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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적 부채의식 넘어 책임의 실천 필요”…피해자 역할도 비판
“감정적 부채의식 넘어 책임의 실천 필요”…피해자 역할도 비판
  • 김현선 일본통신원
  • 승인 2001.1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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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24 16:26:52
홀로코스트와 가스실을 부정하는 독일사람들, 위안부와 난킹 대학살을 부정하는 일본사람들은 자신을 가리켜 ‘역사수정주의자’라고 부른다. 자신의 현대사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갖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직접적인 가해자,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기억과 증언이 존중받지 못하는 망각의 정치가 이뤄지는 일본.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이 늘어놓는 역사에 대한 주장을 검증하고 냉정하게 비판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타카하시 테츠야 교수의 ‘역사, 수정주의’라는 책은 역사 수정주의에 대한 논박의 작업으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역사수정주의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범죄자 의식에서 해방되고 국민전체의 명예회복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은 이렇게 주장한다. “전후의 역사교육은 일본인이 가져야 할 문화와 전통을 잊고 일본인의 자긍심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근현대사에서 우리 일본인은 자손 만대까지 사죄하지 않으면 안되는 운명을 짊어진 죄인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교육은 자학적 경향아래 있고, 그 자학에서 벗어나 자긍심을 되찾고 자신의 正史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분명 상식적으로 우리는 연좌제를 거부한다. 부모의 죄가 자식의 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죄와 책임의 단어의 묘한 혼동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선행세대의 죄와 전후세대의 책임관계는 엄밀하게 구분돼야한다. 이 관계를 구분하지 않았을 때, 국가에 대한 과도한 본질주의적, 혈통주의적 집착에 빠질 때, 국가의 죄는 자신의 죄가 되며, 다시 미래의 자손의 죄가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과거 일본제국의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무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죄와 책임을 구분했을 때, 일본인으로서 일본이 과거전쟁과 식민지지배를 통해 저질렀던 범죄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자기 반성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여기에 반대의견도 있다. 좋아서 일본인이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정치따위는 관심이 없다 등등. 이에 대한 반박으로 저자는 서경식씨의 발언을 인용한다. “식민지 지배에 의한 기득권, 일상생활에서 갖는 일본국 국민으로서 특권을 포기하고 일본국 여권을 찢어 자발적으로 난민이 되지 않는 한 그런 발언은 취소하는 것이 좋다.”

책임에는 또한 법적인 책임과 함께 기억의 책임이 따른다. 과거에 있었던 일로서 끝내버리지 않는 책임,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의무. 올해 광복절을 앞두고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던 뉴스를 모두 떠올릴 것이다. 고이즈미는 나름대로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의 의무에 충실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침략자인 자신의 나라의 死者에 대한 책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침략자로서 그들의 법적, 정치적, 도외적 책임에 입각해 그들과 함께 피해자에 대한 갚음을 하는 것, 사죄와 보상을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죽은 자에 대한 정당한 의무라고 할 것이다.

아보리진에 대한 정복과 학살에 대한 기억을 갖는 어느 오스트레일리아인의 경우, “나는 학살에 참가하지 않았다. 나의 선조도 학살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로부터 빼앗은 땅에 살고 있다. 그들에 대한 차별적인 기억과 역사를 갖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인으로서의 동일성을 갖고 있다.” 감정적인 부채에서 책임이라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타카하시 교수는 역설한다.

타카하시 교수는 일본인으로서 사는 책임감을 주장한다. 일본인은 유일한 피폭국이라는 신화로서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망각해버렸다. 하지만 일본인의 가련한 피해자 역할극을 저자는 냉혹하게 비판한다. 아시아 침략의 기지이자, 청일전쟁 이후 대본영이 위치했던 일본은 공폭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천황제를 유지하고자 항복을 연장했던 일본의 오판이 원폭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점을 상기하고 원폭의 주된 희생자가 수만의 징용 한국인이었던 점도 기억해야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역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정당한가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역사에 대한 어떤 기억과 책임을 갖고 있는가하는 것이다. 현대사에 관한 한 우리는 피해자 의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우리안에 타자를 가지고 있으며 그 타자에 대한 가해의 기억을 쉽게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한 피해의 기억조차 너무 쉽게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피해자로서도 기억하고 책임을 요구할 의무가 있다. 피해자의 기억은 기억이 아니라 고통일지 모르지만.
김현선 / 일본 통신원·교토대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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