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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利로서 仁義禮智 사상을 펼치다
公利로서 仁義禮智 사상을 펼치다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8.06.02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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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유가철학 연구서들의 ‘현대적 해석’

‘맹자는 진정한 보수주의자’, ‘유학, 우리 삶의 철학’, ‘논어는 진보다’… 최근 유가 철학 연구서들이 달고 나온 제목들이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주장 이래 유가 철학의 가치를 현재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색다른 유학 바람이 불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화두는 수양론 중에서도 ‘조화로운 삶’이다. 인간 優性의 법칙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폐기처분되다시피 했던 유가 철학이었지만, 최근 연구서들은 모든 인간이 지향해야할 덕목으로 삼던 ‘優性’, 즉 조화롭고 공동체적 삶을 추구하는 수양론의 내용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봉건주의의 선봉대’라는 이데올로기를 벗겨내고, 오늘날 잃어버린 인본 원리의 부활을 유가 철학으로부터 찾고 있는 것이다.

‘공자의 죽음’이 부른 공자의 부활

『논어는 진보다』(박민영 지음, 포럼, 2008)의 저자는 “유교의 시대는 이제 갔다. 그리고 그 점이 오히려 공자를 기존의 도그마에서 해방시켜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단언한다. 이전까지 유교를 말하는 것은 곧 ‘봉건제 보수주의’에 대한 옹호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종이를 둘둘 말아 10년을 두었다가 평평하게 펼쳐 놓으려면 다시 뒤집어 말았다가 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처럼, 죽음까지 맞이했던 공자를 지금 이 시기 우리는 보다 맑은 눈으로 대면할 수 있다.

문화평론가인 『논어는 진보다』의 저자가 보수주의의 전형이었던 공자를 진보의 반열에 올려놓은 이유는 ‘지도층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 『논어』의 내용이다. 저자는 종법제와 분봉제의 질서를 가졌던 周대의 정치질서로 돌아가려했다는 이유로 공자가 ‘보수주의자’ 혐의를 받는 것에 대해 반박한다. “공자가 되돌리려고 했던 것은 주나라의 왕권이 아니라, ‘德治’”라는 것이 반론의 이유다. 덕치를 공자의 핵심 정치사상으로 포착한 저자는 오히려 “애민사상을 처음으로 주장했고, 백성이 없으면 군주도 없다는 것을 일깨워준 민주주의의 선각자”로 공자를 재규정 한다.

공자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저자가 오늘날 공자를 부활시키고자 하는 이유다. “오늘날 더욱 강고해지는 메트로폴리스 환경 속에서 잦은 이동과 교류, 지역 공동체의 붕괴, 기술문명으로 인한 정서의 파편화가 우리를 감싸”고 있기에 공자의 덕치란 “세월이 지난다고 해서 빛을 바래기는커녕 더욱 절실해”진다며, 저자는 공자를 오늘날에 요청한다. 땅에 떨어진 인간적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仁의 사상의 필요성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남존여비의 사상을 퍼뜨린 장본인이 아니라는 변론까지는 동의하지 못하더라도, 가족과 소규모 집단의 사익이 아닌 공리로서 仁義禮智 사상을 번역해내려는 시도의 정당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이혜경 지음, 그린비, 2008)은 유가 철학을 ‘보수주의’ 편에 세운다는 점에서 『논어는 진보다』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지만, 마찬가지로 仁義禮智 사상이 오늘날에 갖는 적실성을 말한다. 저자가 보기에 전통을 존중하고 개인주의를 반대하면서 가족과 지역공동체를 중시하는 맹자는 현대적 맥락에서 보수주의의 맥락에 있는 사상가다. 동아시아 근대사상, 그것도 자신이 말하고 있듯 “전통 비판을 주업으로 삼고 있던” 저자가 맹자를 주목하는 이유는 ‘진정한’ 보수주의의 면모를 발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뿐만 아니라 인간이 경계해야 할 덕목으로 ‘이로움’을 꼽는 맹자의 보수주의는 “지킬 것이 많아 변화를 원치 않는” 오늘날의 보수주의와 엄연히 다르다.

