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03:50 (토)
여성만의 시선이 아닌 더 넓은 문화제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여성만의 시선이 아닌 더 넓은 문화제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
  • 임찬 / 숭실대 미디어
  • 승인 2008.06.05 21: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0주년

여성운동의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에서도 여성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이 20%도 안 된다는 최근 여론조사가 시사하듯, 보통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려는 노력은 여성 운동이 대중적 공감을 얻기에는 정책적 오류의 반복과 대중의 정서와는 유리된 접근성의 한계를 보이곤 했다. 이러한 여성 운동 정체성한계는 끊임없이 진행형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다중 매체(mass media)에 의한 표현 양식의 다양한 감성 형태로 대중에게 접근하고 남성과의 공감대를 형성한 좋은 예가 1998년부터 시작된 미국 케이블 TV- HBO가 제작한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이다.

뉴욕의 성 칼럼 리스트이자 성 인류학자인 전문가 주인공 캐리, 홍보이사로 상류층의 삶을 영위 하며 프리섹스를 즐기며 남자이상의 왕성한 성욕을 소유한 사만다, 화랑 딜러로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샬롯, 냉소적이고 이성적인 변호사 미란다 등 각기 사랑이나 결혼 혹은 성관계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진 네 명의 30대 미혼 직장 여성들이 등장한다. 주인공인 캐리가 칼럼의 소재를 얻기 위해 3명의 개성이 강한 친구들의 일과 사랑, 남자와 섹스와 관련된 일상을 관찰하는 형식으로 전개 된다.

이 드라마는 사회적, 경제적 주체로의 여성성을 찾기 위한 페미니즘의 이론과 비평을 여성 스스로에서 찾으려는 점에 주목한다. 성매매, 낙태, 성차별 등에서 여성은 어쩌면 영원한 피해자로의 중요한 담론의 대상에서 벗어나, 패션이라는 지극히 아름다운 예술의 한 형태에 투영된 여성 중심적 관점에서 여성 스스로를 관찰하고, 남성과 동격인 인격체라 인지하며 보다 발전된 자아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현대 여성상을 네 명의 주인공의 시선으로 선보인다.
그녀들은 남성중심 사회의 부조리에 투쟁하는 전사가 아니다. 그녀들 주변에 이성들은-남성- 사회적, 경제적 주체로의 여성의 동반자로의 사회 구성원이며 성을 초월한 우정을 통한 상호 존중(mutual respect)에 관계 기반을 둔다는 점이 중요한다. 성은‘틀린 것’이 아닌‘다른 것’일 뿐 이다.

10회를 맞는 여성영화제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라고 이름을 바꾸고 4월 10일부터 18일까지 9일간 (사)서울국제여성영화제 주최로 신촌 아트레온 1, 3, 4, 5, 6관 (총 5개관)에서 열렸다.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 ‘See the World through Women’s Eyes‘는 문구로 10돌을 맞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여성의 시각으로 삶의 다양한 측면을 다룬 30개국 140편(장편 62편, 단편 78편)의 초청작을 상영했다. 홍지유, 한영희 감독이 <레즈비언 정치 도전기>로 옥랑문화상을 수상했으며, 여성신문상은 서정민 감독의 <인형계단>, 소피 슈컨스 감독의 <혹독한 나라의 엘리스>에게 돌아갔다. 특히 올해 신설된 '박남옥 영화상' 수상자로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임순례 감독이 선정돼  됐고, 임순례 감독은 "최초의 한국여성감독인 박남옥 선배가 있어 내가 영화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분에게 상금의 절반을 바치고, 나머지 절반은 후배 감독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여성영화제 기간 동안 아시아 단편경선에 출품된 243편의 작품 중 19편이 상영되었으며, 관객상은 <이미자 헤어살롱>, 우수상은 홍재희 감독의 <암사자들>, 박지연 감독의 <도시에서 그녀가 피할 수 없는 것들>에게 주어졌다. 박지완 감독의 <여고생이다>가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4월 10일 오후 국립중앙 박물관 극장 '용'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심사위원 리사 고닉, S. 루이자 웨이, 소피 린과 감독특별전에 초대받은 펑 샤오리엔 감독, 배우 쏭 루 후이, 독일 뉴저먼 시네마의 선두주자인 울리케 오팅거, 헬레나 트르제시티코바, 바바라 해머, 미셸 엘렌, 동경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오타케 요코 등 세계 각국을 대표하는 여성 영화인과 손님, 관객이 참석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10주년을 축하했다.

