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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정치는 과학의 정치화 초래”
“과학정치는 과학의 정치화 초래”
  • 박상주 기자
  • 승인 2008.05.26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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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과학기술, 같거나 혹은 다르거나

정책이나 사회적 논란을 판단할 때 ‘과학’은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과학적으로 증명됐다”는 술어나 “과학자들의 논문에 따르면”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주장은 격한 논쟁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과학기술은 합리적 이성을 상징하고, 그 논증 과정은 바늘구멍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조밀해 좀처럼 반격이 어렵다.

과학기술은 그러나, 여러 가지 ‘과학기술’들이 있어 선택가능하고, 과학자는 의도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낼 수도 있다. “과학에는 조국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는 말처럼, 과학자가 달을 가리키면 과학자의 손가락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논문조작으로 논란이 됐던 황우석 박사 사건은 한국 정치과학의 전형을 보여줬다. 2006년 12월 서울대에서 열린 ‘STS(과학기술학)가 본 황우석 사태’ 학술대회는 황 박사 사건을 “과학동맹과 과학정치가 드러난 총체적 사건”으로 봤다. 서이종 서울대 교수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과학정치’적 시각을 들어, 과학정치란 과학 정책결정과정에서 출발해 점차 과학내부의 정치·언론·시민단체와의 소통 등 다양한 정치과정을 내포한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과학정치는 과학의 정치화를 낳고, 과학정치 없는 과학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 모든 과학자는 어떤 형태로든 과학‘권력’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즈> 과학전문기자 월리엄 브로드는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미래M&B, 2007)에서 “정치 이데올로기는 정당성을 찾기 위해 과학, 특히 생물학에 의존할 때가 많다. 보수주의자는 자유방임정책을 고수하기 위해 다윈의 적자생존론을 지지하고, 급진주의자나 자유주의자는 다윈의 경쟁자 라마르크의 이론에 따라 획득형질유전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브로드는 오스트리아 생물학자 ‘파울 카머러와 산파두꺼비’ 사건을 정치가 과학을 변조시킨 사례로 꼽았다.
러시아의 급진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카머러를 라마르크 이론 실험가로 규정, 비난하기 시작했다. 결국 카머러의 실험은 실험조수의 변조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애초 라마르크 이론에 무심했던 카머러는 정치적인 시비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끝냈다.

러시아 생물학자 트로핌 데니소비치 리센코는 ‘겨울밀을 물에 담궜다가 냉각시켜 늦봄에 씨를 뿌려 더 많은 수확을 거둔다’는 증명되지 않은 ‘춘화현상’을 발표, 구 소련당국으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리센코 주장을 일축했지만, 소련 정부는 가시적인 효과를 보인 리센코 이론을 받아들였다.

정부가 리센코를 밀자 소련 생물학계는 논쟁에서 빠지거나 열렬한 리센코 지지로 돌아섰다. 이에 더해 정부는 당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부르주아 전문가’로 정의, 이들을 척결했다. 리센코는 자신에 반대하는 강경한 유전학계를 공격하고 유약했던 식물학계를 포섭했다.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가 리센코를 끌어내릴 때까지 소련의 생물학계는 몰락을 거듭했다.

하인리히 찬클 카이저스라우테른대 교수는 『노벨상 스캔들』(랜덤하우스, 2007)에서 나치에 적극적으로 부역한 필리프 레나르트와 요하네스 슈타르크를 예로 들어 정치과학의 전형을 설명했다. 반유대주의자 레나르트는 1929년 자신의 책 『위대한 자연과학자』에서 “위대한 과학적 업적은 오직 아리아계 게르만 혈통에서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애썼다. 레나르트는 또 유대계 물리학을 대비시켜 상대성이론 추종자들을 싸잡아 평가절하했다. 레나르트의 제자 슈타르크는 베르너 하이젠베르크가 뮌헨대 교수에 취임하려하자 “과학계의 백색 유대인, 정신적 유대인” 등의 비난을 퍼부으며 임용을 방해했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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