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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철학자대회, 그들만의 잔치
[기자수첩]철학자대회, 그들만의 잔치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2.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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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05 10:37:24
생각은 넘쳐나고 시간은 부족한데 말은 어긋난다. 학술대회의 3대 원칙이다.

생활인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밤새 회포를 푸는 명절을 떠올린다면, 1년만에 만나 철학자들은 오죽 할 말이 많을까.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학술대회의 토의 시간은 연장되는 법이 없다. 시간도둑이 되지 않기 위해서일까? 대개 토의는 식사시간에 맞춰 멈춰지기 마련이다. 한국철학자연합대회 역시, 식사시간이 줄어들 기미에 던져져야할 질문들은 무마되었다.

으레 갖는 아쉬움은 접어두자. 공부하는 부엉이 체질들에게 분명 이른 시간일 오전 9시에 발표는 시작되었지만, 행사장 주위에는 그 흔한 길바닥 안내표시 하나 없었다.(2시간 남짓 지나자 붙기 시작했다)

학술대회가 콘서트는 아니더라도 발표하고 나누는 자리라는 취지는 동일할 터인데 어찌 이리도 무심할까.

'차이는 아름답다'고 대회장이 인사말에 밝혔지만, 차이를 만들어낼 이들 '손님'들은 정작 눈에 띄지 않았다. 청중석에 드문드문 자리를 채운 이들도 각지에서 모여든 철학교수들이었을 뿐.

콘서트와 같은 기획력과 진행을 바라는 것이야 당치도 않다. 어차피 바람 부는 대로 우르르 모일 일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된다. 하지만 아무려나 넓은 서울대 캠퍼스에는 한국철학자연합대회가 일으키는 미풍 한 점 없었다.

철학자대회가 잡은 생명공학, 정보화, 세계화의 세 쟁점은 분명 첨예한 논쟁거리를 담은 우리 시대의 '화두'이다.

하지만 존 설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기조 발제는 웬걸, '의식, 행위 그리고 두뇌'였다.

그것도 '다산기념 철학강좌'의 네 번 째 강연인 동시에 철학자대회 기조발제였던 것이다.

아니, 기조발제가 다산기념 철학강좌의 강연용이라면 차라리 다행한 일이다.

여하튼 존 설 교수는 철학자대회의 세 가지 쟁점과는 무관하게 다산기념 철학강좌에 참여하는 듯 발표를 마쳤고, 그것이 '기조'가 되었는지는 참석자 개개인이 해석해야할 문제인 듯 보였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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