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14:25 (목)
[만파식적]여성성 지향하는 리더쉽 아쉬운 현실
[만파식적]여성성 지향하는 리더쉽 아쉬운 현실
  • 교수신문
  • 승인 2001.12.24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1-12-24 17:02:29

우연하게도 올해 나의 여성학 강의는 4학년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연스럽게 졸업을 앞둔 여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토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됐다. 먼저 배움을 통해 각 분야의 리더가 되기를 준비하는 그녀들의 열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토론이 여성 차별적 고용환경과 그로 인해 배가된 여성취업난에 이르렀을 땐 진지한 얼굴로 리더의 꿈을 이야기하던 그녀들의 해맑았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위해 치마를 입어야겠기에 다이어트 중이라는 이야기를 얼굴을 붉히며 말하던 화공과 여학생이 있었다. 또 자신의 삶에 대한 사색과 탐색을 위해 휴학을 한 결과 25세가 돼버려 취업 적령기를 놓진 상태에서 졸업을 하게 됐다는 사회학과 여학생도 있었다. 세계적 여성기업주가 어린시절부터의 꿈이기에 해외영업부 근무를 지원했다는 경영학과 여학생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전공 이외에도 독어와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건만 회사측이 자신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홍보부에 배치시킨 사실을 알고 절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여성인력에 대한 사회의 편견적 제재는 강단에서 강의를 하는 여선생으로부터 시작해 강의실에 앉아 있는 여학생에게까지 공동으로 적용되는 슬픈 현실이기에 강의실 분위기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여대생들의 이러한 성찰은 여성의 노동시장 입성 자체가 난항이며 그로 인해 여성의 지도자적 위상 달성이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게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전통적으로 리더쉽은 남성성의 일부인 듯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리더는 단체를 통솔하고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정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끌어 나간다’ 거나 ‘통솔한다’는 표현들은 우리로 하여금 권력구조를 연상하게 하며 그로 인해 리더쉽과 여성성의 괴리를 인도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전환된 21세기 노동시장의 구조는 기존과는 다른 형태의 리더를 필요로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입증하듯 최근 들어 서점에 새로운 리더에 대한 갈망을 담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과열된 매매 경쟁은 마치 이러한 책들이 리더가 되기 위한 손쉬운 테크닉을 가르쳐 주는 듯 광고하지만 이들이 공동으로 주창하는 사실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 될 수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일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일과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이가 리더로서의 자질을 가진 이로 새롭게 부상한다는 사실은 다시 한번 노동시장의 변화된 성격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된다. 21세기는 수동적이기보다 창조적인 사유구조를 지탱하며 정적이기보다 유연한 생산구조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이를 필요로 한다.

여성의 리더쉽에 관한 저서를 집필해 유명해진 미국언론인 헬게슨(Helgesen)은 21세기 정보사회는 더 이상 20세기의 이상형이었던 전투적 리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녀의 견해는 권력구조보다는 윤리적 사유체계가 직장 동료들간의 인간 관계를 좀 더 효율적으로 조율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 기존의 남성적 지배윤리보다 여성적 사랑윤리를 포용하는 이가 21세기 리더로서의 자질을 소유한다는 사실과 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오랜시간 남성적 입지를 공고히 해오던 리더신화가 상쇄되는 순간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여성들의 노동시장 입성이 난항이기를 멈추고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필연성으로 부각돼야 함을 인지하게 된다. 치마를 입고 인터뷰에 가기 위해 체중감량을 시도하며 건강미를 잃어야 하고, 무한한 가능성의 나이인 25세를 취업 비적령기라 간주하게 되는 여대생들의 현실은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과거지향적이며 가부장적인 행각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다. 여성적 유연함과 다양한 외국어실력을 겸비한 미래 경영인의 해외영업부 진출이 좌절된 현실도 같은 맥락에서 판단돼야 할 것이다. 노동시장이 처해있는 시대적 변화를 참작하지 않은 고용조건과 취업환경은 스스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자살행위임을 깨달아야 한다. 좀 더 많은 고용주들의 각성이 21세기 노동시장의 필요에 적절하게 부응하는 현실감으로 이어져 여성인력에 대한 편견적 제재가 사라지기를 기대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