 없으란 법은 없다.

첫째는 학생들이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자기 전공 이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었으면 한다. 이 점에서 우리 교수들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젊음의 가장 큰 특징의 하나는 바로 무한한 가능성과 포부이다. 그러므로 모든 학생은 전공 이외의 무엇이든 빠져들어 미쳐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시험에 필요없는 지식, 취직에 필요없는 지식이라고 외면하지 않는 교양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에 내가 가르치는 반에서 “성삼문, 박팽년 등의 사육신이 어느 임금을 위해서 죽었느냐.”고 물었을 때 대답을 바르게 한 학생은 백 여명 중에 한 사람도 없었다.

다양한 능력가진 학생이기를

이런 역사 지식을 가지고 어떻게 전통과 문화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교수는 단순한 전공인을 훈련시키는 것만 아니라 건강한 교양인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교수의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교육 체계 내지 부적합한 교육 환경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적에 강박적으로 집착이 된 학생들은 자나깨나 성적 이외에 다른 것을 시도해 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시험이나 학교 성적에는 관계가 없는 소설을 읽고, 시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연극을 하는, 한 마디로 자기가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고 자기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해 보는 것은 젊은 나이에 해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성적 때문에 사회의 낙오자가 되어서는 않된다는 공포심 때문에 이 모든 자기 개발 행사는 불필요한 것이 된다. 그 결과 컴퓨터 키를 두드리는 데는 우수하나 고전 하나 읽어보지 못한 테크노크렛이 된다.

둘째는 대학마다 실시되고 있는 강의 평가제이다. 강의 평가제는 교수가 담당과목을 얼마나 잘 가르쳤느냐를 학생 입장에서 평가해서 그 담당 교수에게 피드백을 줌과 동시에 학생들이 앞으로 자기가 들을 과목을 선택할 때에 그 평가자료를 참고하겠다는 소비자적 입장에 기반을 둔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강의 평가제는 장점이 많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결코 무시해서는 않될 걱정 중 하나는 단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선생-학생간의 인간관계를 저해하는데 촉매제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북미같은 선생-학생간의 사무적인 관계에서는 적합할지는 모르나 우리나라 같이 가르치는 사람이 가르치는 교과목의 테두리를 넘어서 학생의 생활영역전반에 걸쳐 충고와 훈계를 아끼지 않는 풍토에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모델이라는 말이다.

물론 이 말은 강의 평가제를 없애버리라는 말보다는 어디까지나 신중하게 제한된 목적으로 쓰라는 말일 뿐이다.

셋째는 교육정책의 일관성의 결여이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교육에 관한 포부나 계획을 시험해보기도 전에 자리를 떠나고 새 사람이 들어서는 회전문 식의 인사행정에서 어떻게 일관성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겠는가.

일관성 있는 교육정책 기대

일관성있는 시책은 국가 차원뿐만 아니라 교수 사회, 대학 사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달성되기 위해서는 대학 내에서의 보직도 좀 더 오랜 기간 머무를 수 있도록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몸담고 있던 캐나다의 대학 학장 임기는 7년으로 2번을 연임할 수 있다. 14년이면 자기가 가진 교육적 포부를 시험해보고 싶은 것을 마음껏 소신대로 시험해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닌가.

이화여대로 적을 옮기고 달력을 바꾼지가 벌써 세 번이 되었다. 북미 대륙에서는 경험할래야 경험할 수 없는 따뜻한 교수-학생간의 관계를 맛본 지가 꼭 2년 5개월이 되었다는 말이다.

양의 차이가 있다한들 이처럼 클까, 진정 감격스런 경험이다. 이처럼 정성스런 학생들에 비해서 나의 반응은 극히 형식적일 때가 많으니 나는 정녕 선생으로서 정성이 모자라는 사람인가. 이처럼 좋은 교수-학생 관계에 흐뭇해 하다가도 이런 추세로 나간다면 언제고 일그러지고 말 것 같은 생각이 들면 나도 모르게 머리가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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