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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만에 강좌 ‘신청 끝’ … 문제는 발랄한 심층성이다
5분 만에 강좌 ‘신청 끝’ … 문제는 발랄한 심층성이다
  • 배원정 기자
  • 승인 2008.05.19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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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 달라진 문화강좌, 품격도 높였나

박물관·미술관의 문화강좌가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부상했다. 백화점 문화센터가 교양강좌 수준에 머무른다면, 박물관·미술관의 문화교육 사업은 점차 전문 강좌로 바뀌고 있는 추세다. 이들 강좌는 실기강좌와 이론 강좌로 크게 나뉜다. 특히 이론 강좌는 강의 내용을 전문화, 세분화했다. 주로 역사학이나 미술사학, 문화인류학 등 인문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강사로 참여하고 있다. 난이도는 학부 전공과목 수준 이상이다. 일반인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감상 수준의 차원을 넘어선 것을 반영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교수들의 강의를 학교가 아닌 문화센터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대학원생은 물론, 비전공 교수 및 퇴직한 50, 60대들이 많이 수강하고 있다.


가장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강좌는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회(회장 유창종)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역사학 개설강좌로 기획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관인 만큼 여건을 최대한 활용했다. 강의가 개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수준을 높이고 세분화시켜 단계별 심화과정을 마련했다. 고고학, 인류학, 미술사, 사상사 등 9개의 강의로 구성된 연구강좌는 50여개의 특설강좌를 1년간 듣고 수료한 사람에 한해서만 수강 자격이 주어진다. ‘고고인류’에는 이태주 한성대 교수(문화인류학과), ‘불교미술’에는 김정희 원광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 ‘한국사’에는 한명기 명지대 교수(사학), ‘사상사’에는 김상현 동국대 교수(사학과) 등 모두 150여명의 교수가 각 분야별 강의를 맡았다. 윤인식 박물관회 교육담당자는 “수강생 30%가 교육직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로, 인터넷 강의 신청안내가 공지된 지 5분 만에 접수가 마감되는 등 강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제외하면 주제별 문화강좌가 대세다. 예술의 전당 미술 아카데미는 2006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희경 교육문화팀장은 “인문학에 대한 전문적인 강의를 원하는 분위기에 발맞춰 각 분야별 연구자들이 많아짐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것이 쉬워졌다”고 설명했다. 한국미술, 현대미술, 세계미술을 각각 12강씩 주제별로 교수급 강사들이 강의한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교수들로는 박용운 고려대 교수(한국사학과), 김효정 부산외대 교수(중앙아시아어과), 이주현 명지대 교수(미술사학과) 등 모두 33여명이다. 한국미술강좌는 고대사부터 시작해 3년 과정으로, 현대미술은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동서양 미술 모두를 아우르는 강의로 구성됐다. 세계미술은 한 학기마다 문명권 하나를 선정하여 문화와 미술 등을 주제별로 다룬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소장 윤금진)의 문화강좌는 지역별, 문화권별, 국가별로 주제를 선정해 약간은 생소할 수도 있는 타문화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시도하고 있어 주목된다. 강의 수준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췄지만, 내용은 심화과정이다. 올해 마련된 강의는 ‘동양과 서양이 만나 문명의 길:실크로드’, ‘중국미술:영원을 갈구한 제국의 꿈’, ‘러시아의 문화예술, 그 친숙한 낯설음’ 등 3가지다. 각 주제마다 10강씩 미술, 연극, 문학, 음악 모두를 다룬다. 오는 22일까지 열리는 ‘실크로드’강좌는 이희수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과)와 이주형 서울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등이 참여하고 있으며, 6월 3일부터 8월 5일까지 개설되는 ‘중국미술’ 분야는 한정희 홍익대 교수(예술학과), 최성은 덕성여대 교수(미술사학과) 등이 맡았다. 9월 4일부터 11월 6일까지는 이현우 서울대 강사(노어노문학과), 이연성 ARTIADA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러시아의 문화예술’을 맡아 강의한다. 윤금진 소장은 “강좌를 들은 후 실제 답사여행을 조직하는 수강생들의 모임도 만들어지는 등 참여가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양민종 부산대 교수(노어노문학과)는 “일반인들이 여행을 다니며 본 것과 볼 것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인문학자들의 비평을 직접 청취하고 싶은 욕구로 표출된 것”으로 분석했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김윤수)은 미술과 함께 다른 장르나 학문간의 연계점을 찾고자 하는 전문 강좌를 개설해 눈길을 끈다. 예술 안에서 미술이 가진 근본적인 역량이 어떻게 인접 장르에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아왔는지를 ‘미술문화의 이해’란 주제를 통해 연중 4회 실시한다. 3월에는 ‘예술가와 미술’이란 주제로 박영택 경기대 교수(미술)가 강연했고, 5월에는 손철주 학고재 주간이 ‘미술과 문학’을, 8월에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한국사)가 ‘미술과 정치’를 주제로, 11월에는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미학)가 ‘미술과 영화’를 강의한다. 일반인 대상이긴 하지만 강의 수준은 약간 높은 편이다. 이승미 국립현대미술관 교육문화팀장은 “인접 장르간의 연계가 미술관이 추구하고자 하는 교육의 주요 방향 중 하나로, 최근의 학문적 트렌드가 문화강좌에도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문화강좌가 다양화하고 눈높이가 달라진 것은 분명한 변화다. 그렇다면 품격도 높아졌을까. 양민종 교수는 “원전 텍스트가 새로운 미술작품, 혹은 예술과 결합하면서 보다 친숙하게 느껴져 일반인들의 높은 호응도를 이끌어 내는 것 같다”고 진단한다. 좀더 대중에게로 다가가야 한다고 그는 주문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런 문화강좌들이 단발적이어서 심층성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한다. 지나치게 대중을 의식하다보니 눈높이는 맞췄지만, 품격까지는 조율하지 못했다는 진단이다.
그렇지만 대학 제도권 문화전문가들이 대중과 소통를 시도하면서 변화는 비록 느리더라도 공감의 폭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배원정 기자 wjba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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