9일간 상영 기간 동안 관객점유율은 86%에 달했다.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여성영화제로 아시아와 세계를 잇는 여성영화인의 네트워크가 되도록 노력해 왔으며, 아시아 여성영화 인력 발굴과 여성영화 창작 지원을 해왔고, 문화생산의 주체이자 주제로서 새로운 여성문화 창출에 기여해 왔다고 밝히며, "앞으로는 그간의 여성영화를 모아 상영할 수 있는 아카이브 등을 목표로 하겠다."고 다짐하며 폐막 선언을 마무리했다. 내년 영화제의 상을 그린다면 이란 질문에는"영화제를 진행하면서 내년을 고민하는 게 우리의 특징이다. 여성주의에 대한 보수적 반동들이 있기도 하고, '이제 많이 평등해지지 않았나.'며 여성주의가 필요 없다는 식의 축소 조짐도 보인다. 그러나 여성영화제는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단합하는 장이고, 축제로서 각성의 장으로서 기능하는 장이다." 라고 내년을 기약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제작된 여성감독 영화들 중에서 진지한 여성의 시선을 영상 언어로 하는 영화를 상영하는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여성 국제 영화제는 여성주의 시각에 공감하는 문화예술단체인 여성문화예술기획이 주최하는 영화제다. 세계 각국의 프로그래머들이 작품을 고르고, 출품한 감독들도 초청하여 질의응답 시간을 통한 세계 여성영화에 대해 논의를 벌인다. 세계 영화제에서 비평적, 대중적으로 호평을 받고 아직 국내에 공개되지 않은 작품 역시 상영 리스트에 올려놓은 참신한 기획이 돋보인다.

특히, 개막작으로 관객과 만나는 옴니버스 영화 '텐 텐'에는 대중과 낯익은 소설가 박완서 씨와 일제 위안부 피해자 이 용수 할머니가  ‘낯은 목소리’, ‘밀애’등을 연출한 변 영주 감독의 작품 '20세기를 기억하는 슬기롭고 지혜로운 방법'에 출현해 자신의 삶과 소설에 관한 이야기, 젊은 창작자들에 대한 조언 등을 들려준다. 실제 종군 위안부로 일했던 할머니도 영화에 진실성을 더 해준다. 또한, 그동안 선구적인 서구 여성감독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주력해왔던 영화제는 중국 최초의 여성 영화라 평가받는 펑샤오롄의 '세 여자 이야기'와 올해도 '퀴어 레인보우 섹션'을 통해 동성애 등의 성적소수자의 문제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더욱이 특이할 만한 프로그래밍은 '오픈 시네마'섹션을 통한 남성 감독의 시선이 신선하다. 영화제 측은 "생물학적 성애 구애 받지 않은 사람들과 여성영화제가 앞으로 함께 행진한다는 의미"란 설명을 한다. 하지만, 영화제 이름만큼이나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라는 다소 전투적(?) 슬로건을 내건 영화제는 여성을 위한 축제인 듯하다. 문화를 즐기는 중간에 영상의 기억을 다독이는 사색의 공간이기엔 10년의 관록은 너무 빼곡한 상영일정에 분주해만 보여 안쓰럽다. 여성만이, 여성이기에 반드시 참여해야 할 것 같기에 마치 이성의 접근을 사양하는 인상은 남성인 저자만이 느끼는 자격지심인가? 정책이 주도하는 여성이 시선이 아닌 이성과 더불어, 가족과 함께, 사회와 문화와 천천히 거닐 수 있는 영화제가 아닌 더 넓은 문화제로의  역할을 기대하고 싶다. 

국내에는  아쉽게도, 지혜로우며 당당한 동시에 여성으로의 아름다움을 남성과 함께한‘섹스 앤 더 시티’는 없고 마놀로 블라닉과 브런치만 남아있는 듯하다. 드라마 주인공의 분신인 '케리' 목걸이는 철자도 변치 않은 채 수 많은 우리 젊은 여성에 똑 같은 영어 이름을 자랑스레 부쳐주었고, 유행을 주도하는 거리들에서는 늦은 저녁시간에도 '브런치'란 이름의 메뉴가 등장했다. 국내의 한 케이블방송국에서는 HBO 제작진이나 관계자가 전무한 상황에서 '패셔니스타'만 참관한 정체불명의 시즌 런칭 파티를 주관하기도 했다. 국제 여성 영화제 여성스런 자동차를 경품으로 걸고, 기념품 코너에까지 여성스러운 색상 일관에  한껏 웃는 여성의 형상을 새겨 넣어 강조한 이유는 ‘여성의 시선으로 세계를 보기’위함일까? 여성과 함께 봤으면 한다. 모르겠으면 어떠하랴? 물어보면 될 일을..

남성은 여성이 느끼는 모든 감정에 도달하는데 분명 한계가 있고 그 반대 입장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성적 상호 이해와 영화로 대변되는 시각 예술이라는 무한한  매체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의사소통의 영상언어는 남녀의 아름다운 본능임을 부인할 수 없다. 남성이 페미니즘 문화를 내면화하여 완벽한 이해를 통한 여성과의 공감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섹스 앤 더 시티’를 즐기고 나름대로 감동 받아 소화한 남성이 사회 경제의 동반자적 주체로의 여성 편에 서지 못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 보인다. 옳고 그른 게 아니라 단지 다를 뿐이다.

임찬/숭실대 미디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