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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올해 학계의 흐름과 쟁점 되짚어보기
[송년특집] 올해 학계의 흐름과 쟁점 되짚어보기
  • 권희철 기자
  • 승인 2001.12.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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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의 현실에서 갈 곳 몰라 서성댔던 지식인

지나간 시간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나. 차라리 무엇이 기억되고 있는지 묻는 게 날 듯 싶다. 미디어의 떠들썩한 소리와 요란한 담론의 선전문구들이 몸 안에서 아우성이다. 신체에 아로새겨진 트라우마. 지울 수 없는 흔적처럼 몇 가지 사건들만이 어수선하게 뒤엉킨 채로 떠오른다. 한해를 되돌아보는 일이 결코 순수한 작업일 수는 없는 것.

‘지식인논쟁’이 하나의 용어처럼 사용됐다. 한해 동안 흩모이며 여러 조합이 형성됐지만, 그 복잡함 속에서도 세 가지를 끄집어내게 된다. 안티조선운동, 문학권력논쟁, 도올 김용옥에서 비롯된 동양철학논쟁. 다르면서도 묘하게 얽혀있는 사건들이다. 이외에도 많은 논쟁들이 있었지만, 그것들을 모두 지식인논쟁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요컨대 지식인논쟁이라 일컫는 사례들에서는 묘하게도 ‘권력’이라는 용어를 빈번히 사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권력이 지식인논쟁의 핵심임이 드러난다.

‘지식인 논쟁’, 무엇을 남겼나

작년부터 몇몇 계간지를 통해 공방이 오갔던 안티조선운동에 대한 논의가 좀더 확대 재생산됐다.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해 치고 받기를 거듭하면서 조선일보의 과잉권력행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행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등의 물음이 주요 의제로 자리잡았다. 이에 대답하면서 입장이 갈리고 잦은 선수교체가 있는 등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번져나갔다. 특히 교수집단의 적극적 참여가 눈에 띈다. 지식인지도가 외부에서 자의적으로 그려지기도 했는데 조선일보의 그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어느 쪽이건 지나친 편가르기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어쨌건 조선일보를 가운데 두고 지식인들의 면모가 확연히 드러나게 됐다.

문학권력논쟁이 올해에는 여러 사안들을 거치면서 반복되는 양상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미당 서정주 타계 이후 그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있었고, 언론문제와 관련해서 이문열 논쟁이 있었다. 최근에는 강준만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를 중심으로 여러 반론자들 사이에 전선이 그어지는 형국이다. 강 교수의 경우는 여전히 실명비판 또는 인물비평의 문제가 시빗거리로 남아있는데,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고 그 방법 자체를 물고 늘어지기도 한다. 이는 권력의 행사방식을 문제삼으려는 것을 권력 거부로 바꿔치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에 벌어졌던 이문열 책반환 장례식은 문학권력논쟁이 단순히 탁상토론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꿈틀대고 있는 미묘한 문제임을 보여준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도올 김용옥의 ‘논어이야기’가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의 공격적이고도 직설적인 어법이 사태를 제공했는데, 최초 기독교계의 반발로부터 동양철학계의 그것까지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김용옥 비판들은 대체로 학술적으로 채 가다듬어지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한편 방송중단 이후, 논의는 동양철학논쟁으로 비화되기 시작했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의 도발적 문제제기로 논쟁이 본격화됐다. 그는 우리신문 203호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폈다. “동양철학이라는 실체, 더구나 지금의 동아시아 삼국 문화의 근저에 놓여있을 실체,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었지만 지금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에 김성환 군산대 교수(철학)의 반론이 있었고 재반론을 거듭하면서 확대돼 나갔고, 이후 다른 지면으로 옮겨져 계속 진행됐다. 한국 철학계가 얼마나 논쟁에 굶주려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올 한해 지식인들의 주요 관심사는 사회적인 이슈들과 무관하지 않았다. 먼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파동을 들 수 있겠다. 교과서 왜곡을 우려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반면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국가주의가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하며, 우리도 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당대비평’ 가을호가 이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는데, 소수이기는 하지만 한국 지식인의 성숙도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례였다.

사회적 이슈를 학적으로 풀어내기도

9·11 사태는 학계의 관심사를 한꺼번에 뒤바꿔놓았다. 이를 통해 전쟁과 테러에 대해서, 국제정치질서에 대해서, 도덕적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가장 큰 수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이슬람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들이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관련 연구자로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등 극소수만을 꼽을 수 있을 정도이다. 한국 학계의 문제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한편 미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는 시도들도 이어졌는데, 이를 고민하는 국내 사회과학자들의 연구서들이 대폭 간행되기도 했고, 서구 전문가들의 번역서들도 쏟아졌다. 아울러 미국 중심의 세계경제질서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심심지 않게 등장하곤 했다. 이런 논의들은 대개 신자유주의 질서가 가리고 있는 현실을 폭로하거나 신경제의 허구성을 밝히는 일에 관심을 집중했다.

인문학을 비롯 기초학문육성에 대한 논의도 줄곧 이어졌다. 기초학문육성위원회의 제안은 지금까지의 논의들을 총망라하고 있는데, 일단 그 결과가 어떨지는 지켜볼 일이다. 각 대학들도 자구책을 마련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최근 영남대가 발표한 인문학육성프로젝트 지원을 가장 고무적인 일로 손꼽을 만하다. 단순히 재정지원의 문제를 넘어서, 한국 인문학의 문제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짚고 있으며 적절한 대응책 또한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학문후속세대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걸고 나선 ‘모색’의 움직임도 주시해 볼 사건이다. 우리신문이 201호에서 단독입수 보도했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진미석 연구위원의 논문 ‘학문분야별 고급인력 수급전망 연구’는 박사실업문제를 일목요연하게 제시하고 있어 주목을 끌었다.

급격한 현실의 변화에도 아랑곳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걸어간 학자들의 지적 고투도 빼놓을 수 없다. 가장 빛나는 현장은 ‘무함마드 깐수’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의 역작들. ‘이븐 바투타 여행기’ 번역과 ‘고대문명교류사’, ‘씰크로드학’이 그것인데, 아마도 한국지성사에서 가장 뛰어난 옥중수고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고정간첩으로 활동하다 구속된 뒤 99년 출감한 고영복 전 서울대 교수도 최근 집필활동을 재개했다. 이에 얄팍한 이념의 경계로 학자의 작업을 저울질할 수는 없음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조동일 서울대 교수(국문학)가 근대 이후 세계소설사를 사회사의 관점으로 풀어낸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 작업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독창적으로 세계문학을 설명하려는 11권 분량의 방대한 작업 중 지금까지 9권이 완성된 것. 한국 근현대과학사를 복원하려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근현대 과학기술자 100인’을 선정 발표한 김근배 전북대 교수(과학학)의 노력도 기억할 만한 일이다. 1880년부터 1970년까지 한국 과학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을 선정한 일은 과학 분야 연구자들의 현실에 비춰볼 때 무척 이례적인 사건이다.

올해 말 터진 몇 건의 표절사건은 가뜩이나 복잡한 학계를 더 어둡게 만들고 있다. 앞에서 열거한 사건들은 앞으로 반복되기도 할 것이며 또 너무나 쉽게 잊혀지기도 할 것이다. 기억은 미래시제로 사용되기도 한다. 담론사의 거대한 수레바퀴가 어떤 국면들을 보여줄 것인지 내년 한해가 자못 궁금해진다.

권희철 기자 khc@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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