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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내진설계 취약한 ‘무방비 도시’ … ‘안전판’ 없다
핵발전소 내진설계 취약한 ‘무방비 도시’ … ‘안전판’ 없다
  • 박상주 기자
  • 승인 2008.06.02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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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우리는 안전한가

석가탄신일이던 5월 12일 중국 현지시각 오후 2시 28분. 중국 쓰촨(四川)성 티베트자치주 성도, 청두(成都)시 북서쪽 92km 지점. 아비장족, 강족 자치구가 있는 인구 11만 명의 작은 마을 원촨(汶川)현. 북위 31도2분1초 동경 103도36분7초, 깊이 16km(USGS발표 19km)에서 마그니튜드 7.9의 강진이 발생했다.

지난달 30일까지 중국 당국이 공식 집계한 지진 피해 사망자수는 6만8천516명, 실종자는 1만9천350명이다. 다친 사람은 36만4천552명, 재산피해를 입은 사람은 4천561만명, 대피 난민은 1천500만명에 달한다. 지금까지 병원에 입원한 생존자는 8만5천722명, 이 중 5만5천514명이 퇴원하고 나머지는 곳곳에 분산돼 치료를 받고 있다. 

인근 베이촨(北川)현 전체 건물 80%가 붕괴됐고, 두장옌시 한 중학교 건물이 내려앉아 수업을 받던 학생들 900명이 매몰됐다. 얀샨현에서는 전체 건물의 85%가 붕괴됐다. 지난달 27일 오후 4시12분부터는 90여 분 간 7차례 여진이 또 이어졌다. 여진만으로 가장 강력한 것이 마그니튜드 5.7에 달했다.

이번 강진은 중국 10여개 성은 물론, 베트남과 태국, 대만, 파키스탄에서 진동이 감지됐다. 일본 기상청은 이번 강진의 영향을 ‘장주기지진동’에 ‘천발지진’이라고 밝혔다. 장주기지진동은 지진의 흔들림을 왕복하는 시간이 긴 것으로 주로 고층건물을 무너뜨린다. 천발지진은 지표면에서 비교적 얕은 지점에서 진원이 시작돼 일상에 큰 피해를 준다. 지진의 규모뿐 아니라 그 특성이 대참사를 불렀다.과연, 동일한 지진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어느만큼 안전할까.원자력발전소의 내진설계는 믿을만 한가.


□ 지진원인, 판구조론=1912년 독일 지질학자 알프레드 베게너는 “지구는 맨틀 위를 떠다니는 거대한 암석층인 지각판으로 이뤄져 있는데, 이 판(板, plate)은 유라시아판, 태평양판, 북미판, 필리핀판, 아프리카판 등 15개로 나눠져 있다”는 ‘판구조론’을 주장했다.

지진은 두 판이 맞닿아 있는 곳에서 판들이 갑작스럽게 확장하거나 충돌하면서 발생한다. 한국은 유라시아·태평양판 경계부에서 수백㎞ 떨어져 있는 판 중앙에 위치해 있어,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편이다. 일본은 유라시아-태평양판 사이에 있다. 중국은 유라시아판 위에 있고 필리핀판과 인접해 있다. 일본과 함께 판의 경계에 위치한 국가는 터키와 그리스로 대표적인 지진 위험국가다.

이와 달리, 판위에서도 강진이 발생하기도 한다. 판 내부 에너지가 오랜 기간 쌓였다가 분출하면서 강진이 발생하는데 중국 탕산 대지진이 적절한 예가 된다. 1976년 7월 28일 새벽 3시에 중국 허베이(河北)성 탕산에서 발생한 마그니튜드 7.8의 대지진이었다. 당시 중국 당국은 14~16초 사이에 일어난 1회 지진으로 24만 명이 사망했고 16만 명이 부상했다고 집계했다.

지진계에 기록이 돼도 마그니튜드 2.5미만이면 사람은 지진을 느끼지 못한다. 창문이 조금 흔들리는 정도가 ‘경진’으로 3.5정도, 건물이 요동치고 꽃병이 넘어져 사람들이 건물에서 뛰쳐나오는 정도는 ‘중진’으로 5.0정도다. ‘강진’은 6.0으로 벽에 금이 가고 비석이 쓰러져 사람들이 공포감을 느끼게 되고, 7.0의 ‘열진’이면 산사태가 일어나고 건물의 30%가 파괴되고 사람이 걸을 수 없다. 전문가들은 8.0내외의 ‘격진’상황이 오면 단층현상이 일어나고 건물이 완파돼 사람들은 대공황 사태를 겪는다고 말한다.

□ 한국지진기록=한국에서 최근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지진은 1978년 10월 ‘홍성지진’이다. 마그니튜드 5.0 규모로 건물 118동이 부서지고 1천여 개의 건물에 균열이 생겼다. 다행히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2명이 다치고 3억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군사기지와 학교 운동장에서 지반균열이 발견됐다.