진짜 보수의 요건은 惻隱之心

유가 철학의 옹호가 자칫 개인의 수양일반론, 도덕제일론으로 빠질 수 있는데 반해, 『맹자,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길』은 惻隱之心이라는 개념으로 유가 철학의 정치철학적 원리를 도출한다. 저자가 맹자를 빌어 강조하는 최고 덕목은 惻隱之心이다. 그 마음은 이로움을 경계한 개인의 理想을 곧 세상의 理想과 같은 것으로 연결한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이 커지면 세상과 나 사이의 경계가 없어지고, 종국에 세상 모든 고통이 내 고통으로 전환되는 원리를 갖기 때문이다. 측은지심을 수양하는 과정 또한 개인은 세상과 맺어진다. 그것은 혼자서 저절로 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의 만남 속에서 仁義禮智라는 덕으로 자라날 수 있다.

정치와 개인을 분리해 결국 정치 속에 인간을 찾아볼 수 없는 오늘날 맹자의 왕도정치는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운다. 이것이야 말로 진보를 지향하는 저자가 보수주의자 맹자를 되돌아보는 이유다. 저자인 이혜경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연구원은 “오늘날 보수주의라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인간다운 삶’이나 ‘조화로운 공동체’ 등 좋은 삶의 청사진을 제시해줘야 한다”며 맹자를 말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조화로운 삶’에 대한 유가 철학이 무조건적인 전체주의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이기주의를 위한 변명』(김시천 지음, 2006, 웅진지식하우스)은 동양학에서 이기주의를 발견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선다. 동양에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사회악적인 개념으로 사용돼 왔다. 하지만 저자인 김시천 호서대 연구교수는 개인의 발견과 개인의 완성을 통해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동양사상의 원리를 건져 올린다.

중국 전국시대에 ‘나를 위해 산다’고 떠들어대는 철학자 양주. 강력한 국가권력의 시대에 개인의 존엄을 대변하는 이 말은 이후 ‘爲我논쟁’으로 발전된다. 맹자는 이를 향해 ‘남을 위해 희생할 줄 모르는 파렴치한 인간’이라 주장하며 가치 없는 것으로 규정했지만, 『한비자』, 『여씨춘추』 등은 爲我를 자신의 행복을 생각하는 틀에서 사회의 행복을 도모할 수 있는 주장이라 여긴다. 이보다 앞서 공자는 ‘자신을 위해 학문을 하라’는 爲己之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사리사욕을 강조하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이끄는 힘이다.

진정한 독해가 되려면

오늘날의 보수주의, 오늘날의 지배계층, 오늘날의 이기주의를 겨냥하는 이런 연구서들은 이데올로기로 덧씌워져 평가절하 된 유가철학의 의미를 복원하지만, 동양적 사상을 무비판적으로 추앙하는 것도 아니다. 현재에 한 발을 딛고 그 쓰임새에 대해 말하는 사회철학적 성격을 담지한다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김시천 호서대 연구교수(동양철학)는 “과거의 유가 철학 연구가 철학적 깊이에 중점을 뒀다면, 최근의 연구들은 현실에 대한 구체적 적용까지 나아가는 이중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仁義禮智의 본래적 작동 방식에 초점을 맞춘 이들 연구들이 진정한 의미의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시도’에 그치고 있는 만큼 우려의 시선과 남은 과제들도 적지 않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는 “유가 철학 연구가 과거 시대에 머무른 해석을 벗어나 진전하고 있다”면서도, “고대에서 일부 주장만 따다와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우려를 나타낸다. 서양철학에 기대 유학의 일부 개념들을 빌려오는 독해가 아니라, 유가 철학의 상상력을 본래의 맥락에 맞게 살릴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철학)는 “오늘의 입장에서 보는 참신한 해석들이 더욱 더 다양하고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많은 해석들 속에서 논리적 엄밀성과 장단점이 다시 충돌되고 보완돼야 한다”고 말한다. 유가 철학에 대해 진보든 보수든 새로운 해석이 등장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두 명의 공자가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김시천 교수는 “고전 자체에 기반을 가지고 철학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당부를 전한다.

유가 철학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서양근대사상의 한계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그러나 사리사욕에 입각한 지배질서가 난무하는 오늘날 이들이 강조하는 ‘조화로운 삶’이 던져주는 의미는 반드시 새겨볼 일이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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