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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鍾’은 ‘소리의 정치학’의 산물이었을까
‘神鍾’은 ‘소리의 정치학’의 산물이었을까
  • 배원정 기자
  • 승인 2008.06.02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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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확대] 說話로 접근한‘성덕대왕신종’의 비밀

에밀레종 설화를 연구 실마리 삼아 성덕대왕신종의 탄생 배경 및 신라 중대왕실의 이데올로기 등을 파헤친 연구서가 출간됐다. 저자는 성낙주 씨(서울 중계중학교 교사). 2006년부터 발표한 논문 4편과 그간 축적해 온 연구 성과들을 보강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개마고원, 1999)의 뒤를 잇는 두 번째 연구서로, 제목은 『에밀레종의 비밀』(푸른역사, 2008)이다. 저자는 책에서 에밀레종 제작에 얽힌 설화는 신라 중대 왕실과 외척간의 권력투쟁을 반영한 것이고, 그 독특한 용머리와 용종 장식은 문무왕과 만파식적 설화를 반영한 것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당연히 모든 논의의 쟁점은 에밀레종 설화와 만파식적 설화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신라 장인이 종의 꼭대기로 밀어올린 원통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활짝 핀 연꽃이 종체 표면위 4개의 꽃집(유곽) 안에 9개씩 납작하게 부조돼 있다.

저자는 설화와 실제 역사 속 왕실의 가계도가 비슷한 형태로 그려진다면 스토리가 가공의 산물이 아니라, 막연한 추정을 넘어선 확신을 얻어낼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설화의 신빙성을 입증하기 위해 모은 자료들은 경주권 및 여타 지역에 떠돌던 여러 유형들을 채록한 것이다. 이 자료들은 일문과 한글로 소개된 것들로, 저자는 대략 1926년부터 1993년까지의 15개 자료를 제시했다. 그는 신종의 명문과 삼국유사 등의 기록을 통해 설화와 역사 속 실제 인물들을 대입했다. 설화 속에 등장하는 ‘부재한 아버지’는 사망한 경덕왕이고, ‘제물로 바쳐진 아이’는 부왕을 여의고 만월부인 슬하에 있는 혜공왕이며, ‘과부 어미’는 경덕왕 없이 혜공왕을 키우는 만월부인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오라비’는 만월부인의 오빠 김옹으로, 신종의 명문에 적혀있는 당대 최고의 권력자란 분석이다.

 즉 전설은 문맥 그대로의 실화가 아니며, 신라 혜공왕 대를 장식한 권력암투 과정의 어떤 원형적 사건을 문학이란 장치를 빌려 재가공한, ‘정치고발 설화’라는 게 요지다. 무엇보다 설화에 등장하는 ‘사촌’은 선덕왕 김양상이란 주장을 펼치고 있다. 김양상이 혜공왕을 죽이고 중대왕실을 붕괴시킨 ‘주범’이라는 국사학계의 오랜 정설을 반박하며, 그를 오히려 혜공왕을 지켜내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죽은 인물로 봐야한다는 것.

최응천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은 “그런 식의 설화는 비단 성덕대왕신종 뿐 아니라 다른 공예품에서도 빈번히 등장하는 모연설화와 같은 것으로, 어떠한 사료나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내용을 근거로 성덕대왕신종의 기원을 파악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지적한다. 또 문명대 교수(동국대·한국미술사연구소장)는 “『삼국유사』와 조선말 발간된 『東京雜記』에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글이 자세히 서술돼 있지만, 에밀레종 전설에 대해선 기록된 바가 없다”며, “일제시대 이전에 어떤 문집과 문헌에서도 단 한차례 언급된 예가 없는데 어떻게 연구의 절대적인 잣대가 될 수 있겠느냐고”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설화의 전승과정에서 왜곡 가능성은 제기할 수 있지만 문학으로서 탄탄한 구조를 갖추고 있는 설화 역시 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제재라며, 신화학에 주목하지 않고 사료 자체만 갖고 연구 성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저자는 성덕대왕신종의 양식적 분석도 함께 시도하고 있다. 용의 맨 위에 달려있는 원관은 대나무 마디를 표현한 것인데, 이것은 ‘소리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만파식적설을 상징한다는 주장이다. 이 ‘소리의 정치학’은 통일 국가를 이룩한 신라에서 화합과 평화의 시대를 열어간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기존의 중국 종들이 다리가 넷 달린 쌍룡뉴를 배치한 것과 달리, 에밀레종은 두 다리만 달린 용을 형상화했는데, 이것은 문무왕을 가리킨다. 문무왕이 소리로써 세상을 다스리고자 한 포부를 드러냈을 때, 신라인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그 소리를 세상에 퍼뜨릴 방법을 고민해, 범종과 결합시켰다는 논리다.

성낙주 씨의 이번 연구 성과가 학계의 연구에 지평을 열어 참신한 연구들이 시도되는 계기가 될 것인지, 문화유산의 열정이 상상력과 만나 증폭된 개인의 인의 신라미술 읽기로 끝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배원정 기자 wjba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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