1936년 7월 4일 발생한 쌍계사 지진은 마그니튜드 5.0으로 쌍계사 주변 산사태와 낙석, 도로붕괴, 민가 완파 및 반파의 피해를 입혔다. 쌍계사 경내 산문이 기울어져 지붕과 벽이 부서졌고, 경내 돌탑이 붕괴되고 오층석탑의 석두가 추락했다. 이 지진은 쌍계사 외 충청, 전라, 경상도에서도 감지됐다.
1996년 12월 13일 발생한 영월지진은 마그니튜드 4.5로 공공건물의 벽체가 균열되고 기와와 슬레이트가 땅으로 떨어졌다. 도로변과 산에 낙석이 발겨됐고 하천 자갈층이 무너져 내렸다. 규모는 작았지만 남한 전체에서 진동이 감지됐다.

‘고건축물 실험결과 및 20세기 지진분석을 통한 역사지진 피해기록의 재평가’(서정문)에 따르면, 한국의 지진 기록은 서기 27년부터다. 27년 “땅이 흔들려 집이 기울고 넘어졌다”는 기록이 있다. 89년에는 “지진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다”는 기록이, 100년에는 “경주가 진앙지”라는 기록이 남았다.

특히 숙종 7년이던 1681년에는 여러 차례의 지진기록이 발견된다. 조선왕조실록의 지진 기록에 따르면 “강원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는데, 양양에서는 바닷물이 요동치고 설악산 신흥사 및 계조굴의 거암이 모두 붕괴됐으며 삼척 두타산, 평창, 정선 산에서도 암석이 추락하는 변괴가 있는 등 강릉·양양·삼척·울진·평해·정선 등 고을에서 거의 10여 차례나 지동(地動)하였고 8道에서 모두 지진이 일어났다”고 적혀 있다.

규모가 확인된 최대지진은 1978년 속리산 지진으로 마그니튜드 5.2를 기록했다. 5.0이상의 지진은 지금까지 5건이 발생했다. 한국은 년 평균 25회, 1978년 이후로 마그니튜드 4~6미만의 지진이 36회 발생했다.

□ 건물, 법이 내진설계 방해=국토해양부(국토부)는 중국 지진 직후 지난달 13일, “한국은 지진에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내진대책을 차질 없이 추진 중”이라면서 “주요 국가시설물은 평균 6.0이하 지진을 견딜 수 있도록 내진설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한국은 미국 건축 기준 지진구역 분류 5등급(1, 2A, 2B, 3, 4) 중 최하 등급인 1에 속한다. 지진위험이 높은 일본 고배는 4등급으로 한국은 그만큼 지진위험이 낮다는 걸 의미한다.

국토부가 밝힌 규모 6.0의 내진설계 기준은 1978년 발생한 속리산 지진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속리산 지진은 한국에서 발생한 지진 중 최대 규모 5.2를 기록했다. 국토부는 “79년 댐(5.4∼6.2), 85년 터널(5.7∼6.3), 88년 건축물(5.5∼6.5), 92년 교량(5.7∼6.3), 2000년 항만시설(5.7∼6.3), 2004년 공항(5.5∼6.0) 등에 대한 내진설계가 의무화됐다”면서 “내진설계가 반영되지 않은 국가 주요 시설물은 단계적으로 내진보강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축법에 따르면 2005년 7월 이후 지어진 ‘3층 이상 1000㎡이상’ 건축물은 내진설계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고, 정부는 리모델링이나 재건축 때도 내진보강 후 건설 사업을 진행토록 유도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88년 이전 지어진 건물은 내진 설계가 미흡하지만, 대부분 4.0정도는 견딜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매년 4.0 이상 지진이 평균 1.3회 가량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면 위험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21일, “서울시내 건물 절반가량이 내진 설계가 되어있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말 내진설계 적용대상인 64만4천235개 건물을 대상으로 내진설계 기준이 반영됐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전체의 48.5%(31만2천631개)의 건물이 내진설계가 안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교량 550개소 가운데 내진설계가 된 것은 37개(6.7%)에 불과했고 도시철도 시설물 566개소에서도 4개(0.7%)만이 내진 설계가 된 것으로 조사됐다.

건물 내진설계는 구조공학적인 설계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건축 쪽 지진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가 설계와 감리를 수행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막혀있다. 건축법상 건축 관련 설계는 건축사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홍근 서울대 교수(건축학)는 “내진 비전문가인 건축사가 내진설계를 해 내진설계 성공유무를 확인하기 어렵다. 건축허가 과정에도 내진설계여부에 대한 점검이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국토부는 건설공사기준 정비계획을 확정해 올 연말까지 선진국의 내진기술 등을 반영한 건축구조 설계기준을 개정키로 했다.

□ 서울지하철, 1~8호선 시설 대부분 ‘불안’=서울메트로가 실시한 지진 예비평가 결과, 서울 지하철 1~4호선이 다니는 철교와 고가교량, 역사 등 전체 917개 시설물 중 92%(844개)가 지진에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6개 철교 중 당산철교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철교(잠실, 동호, 동작, 대림, 장안)가 지진에 취약했다. 또 뚝섬, 성수, 당산, 상계, 노원역 등 15개 역사 건물도 내진보강이 시급한 상황으로 나타났다. 2호선 한양대~잠실구간과 신림~신도림구간, 3호선 지축~구파발구간, 4호선 당고개~창동구간 138개 고가교량은 지진발생시 큰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서울도시철도 예비평가 결과, 서울지하철 5~8호선이 경유하는 전체 632개 시설물 중 70%(443개)가 내진보강이 시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취약시설에는 여의도역, 서대문역 등 17개 역사도 포함돼 있다.
지하철 관계자는 “지하철 1~4호선은 74년~94년 사이, 5~8호선은 95년~2000년 사이에 개통됐지만 지하철관련 내진설계가 2005년부터 의무화돼 지진에 취약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진 취약 시설물에 대한 내진보강을 2010년 이후에 실시할 계획이다.

□ 학교, 대부분 내진설계 미비=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달 21일, “지난해 8월 1일 실시한 지진 안전도 조사에 따르면 1000㎡ 이상, 3층 이상 초·중·고교 건물 총 1만7천734동 가운데 내진설계가 돼 있는 건물은 2천429동으로 전체의 13.7%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건축구조는 전체 조사 대상의 96.4%(1만7천095동)가 철근콘크리트조, 2.5%(441동)가 철골조, 0.9%(164동)가 철근철골조, 0.14%(24동)가 경량 철골조 건물로 파악됐다.

교과부가 지난 3월 실시한 재난 위험도 진단에 따르면, 국내 전체 초·중·고교, 특수학교, 교육기관 등이 보유한 교육시설물 6만8천405동 중 0.17%인 119동이 ‘재난위험시설’인 ‘D, E급’을 받았으며 1.61%인 1천102동이 ‘중점관리대상’인 ‘C급’을 받았다. D, E급 판정을 받은 건물은 초등학교 38동, 중학교 29동, 고등학교 50동이며, C급을 받은 건물은 초등학교 405동, 중학교 176동, 고등학교 477동이었다.

□ 원자력발전소, 지진대책 어떤가=환경운동연합은 지난달 16일, “한국에 지진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한 원자력 발전소 대책에 구멍이 뚫려있다”고 경고했다.

환경운동연합은 “2004년 5월 29일 울진핵발전소에서 10km 떨어진 곳에서 규모 5.2에 달하는 지진이 발생했지만 다행히 안전에는 이상이 없었다”면서 “그러나 당시 은영수 원자력안전기술원장이 ‘세계적으로 지진에 의해 원전의 안전에 피해가 보고된 바는 없다’며 지진으로 인한 핵발전소 안전에 대해 확신한 것은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논평했다.

환경운동연합은 △2007년 7월 16일 일본 니가타현에서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가시와자키 가리와 핵발전소에서는 보관 중이던 핵폐기물이 쏟아지고 화재가 발생, 결국 방사성 물질이 누출된 사고 △2002년 국정 감사에서 울진핵발전소 3, 4호기가 화재 등 비상시 방사성물질 누출을 막는 밀폐재에 불량제품을 썼던 점 △중국 지진에서 문제가 된 학교 건물 붕괴도 중국산 불량철근이 문제라는 점 △한국 핵발전소 내진설계 기준이 일본 보다 낮을 뿐만 아니라 대형병원이나 변전소 기준보다 낮다는 점 등을 들어 지진에 대한 원자력발전소 안전 대책을 촉구했다.

환경운동연합은 “현재 가동 중인 4개의 월성 핵발전소, 신규 건설 중인 두 개의 신월성 핵발전소와 중저준위 핵폐기장이 있는 경주 인근의 월성은 읍천 단층 등 잠재적인 지진 발생 가능성이 높은 활성단층이 다수 분포 되어 있다”면서 “중저준위 핵폐기장은 지질안전 조사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신월성 1, 2호기는 지질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5년 5개월이나 건설허가가 미뤄졌지만 내진설계 상향 조정 없이 건설되고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허정원 전남대 교수(건설환경공학)등이 쓴 ‘원전격납구조물의 지진취약도 분석을 통한 강진지속시간의 영향평가(한국지진공학회, 2007)’에 따르면, “울진 원자력발전소 3&4호기 격납구조물은 적절한 내진설계가 이뤄진 것으로 판단”되지만, “강진이 7~15초 사이로 지속될 경우 지진위험도가 증가, 원전구조물의 특성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 상황이 된다”면서 “지진위험성에 대한 불확실성 감소를 위해 강진지속시간에 대한 국내 결정기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가동 중인 핵발전소 가운데 8기와 건설 중인 4기가 부산, 울산, 경주 등 대도시 인근에 위치해 있어 대규모 위험을 가진 상황이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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